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산업 일등공신 ‘확률형 아이템’ 양날의 검 되나… 도박 변질 우려 세계 각국 규제, 한국도 칼 빼든다

    2021년 04월 제 127호

  • #EA스포츠의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 게임 시리즈인 FIFA 19를 플레이하던 한 외국인 스트리머, 자신의 팀을 강화하기 위해 카드깡(온라인 게임에서 카드를 얻기 위해 카드팩을 사는 것을 일컫는 말)을 시도한다. 태극기가 뜨는 순간, 손흥민이 나올 것이라 확신한 스트리머는 흥분하며 “흥민 손”이라 외쳤지만 다음 순간 등장한 카드는 이동국. 그가 절규하며 외친 “리동국! What the hell!”이라는 말은 그 이후 국내 피파 유저들에게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이동국 본인도 “게임사를 고소하고 싶다”는 농담으로 이 해프닝을 웃어넘겼다.

    #지난 2020시즌 엔씨소프트의 프로야구단인 NC다이노스는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에서 창단 첫 통합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우승이 확정되고 마운드 위에서 NC다이노스 선수들이 세리머니를 펼칠 때 들어 올린 것은 다름 아닌 ‘리니지’에서 최강의 아이템으로 통했던 ‘진명황의 집행검’이었다. 주장 양의지가 칼을 뽑아 들어 올리는 모습에 국내 야구 팬들은 물론 미국에서까지도 호평을 남겼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공식 사이트인 MLB닷컴은 그 장면을 두고 “선수들이 마치 비디오게임에서 마지막 상대를 물리치고서 검을 빼앗는 장면 같았다”고 칭찬했다.

    #지난 13일 경기도 성남 판교에 위치한 넥슨 본사에서 열린 자사 게임 ‘마비노기’ 유저 간담회. 평균 2만 명 이상의 이용자들이 생중계를 시청하는 가운데 간담회는 14시간에 걸쳐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됐다. 게임 내에서 장비에 추가 능력치를 부여하는 세공 도구 확률 등에 대해 열띤 질문이 이어지면서 무려 288개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정작 대다수의 이용자는 답변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단 넥슨 외에도 국내 게임사들이 게임 이용자들의 거센 비판 앞에 직면했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 사례들은 최근 게임 아이템과 관련된 우리 사회 각지의 다양한 모습들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돈을 내고 ‘뽑기’를 시도하게 유도하는 확률형 아이템은 요즘 게임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이는 때로 게임이 주는 즐거움을 극대화하고, 스포츠 등 다른 분야와 연계해 또 다른 재미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게임을 도박으로 변질시키고, 업계의 근간을 해치는 암적 존재로 변모할 수도 있다. 과연 확률형 아이템은 어떤 역사를 거쳐서 만들어졌고, 또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할까. 뭇매를 맞고 있는 한국 게임사들은 최근의 확률형 아이템 논란을 딛고 일어나 게임산업 쇄신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까.

     기사의 2번째 이미지
    ▶확률형 아이템, 韓 게임의 성장 비결?

    간단한 사실로 시작해보자. 게임사도 기업이고, 그들이 만드는 게임 역시 상품이다. 게임사들은 다른 많은 기업들처럼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을 통해 수익을 얻고 활동을 지속한다. 다만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비단 확률형 아이템만 돈을 벌어들이는 방식은 아니었다. 가장 쉬운 방식은 게임이나 게임기 자체를 파는 것이다. 1970~1980년대에 게임을 산업화한 미국과 일본 등지의 게임사들은 아케이드(오락실) 게임과 콘솔(가정용 오락기) 게임 시장을 일궈냈다. 게임사들이 새 게임을 출시하면 이용자들은 자신이 보유한 콘솔 게임기나 컴퓨터에 맞춰 팩이나 CD 형태로 게임을 구매한 뒤 즐겨왔다. 게임사들은 가정용 콘솔 게임기나 휴대용 콘솔 게임기를 판매하기도 하고, 이에 맞춘 게임을 개발한 뒤 판매하며 수익을 얻었다. 30대 이상의 게임 이용자라면 하나의 게임밖에 즐길 수 없는 간단한 휴대용 게임기들을 즐긴 기억도 있고, CD 등으로 새 게임을 구매해서 플레이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매출 구조가 명확하다. 게임을 구매하는 이들의 숫자에 맞춰 매출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인터넷 통신망이 발달하면서 변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온라인 다운로드를 받는 방식으로 보다 쉽게 게임을 사고팔 수 있게 됐다. 물론 와레즈로 시작해 토렌토로 이어지는 불법 게임 다운로드도 덩달아 판을 쳤고, 패키지 게임 시장이 점차 어려워지는 문제도 발생했지만 이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 게임의 등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다른 많은 산업군에서 그랬듯 게임산업에서도 후발 주자였던 한국이 비로소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분야가 바로 온라인 게임이다. 온라인 게임은 개발을 거친 뒤 한 번 출시하고 나면 끝나는 기존의 게임과 달리 지속적인 새 콘텐츠 업로드를 통해 게임의 수명을 늘리는 게 가능하지만 대신 정기적으로 점검을 하고, 추가 개발을 하다 보니 게임사가 들이는 관리 비용 또한 커진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정액제(Pay to Play)다. 지금까지도 성공적인 게임 IP(지적 재산권)로 남아있는 넥슨 ‘바람의 나라’, 엔씨소프트 ‘리니지’ 등은 월마다 정해진 비용을 이용자에게 받고 게임 접속 권한을 부여하는 정액제 모델을 택했다. 지금도 해외의 많은 게임들이 정액제 모델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 자체로도 실패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다. 다만 정액제 모델에도 단점은 있었다. 매달 인터넷 비용과 게임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 미래의 든든한 고객이 되어줄 것으로 보이던 10대들이 좀처럼 시장에 진입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넥슨이 서비스하는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일부 능력치는 아무리 돈을 들여도 애초에 달성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부분 유료화(Free to Play)’ 모델이다. 일단 게임을 시작하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지만 자신의 캐릭터를 더 멋지게 꾸미거나,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아이템을 구매해야 하는 방식이다. 게임 이용자들의 수가 많다고 해서 곧바로 높은 매출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아이템으로 인기만 끈다면 오히려 더욱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한국은 부분 유료화를 게임에 가장 성공적으로 도입하고, 정액제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준 국가로 꼽힌다. 2001년 넥슨이 ‘퀴즈퀴즈’라는 게임을 통해 부분 유료화를 처음으로 시도했고, 2004년에는 드디어 부분 유료화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까지 ‘메이플스토리’를 통해 도입하기 시작했다. 넥슨은 일본에서 서비스하던 ‘메이플스토리’에 100엔을 내면 무작위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가챠폰티켓’을 선보였고, 이듬해에는 한국에서도 ‘부화기’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초기에만 해도 부분 유료화와 확률형 아이템은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이나 인기가 낮은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에서 가끔 사용되는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적용 빈도가 늘어났다. ‘메이플스토리’ 역시 기간 한정으로 운영하던 해당 아이템을 2008년부터는 상시적으로 운영하게 됐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확산되면서 결국 관심은 게임법 개정안으로 쏠린다.


    2010년대에 들어 컴퓨터(PC)나 콘솔로만으로 게임을 하던 시대가 지나고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모바일 게임이 등장한 상황 또한 확률형 아이템을 각광받게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우선 모바일 게임은 만드는 기간이 짧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작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해야 하는 특성상 다양한 재미를 주기가 상대적으로 힘들었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아이템을 결제해보는 것 자체도 게임의 재미 중 하나가 됐다. 게다가 PC로 하는 온라인 게임은 월 결제 한도가 50만원이었지만 시장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바일 게임에는 결제 한도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게임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보면 더욱 적은 비용으로 게임을 만들고, 더욱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결국 대형 게임사들은 기존의 온라인 게임들을 모바일로 재탄생시키면서 경쟁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하게 됐다. 이렇게 돌이켜보면 비로소 한국 게임사들의 전성기가 시작된 시점과 확률형 아이템의 도입은 맞닿아 있는 셈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온라인 게임의 주요 수익 모델로, 그중에서도 각자의 캐릭터를 성장시키며 자연스레 남들과 비교하게 되는 MMORPG 장르와 더해지면서 한국의 초기 게임사들은 세계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2010년 7조4312억원이었던 한국 게임 시장은 지난 2019년 15조5750억원까지 성장했다. 오늘날에는 비단 한국 게임사들뿐 아니라 EA 등 미국 게임사 역시 확률형 아이템을 활용해서 게임을 제작하고 있으니 확률형 아이템이 그 존재 자체로 악(惡)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확률형 아이템 게임 속 화면
    ▶게임사 규제강화 가능성 높아

    다만 현 시점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한국 게임 성장의 일등공신으로 인정하는 이가 많을까, 아니면 장기적인 게임 업계 성장을 막는 도박으로 보는 이가 많을까. 오늘날 한국 게임사들은 게임 이용자는 물론 정치권과 일반인들의 지탄과 조롱까지 받는 신세가 됐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조 단위의 엄청난 매출을 얻은 뒤, 이를 바탕으로 직원들의 연봉을 올려주고 사회공헌활동에 나서겠다는 목소리로 찬사를 받고 있었지만 삽시간에 상황이 뒤집어진 것이다.

    여론이 뒤바뀐 출발점은 역설적이게도 다시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에서 나왔다. 넥슨은 지난 2월 메이플스토리 ‘환생의 불꽃’ 아이템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무작위이던 아이템 확보 확률을 모두 같은 확률로 바꾼다”고 공지했는데 그동안 무작위 확률과 동일 확률을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던 이용자들이 크게 분노하며 판이 커졌다. 이에 넥슨은 자발적으로 일부 게임 아이템 뽑기 확률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럼에도 거센 반발을 마주하게 됐다. 당첨 확률이 0인 복권을 판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에 그 누구도 반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넥슨 외에도 국내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에 지나치게 집중하다가 마침내 이용자들의 신뢰를 잃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뽑기로 얻은 여러 아이템을 모아 또 다른 아이템을 완성하는 ‘컴플리트 가차’ 방식이 유행할 정도로 확률형 아이템이 고도화됐다. 예컨대 3X3 빙고판을 완성하기 위해 이중 삼중으로 뽑기를 반복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은 0.001%도 안 되는 경우도 생겼다. 이 와중에 각 칸마다 확률을 바꾸고, 시간대에 따라 확률이 변하는 경우도 생겼으니 그동안 확률은 낮을지언정, 최소한 공정한 뽑기를 해오면서 돈을 지불해왔다고 믿어온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애초에 부분 유료화와 확률형 아이템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된 게임을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놓은 것도 비판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 언급된 정액제의 경우 주요 게임에서는 병행 대신 폐지된 경우가 많다. 넥슨 ‘바람의 나라’의 경우 이미 지난 2005년 월 정액제를 없앴고, 엔씨소프트도 ‘블레이드앤소울(2016년 12월)’, ‘아이온(2018년 1월)’, ‘리니지(2019년 5월)’, ‘리니지2(2019년 8월)’ 등 주요 게임에서 차례로 정액제를 폐지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이런 현실을 두고 “게임에서 이용자가 자신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길은 두 가지였다”라며 “돈으로 아이템을 사거나 시간을 들여 키우는 방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후자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돈 대신 오랜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이용자들도 불이익을 보지 않게 해줘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결국 앞으로 게임사들도 더욱 강화된 규제를 받을 가능성만 높아졌다. 지금까지 한국 게임사들은 자율 규제 방식으로 기본적인 확률만 공개해왔지만 최근 발의된 법안들의 법제화가 이뤄지면 유료 아이템과 유·무료 혼합 아이템을 가리지 않고 모든 확률을 공개해야 하고, 확률형 아이템 관련 규정을 어기면 회사가 얻은 이익의 3배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 받을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나친 규제로 인해 대형 게임사들도 해외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고, 이외에 중소형 게임사들도 작은 실수로 큰 과징금을 내고 성장하지 못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시선은 차갑다. 평소 게임을 즐기는 직장인 박 모 씨는 “확률 공개 여부는 중요한지 모르겠다. 경험적으로 매우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십만원씩 긁은 내 잘못도 있다”면서도 “도박에 가까운 부분을 제거해서 경쟁력이 상실된다면 애초에 경쟁력이 낮았던 것 아니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확률형 아이템을 줄이고 난 뒤에는 과연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써야 할까. 최근에는 아예 확률 문제를 빼기 위해 일정 금액을 결제한 후 이용자들이 특정 기간 레벨업하거나 미션을 해결하면 보상을 주는 ‘배틀 패스’를 도입하는 방식도 주목받고 있다. 유료 결제 시스템은 남겨뒀지만 확률이 적용되지 않고, 일정 시간 이상 게임을 직접 진행해야만 보상을 받는다는 점에서 더 공평하다는 인식이 있다.

    또한 국내에서 과거의 유물로 취급받던 정액제도 다시 돌아볼 여지가 있다. 5G 도입 등 통신의 발달과 함께 클라우드 게임 및 구독형 게임이 등장하면서 해외에서부터 정액제가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게임패스’, 애플의 ‘애플 아케이드’, 구글의 ‘스타디아’ 등은 아직 성공과 실패를 따지기엔 이르지만 수백 개의 다양한 게임 타이틀을 제공하고, 일정 금액을 받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런 방식이 다시 대세가 되어 수많은 게임 중에서 이용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게임사들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결국 하나다. 기존 게임과는 다른 재미를 제공하는 새로운 방식의 게임을 고민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기존 IP를 답습하면서 확률형 아이템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이용익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