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車 부품업계 초비상 걸린 이유… 8900社 중 전기차부품사 210곳 불과 “전기차 시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2022년 03월 제 138호

  • 가히 전기차 시대다. 가솔린차에 이어 하이브리드차 탄생도 혁신이었는데, 전기차는 혁명 수준이다. 수소연료전기차, 일명 수소전기차 역시 배터리로 모터를 돌리는 건 마찬가지다. 모두 매연을 원천 봉쇄해 미래를 깨끗이 하자는 데 의의가 있다. 소비자들도 그 취지에 공감해 전기차 구매를 원한다.

    하지만 사각지대가 있다. 차 역시 부품으로 조립되는데,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가 미처 전기차 격변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빨리 변할지 몰랐던 셈이다.

    경기도 화성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A사. 국내 완성차업체의 프레스 금형을 제작하는 이 2차 부품업체는 지난해 4월부터 법원에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1992년부터 30년간 꿋꿋이 버텨오던 이 업체도 최근 여러 악재를 피해가진 못했다. 코로나19에 반도체 품귀난과 원자잿값 상승까지 이어지면서다.

    전기차 전환 흐름이 빨라진 것도 경영 악화에 결정타를 날렸다. 2019년 120억원이었던 A사 매출은 지난해 80억원 정도로 33%나 줄었다. 전기차 부품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업체들은 “반도체, 원자재, 인건비, 코로나,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5중고나 되는 고통을 감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내, 아니 전 세계에 전기차 시대가 불쑥 다가왔지만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는 아직 준비가 덜 됐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전기모터와 전장부품 등을 제대로 만드는 회사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는 최악의 실적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업계와 자동차 관련 단체에 따르면 국내 10인 이상 고용된 국내 자동차 부품 회사는 2020년을 기준으로 총 8966개다. 이들의 고용 인력은 그해 23만5000여 명이었다. 지난해 이들 업체 수의 변동은 아직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고용 인원은 지난해 22만5000여 명 수준까지 쪼그라든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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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제철 예산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자동차용 고강도 핫스탬핑 부품. 철광석 및 석탄 가격도 오르면서 자동차강판 가격 압박이 거세다.
    ▶내연기관 집중해온 부품업계 경영난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는 지난 2010년부터 가파른 호황을 겪었다. 2010~2015년 고용 인원 10만 명, 업체 수는 1700개나 추가됐다. 하지만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도입하는 하이브리드차가 인기를 끌고 배터리로만 구동하는 전기차가 크게 늘면서 2016년부터 부품업계 기세는 하릴없이 꺾이기 시작했다. 그 같은 전장부품 대신 기존 내연기관차 엔진 등에만 집중해온 부품업계가 급격한 산업 격변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2016년 26만5000여 명에 달했던 부품업계 고용 인원은 지난해까지 5년 새 4만 명, 2020~2021년 1년간 1만 명이나 줄었다.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경영 사정이 어렵지만 이를 대놓고 말할 수 없다는 고민도 크다”며 “지금은 정부 협조로 금융 지원을 받고 있지만 매출 부진을 토로하면 금융권이 대출을 회수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부품 수는 대략 3만 개지만 전기차에 들어가는 건 2만 개도 채 안 된다. 부품 축소 자체가 부품업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전기차 핵심인 전기모터 등 전장부품에 고도의 기술이 들어가는 만큼 부품업체가 이를 만들어내려면 이익의 일정 부분을 연구개발(R&D) 비용으로 투자해야 하는데 이게 극미한 실정이다. 현 사태의 가장 심각한 이유다. 2020년 기준 8966개 부품업체 가운데 전기모터 등 전기차용 부품 생산 가능 기업은 210곳 정도로 전체의 2.3%에 그친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견 부품업체는 2010~2015년에 벌어둔 돈으로 지금 버티고 있지만 다른 중소기업은 인력을 잘라서 견디고 있는 실정”이라며 “국제 기준으로 연간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의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하는 부품업체는 300개 미만이고 이 금액을 3년 연속 투입하는 기업은 100곳도 채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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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부품업계 상황은 고용 인원이 많건 적건 상관없이 현재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최근 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국내 510개 조합사를 상대로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영업이익 적자를 낸 업체는 2019년 99곳에서 2020년 190곳으로 1년 새 92%나 늘었다. 지난해엔 250곳 정도를 넘긴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별도로 110개 부품업체를 300인 이상 고용 기업과 그 미만 고용 기업으로 나눠 조사한 결과 300인 넘는 곳의 영업이익률은 2019년 4.1%에서 2020년 2%, 300인 미만 영업장은 3%에서 1.3%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국내에서 신형 전기차 모델이 유독 많이 쏟아지며 반도체 공급 위기까지 겹치자 수급할 곳을 찾지 못한 이들 부품업체 영업이익률은 1% 미만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영세해 현대자동차·기아가 아닌 다른 완성차업체에 부품을 대는 업체들의 납품액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한국GM·르노삼성 등 외국계를 포함해 쌍용차까지 3개 완성차 회사에 들어가는 부품 납품액은 2015년 10조원에서 2020년 6조원으로 5년 새 40%나 떨어져 나갔다. 반면 완성차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대차·기아에 들어가는 부품 납품액 비중만 이 기간 79%에서 88%로 확대됐을 뿐이다.

    내연기관차가 모조리 전기차로 바뀌는 가정을 설정하면 일단 엔진을 구성하는 6900개 부품은 모두 사라진다. 전기차에는 전기모터가 엔진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차체와 제동 장치, 차량 실내 구성품인 가죽 시트 등은 그대로 남는다. 구동 전달 체계에 들어가는 부품 5700개는 3600개 정도로 줄어들고 전자장비 부품도 기존 3000개 대신 900개 정도면 충분하다. 이로써 기존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총 부품 수 3만 개는 전기차에선 1만1100여 개가 사라진 1만8900여 개만 투입된다. 부품 37%가 줄어드는 것이다. 전장부품이 전기차 하나에 900개 정도로 대폭 축소·투입되지만 그 기술 수준은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높다. 전자제어 장치는 물론 배터리와 모터 구동에 필요한 부품들이다. 특히 전기모터 부품을 제대로 만들 국내 업체는 현재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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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진 부품·동력 전달 체계 관련 업체 구조조정 대상

    결국 국내 9000여 개 자동차 부품업체 가운데 엔진 부품과 동력 전달 체계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곳은 잠재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제동·조향 장치나 차체, 시트, 공조, 차량 안전 관련 부품 전문 생산업체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 배터리·전장 등을 생산하는 곳만 향후 매출 확대를 기대해볼 수 있는 업체군에 속한다. 하지만 이들 매출 확대 예상군은 전체 업체의 고작 2.3%(210곳)에 불과하다는 점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위원은 “그나마 지금은 전기차 시대여서 국내 배터리 업체가 대기업 중심으로 탄탄해 부품 공급이 가능하지만 외부 온라인 장치와 연결하는 ‘커넥티드카’가 점차 확대되면 고도의 전장부품 수요는 급증하게 된다”며 “현재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부품업체는 전체의 5%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탄소중립 정책이 가속화할수록 당분간 차 부품업계 신음은 잦아들기 어렵다고 본다. 이들의 연구개발(R&D) 여력도 단시간에 키우긴 쉽지 않다. 계동삼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 단장은 “중고차 시장을 완성차 제조 대기업에 개방하면 신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 역시 커지고 해당 차량 판매가 늘어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부품업계 매출이 상승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부품업체 지원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품업체들은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로 신차 출고가 늦어지면서 일감 자체가 줄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에 새로 등록된 차는 총 40만7000대. 직전 2분기와 비교하면 7만1000대(14.8%)가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 코로나19 탓에 외국인들이 못 오면서 내국인을 고용하기 위해 인건비를 올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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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0년 1~11월 외국인 근로자 수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11.6% 줄어들었다.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월 200만원 안팎을 급여로 주면 주변에서 ‘그런 회사를 왜 다니느냐’고 하는데 자동차업계에서 줄 수 있는 월급은 일정 부분 한정돼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품업체 입장에서 전기차로 공정을 대폭 전환하는 일도 쉽지 않다. 다행히 프레스 공정의 경우 별도 공정을 설치할 필요가 없어 일부 부품업체들의 전기차 대응 전환은 빨랐다. 하지만 공정을 바꾸더라도 수익이 날 만큼 물량을 팔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수밖에 없다.

    부품 생산에 들어가는 재료비 급등도 영향을 끼친다. 부품 주요 원료인 냉연강판과 구릿값 변동이 대표적이다. 2020년 1월 1t당 715달러였던 냉연강판 유통 가격은 지난해 5월 기준 1117달러로 치솟았다. 구릿값 역시 같은 기간 6049달러에서 1만226달러로 2배가 됐다. 기존 내연기관차의 주요 원자재는 철이지만 전기차엔 유독 구리가 많이 사용된다. 전기차 생산에는 내연기관차 때보다 4~5배가량 많은 구리가 필요하다. 일반 철을 사서 가공비 총 100% 가운데 원재료가 50~60%를 차지한다고 가정하면 이 가운데 구리는 80~90%를 차지할 정도다. 이러면 한마디로 팔아도 남는 게 없을 정도가 되는 셈이다.

    더구나 최근엔 원자재를 살 때 담보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원자재를 주문하면 상품을 받을 때 대금을 준다. 하지만 최근 원자재 가격이 오르자 원자재 공급 업체들이 선수금을 일부 요구하기도 한다. 늘어난 원자재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1차 부품업체에서 원자재를 받아서 공정만 하는 2차 협력업체들도 부지기수다.

    전기차 전환으로 엔진과 배기 등 관련 부품은 줄거나 사라질 상황이라 당장 부품업체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미국은 오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을 50%까지 높이고 유럽연합(EU)과 중국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발표했다. 그간 내연기관차 부품을 만들던 업체들이 앞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력부터 시설 투자 등 모든 것이 필요한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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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안산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차 내부에 들어갈 모듈을 제작하는 모습.
    업계에선 차량 전동화가 빨라지면서 그간 해왔던 부품업체 역할이 사실상 사라질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선두주자인 테슬라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중앙집권식 컴퓨터에 넣어 관리한다. 과거엔 각 부품업체들이 소프트웨어 측면도 담당했다면 앞으로는 완성차업체 위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국내 완성차업체 3곳을 포함한 차 부품업계 300개사를 대상으로 지난해 8~10월 석 달간 면밀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 기업의 절반가량(46.7%)은 전기차 관련 분야 전환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그 같은 산업 재편의 파급 영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응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답한 업체 중에서도 전기차 분야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 업체는 17.7%에 그쳤다.

    이들은 최소 3년 이상 지원이 보장되는 장기 프로젝트 중심의 자금 지원과 컨트롤타워 역할 수행을 통한 지원 정보 제공 방안 등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차 부품을 기획 후 양산하는 데까지는 평균 13개월의 시간과 14억9000만원가량의 돈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개발 지원하는 정책 노력 필요

    결국 연구·개발이 핵심인데 이를 추진할 때 업계 애로사항을 제대로 짚어내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협회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업체들은 R&D 때 자금 문제에 가장 고민하고 있으며(47.3%), 관련 전문 인력 부족(32.1%)과 기초 원천 기술 부족(13%),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 저촉(1.5%) 문제도 꼽았다. 특히 미래차 산업 진출을 위해 33%에 가까운 기업들은 “아예 새로운 설비가 필요하다”는 답도 내놨다. 설비 투자의 중요성이 새삼 드러나는 대목이다.

    전기차 전환이 빨라지면서 자동차 정비업계에서도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 수가 3분의 2로 줄면서 부품 교환 비용 등 정비업체 주요 수입원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자동차관리사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전국 정비업체 수는 3만6223개다. 전국적으로 보면 증가 추세이지만 지역별로 따져보면 상황이 다르다. 서울의 경우 9월 기준 3431개로 불과 2년 전인 2019년 말(3590개)보다 4% 넘게 줄었다. 고용노동부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 보급률이 전체 자동차의 5% 선으로 오른 2015~2019년 제주도에선 정비업소 59곳(12.6%)이 폐업했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빨라질수록 정비업계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조사에서 오는 2025년 제주도 전기차가 22만7524대로 늘어나면 이 지역 정비소는 87% 감소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현재 전기차 등이 고장 나면 통상 완성차업체가 운영하는 직영 서비스 센터를 찾는다. 전기모터나 배터리 보증 기간이 긴 데다 나머지 부품은 고장이 덜하기 때문이다.

    [서진우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8호 (2022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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