• ‘한 우물 파기’는 옛말?… 게임 업계는 ‘외도 중’ 구독경제·AI·바이오서 새 캐시카우 찾기

    2021년 02월 제 125호

  • 흥행 산업은 어렵다. 누구나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하고, ‘마블 시리즈’ 같은 영화를 만들어내며, ‘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을 키워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대중이 어떤 콘텐츠를 좋아할지 알아보는 혜안을 갖는 것 자체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고, 과거에 큰 성공을 거뒀던 공식을 그대로 적용한다고 해서 이번에도 대박이 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울상을 짓고 있는 영화·공연 예술계처럼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멀쩡하게 잘 만든 상품도 제대로 선보이지 못할 우려도 있다. 게다가 일상 생활용품 같은 소비재는 일단 만들어두면 싼 가격에 팔아서 손해를 최소화할 길이라도 있지만, 엄청난 투자를 하고도 몇 푼도 건지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흥행 산업의 가장 괴로운 지점이다.

    대표적인 흥행 산업 중 하나인 게임계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게임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인기작을 탄생시키면 작은 게임사도 단숨에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분야지만, 이는 반대로 커다란 게임사라 해도 끊임없이 쉬지 못하고 다음 타자를 찾아 헤매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단 현재 운영 중인 인기 게임의 수익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또 다른 신작 게임의 개발 비용을 충당하는 구조는 이미 업계에서는 보편적이다. 물론 지난해와 올해 초반까지는 코로나19와 ‘집콕’ 문화 덕분에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훌륭한 실적을 거두는 모습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미 고도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평을 듣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기보다는 기존 지식재산권(IP)에 기대는 모습이 많았고, 미래의 게임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이는 VR(가상현실)·클라우드 게임은 말 그대로 아직 미래의 일로 보인다.

    결국 장기적인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각 게임사 입장에서는 새 성장동력을 찾기까지 일단 버티면서 다양한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는 시점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캐시카우’ 찾기에만 급급하다면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이종 산업에 진출하고 궁극적으로 게임 콘텐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시도라면 그리 나쁜 ‘외도’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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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살려 ‘게이미피케이션’ 해볼까

    “게임사가 어떤 사업을 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질문은 “게임사가 어떤 사업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동안 게임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쌓은 여러 노하우와 개발력을 이용해 또 다른 부가가치 창출을 시도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방향일 것이다. 특히 10대부터 40대까지 젊은 고객층을 잘 이해하고 있고, 이들이 어떤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면 비단 게임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상에서 새로운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우선 각 게임사들이 수많은 개발자들을 갖춘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AI(인공지능)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 비단 게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기 좋은 자산을 개발하는 셈이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3N으로 불리는 선두주자들은 충분한 인력풀과 개발 자원을 바탕으로 AI 연구에 한창이다.

    3사의 경우 AI 연구개발(R&D)조직을 아예 게임 개발조직과 별도로 두고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당장 눈앞에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부터 수백 명의 연구 인력을 투입했기에 게임사들이 국내 최고 수준의 AI 기술 역량을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게임 자체에 대한 개선뿐 아니라 타 산업과의 연계가 슬슬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넥슨이 2017년 설립한 AI 연구조직 인텔리전스랩스는 게임 룰, 시나리오, 그래픽 등 게임을 구성하는 콘텐츠 외에도 개인화 메시지, 광고 효율화, 영상 추천을 비롯해 게임 플레이와 연계된 사용자 경험 전반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넷마블은 지난해 1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인공지능 콘퍼런스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NeurIPS) 2020’에서 딥러닝 기반 모바일 음성인식 기술을 선보였다. 2011년 게임업계 최초로 AI조직을 설립하고 연구에 돌입한 엔씨소프트도 다양한 성과를 냈다. 모바일게임 매출 1위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리니지2M’이 탁월한 밸런스로 게임성을 지키는 데에도 AI의 역할이 크다. 음성으로 게임을 조작하는 ‘보이스 커맨드’ 기능을 추후 선보이기 위해 AI 적용을 준비하고 있다. 이밖에 AI 야구정보 애플리케이션 ‘페이지’를 운영하거나 날씨 기사를 작성하는 등 막연해 보이던 AI를 가지고 상용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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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넥슨, 신한은행과 비대면 업무협약 체결. 왼쪽부터 신한은행 진옥동 행장, 넥슨코리아 이정헌 대표.


    이렇게 만들어낸 AI 기술은 이제 기존 산업과의 결합으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영글고 있다. 우선 마이데이터(본인 신용정보 관리업) 사업 등의 본격화로 수많은 고객들의 데이터를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금융 분야와의 협업이 눈에 들어온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0월 KB증권,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과 각각 300억원을 투자해 ‘AI 간편투자 증권사’ 출범을 위한 합작법인(JV)에 참여했다. 엔씨소프트의 인공지능 기술과 KB증권의 금융투자 노하우, 디셈버앤컴퍼니의 로보어드바이저 기술을 융합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디지털 증권 서비스 개발에 나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AI가 KB가 모아둔 자산관리 보고서 빅데이터를 학습한 후 각 고객 개인별로 맞춤 보고서를 보내주는 서비스 등이 예상되고 있다. 넥슨 역시 지난해 신한은행과 전략적 업무 협약을 맺고 AI·데이터 기반 신규 사업모델 발굴 등을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넥슨은 AI 외에도 지난해 암호화폐 등 다양한 디지털 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트레이딩 플랫폼을 개발하는 자회사 아퀴스를 설립하는 등 블록체인 관련 기술에도 꾸준히 투자해 왔다.

    또한 게임도 결국 콘텐츠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엔터테인먼트 등 또 다른 콘텐츠 산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지난 2018년 넷마블은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지분 25.71%를 2014억원에 인수하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이 친척 관계인 방시혁 빅히트 의장과 손을 맞잡은 셈이다. 빅히트가 지난해 상장한 첫날 초반 ‘따상(공모가 두 배로 시초가를 형성한 뒤 상한가)’을 기록하는 등 그 자체만으로도 성공적인 투자가 됐지만 넷마블은 이후에 본업인 게임에도 적용을 했다.

    사용자가 직접 방탄소년단의 매니저가 되어보는 게임 ‘BTS 월드(BTS WORLD)’를 출시했고, 지난해 9월에는 스토리 소셜 게임 'BTS 유니버스 스토리'를 글로벌에 출시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7월 KLAP(클렙)이라는 엔터테인먼트 자회사를 설립하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동생인 김택헌 엔씨소프트 수석부사장에게 키를 맡겼고 이어 CJ ENM과도 업무협약(MOU)을 맺기도 했다. 그 첫 결과물은 ‘유니버스’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인데 AI 기술을 이용해 아이즈원, 강다니엘, 몬스터엑스 등의 스타들을 앱 내 아바타로 재창조한 뒤 한국과 북미, 남미, 유럽, 일본, 동남아 등 약 200개국의 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미 사전예약자만 300만 명을 넘은 상태이니 “미래 먹거리는 엔터테인먼트밖에 없다”고 말했던 김택진 대표의 말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흐름은 결국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단어와 그 맥을 같이한다. 게임의 큰 특징이자 강점인 ‘재미’와 ‘몰입’을 다른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취미 생활을 채워주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건 원래부터 게임의 장점이었고, 여기에 더해 어렵게만 보이는 투자를 게임처럼 쉽게 접근하게 만들어주는 등 부가적인 요소를 더한다면 서로에게 윈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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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씨소프트 유니버스
    ▶사업다각화로 경영안정

    물론 처음부터 게임과 관련이 있는 신사업을 시작한다면 조직원들의 적응도 빠르고, 외부의 시선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예 새로운 분야에 덤벼드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캐시카우(Cash Cow, 안정적인 수익창출원)’를 얻는다면 게임 사업에도 보다 안정적인 투자가 가능해질 수 있다.

    일단 마케팅을 위해 다른 산업과 협력하는 정도로는 꽤나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넥슨은 현대자동차와 협업해 모바일게임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와 PC게임 ‘카트라이더’에 현대자동차 쏘나타 N라인을 등장시켰다. 레이싱 게임이라는 정체성과 자동차 회사와의 공통점을 찾은 것이다. 펄어비스는 자사를 대표하는 게임 ‘검은사막’ IP를 활용해 해태껌과 함께 만든 ‘껌은사막’, 광천김과 힘을 합친 ‘김은사막’, 남성 그루밍 기업 스웨거와 협업한 탈모샴푸 ‘감은 사막’ 등 다양한 상품을 출시했고, 컴투스는 롯데마트와 함께 대표 스포츠 게임 ‘컴투스 프로야구’ IP를 이용한 ‘컴투스프로야구귤’을 내놨다. 약 10만 박스 분량인데 귤을 먹다보면 박스 안에서 게임 쿠폰도 발견할 수 있다.

    단순 마케팅뿐 아니라 본격적인 신사업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국내 게임사 중에서는 NHN이 대표적인 예시다. 2013년 NHN에서 한게임을 따로 분사하면서 설립된 NHN엔터테인먼트(현 NHN)는 게임회사를 모태로 삼았지만 현 시점에 이르러서는 게임사라고만 부르기는 쉽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산업에 뛰어들었다. NHN의 매출을 살펴보면 지난 2013년 4분기까지만 해도 게임 매출이 전체의 96%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30% 수준까지 내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 매출 줄어든 것이 아니고 꾸준한 성장세였다. 그만큼 비게임 분야를 빠르게 키웠다는 의미다.

    실제로 NHN은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코’, 온라인 광고 전문 대행사 ‘NHN애드’, 음원사이트 ‘벅스’, 웹툰사이트 ‘코미코’, 패션 기업 간 거래(B2B) 마켓 ‘패션고’, 클라우드(토스트), 여행과 공연 예매를 하는 ‘NHN여행박사’와 ‘티켓링크’, 인공지능 ‘바둑 AI 한돌’ 등 다양한 사업으로 불과 6~7년 사이에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중에서 NHN여행박사 같은 경우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며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NHN 전체로 보면 사업 분야를 늘린 보람이 있었다. 지난 한 해 결제·커머스 사업이 크게 성장하고, 웹보드 게임의 1일 손실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규제 완화로 본업이었던 게임까지 매출이 늘어나며 여행, 예매 분야의 부진에도 실적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정우진 NHN 대표는 지난해 말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몇 년간 다양한 포트폴리오 구축에 주력해 왔다면 이제는 기존 사업들의 외형을 키워내는 게 또 다른 고민”이라며 “만일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보유하되 IT 전문성은 떨어지는 업체와 손잡는다면 NHN이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후 인수합병(M&A)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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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C소프트가 AI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넷마블 역시 M&A를 통해 신사업에 뛰어들어 톡톡히 재미를 본 게임사로 꼽힌다. 넷마블은 지난 2019년 코웨이를 인수하며 게임 외의 라인업을 더했다. 지난 1989년 설립된 코웨이는 정수기, 공기청정기, 비데, 연수기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가전제품을 생산·판매하고, 이를 바탕으로 렌털 사업에도 뛰어들어 국내외 738만 계정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1위 업체다. 연간 매출만 2조원이 넘기에 넷마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든든하다. 방준혁 의장은 인수 당시 “게임 사업에서 확보한 IT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홈 구독경제 비즈니스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시야를 중견, 중소 게임사까지 넓혀본다면 게임사들이 뛰어든 산업군은 훨씬 더 다양해진다. 드래곤플라이는 지난해 바이오 벤처회사 티이바이오스의 지분을 사들이며 엔터테인먼트-바이오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한빛소프트는 온라인 달리기 앱 ‘런데이’를 비롯해 드론, 교육 사업 등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사업 다각화에 대한 걱정도 존재하고 있다. 사업 다각화를 통해서 경영 안정화를 노리는 상황은 이해하더라도 자칫 본업에 소홀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한국게임학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본업 살리기가 아닌 몸집 불리기, 게임 부문 수익을 다른 사업으로 돌리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안 그래도 기존 IP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새로운 게임 만들기에 매진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냐”고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이용익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5호 (2021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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