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승경의 1막1장] 뮤지컬 <레베카> 히치콕에게 아카데미 안긴 ‘레베카’

    2020년 01월 제 112호

  • ▶운명처럼 히치콕에게 날아든 레베카

    고인이 된 지 40년이 지나도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도 히치콕(1899~1980) 감독은 여전히 영화계 중심이 되어 회자된다. 변변한 특수효과 없이 탄생된 그의 기묘한 공포와 불안은 스크린에서 강렬하게 펼쳐진다. 출중한 컴퓨터 그래픽(CG) 기술도 흉내낼 수 없는 그의 전율을 맛보려는 영화애호가들로 그의 회고전은 발 디딜 틈이 없이 인산인해다. 그의 탁월한 심리묘사, 예측하기 힘든 타이밍과 속도감 있는 전개, 박진감 넘치는 절묘한 음향은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아직도 그 창의성은 대체 불가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사로잡은 것으로 평가받는 히치콕 감독은 아카데미상 시상식 레드카펫의 단골 주인공이었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호불호의 강한 평을 받았던 그는 살아생전 이단아라는 폄하를 감내해야 했다. 단 한 번도 아카데미상 감독상의 영광을 받을 수 없었던 그는 단 한 번 작품상을 수상하며 체면치레를 했는데 그 영화가 바로 <레베카>다. <레베카>의 원작은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영국의 여성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1907~1989)의 동명 베스트셀러이다. 히치콕이 모국인 영국 거주시절 제작한 <사라진 여인>은 세계적인 이목을 받으며 그를 촉망받는 감독으로 발돋움시켰다. 여세를 몰아 그는 소설 <레베카>의 영화제작을 꿈꿨다. 다만 흙수저 출신 예술가였던 그가 감당하기에 천정부지로 오른 모리에의 저작권료가 부담되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 때! 그에게 운명의 손길이 다가왔다. 미국 전역에서 호평 받고 있는 히치콕의 상품성을 간파한 할리우드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19 02~1965)의 러브콜이었다. 히치콕은 이것이 성배이자 동시에 독배라고 감지했지만 이 양날의 검이 그의 판타지를 영상에 구현할 유일한 통로임을 예감했다. 그는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검을 쥐어야 했다. 혹독한 기계적인 할리우드식 시스템에서 무자비한 상업적인 가치에 휘둘려야만 했지만 1940년, 그는 <레베카>의 메가폰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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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 속에 감추어진 강렬한 로맨스

    동네 구멍가게 수준의 자본력이었지만 감독의 예술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영국의 영화제작환경에 비해, 할리우드는 막대한 제작비를 보장해주지만 직업인. 기능인처럼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맞춤형으로 움직여야 했다. 이러한 셀즈닉의 노예계약에 환멸을 느낀 히치콕은 계약대로 3편만 만들고 셀즈닉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아카데미상은 못 받았지만 <레베카>의 성공으로 인정받은 히치콕은 마니아층이 형성될 정도로 대중의 사랑받았고 그의 <레베카>는 오늘까지 전 세계에서 상영되고 있다.

    영화가 세상에 나온 지 2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독일에서 이 영화를 본 한 소년은 이 영화를 꼭 무대에 올려보리라 결심한다. 후일 극작가가 된 이 소년은 뮤지컬 <엘리자벳>, <모차르트> 등의 최고의 뮤지컬을 극작하며 영미 뮤지컬과 프랑스 뮤지컬로 양분된 뮤지컬 시장에 독일어권 뮤지컬의 새바람을 몰고 온다. 이렇게 2006년, 미하엘 군체(75)는 그동안 주옥같은 작품에서 함께 명콤비를 이루었던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73)와 어릴 적 염원이었던 <레베카>를 무대에 올린다. 스토리상으로는 영화와 같은 라인을 따르지만 뮤지컬에는 영화와는 결이 다른 음산한 신비가 탄생된다. 흑백영화의 극단 대립은 뮤지컬의 감각적인 조명이 품어내는 색채와 긴장감이 고조되는 음악으로 입체화된다. 뮤지컬에는 스산함과 우아함 사이의 소름과 공포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로 시종일관 음산하게 흐르지만 결국에는 강렬한 사랑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은 극이 끝날 때까지 극중 여주인공의 이름을 모른다. 단지 윈터 부인으로만 불리는 그녀는 ‘나(Ich)’로만 존재할 뿐이다. 반면 극의 제목이기도 한 ‘레베카’는 이미 사망했음에도 극중 등장인물은 레베카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눌려 그녀의 그늘에 얽매여 각자 속을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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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종착지는 결국 진실한 사랑!

    돈 많고 멋쟁이인 맥심 드 윈터(류정한, 엄기준, 카이, 신성록 분)는 불의의 사고로 부인 레베카와 사별한다. 고달픈 마음을 식히러 떠난 여행지 몬테카를로에서 만난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나(박지연, 이지혜, 민경아 분)’와 그는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20일 만에 결혼식을 올린 그들은 맥심의 저택인 맨덜리로 와서 행복한 신혼을 만끽한다. 하지만 그들의 단꿈은 도착한 그날 무참하게 산산조각난다. 죽은 레베카가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맨덜리 저택은 그녀에 의해 조종되고 ‘나’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왜냐하면 맨덜리 저택의 집사 댄버스 부인(옥주현, 알리, 신영숙, 장은하 분)이 자신이 모시던 레베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는 무표정한 경계심으로 시종일관 새로운 안주인 ‘나’를 옥죄며 그녀를 내쫓을 궁리에 몰두한다. 댄버스 부인의 계략대로 레베카가 생전 사용하던 옷, 화장품, 식기, 장신구를 그대로 물려받게 되어 의기소침해진 ‘나’는 레베카의 아바타가 된 격이다. 설상가상으로 남편 맥심조차 레베카의 노이로제에 걸려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냉정한 눈빛으로 레베카와 겹쳐지는 ‘나’를 바라본다. 소심하게 작아지기만 하던 ‘나’는 천군만마 같은 자신을 향한 남편의 절절한 사랑을 이내 깨닫게 된다. 견고한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나’는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와 벼랑 끝에서 싸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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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1900만 명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레베카를 관람하지 않은 관객은 있어도 한 번 관람한 관객은 없다? ‘3옥타브 솔’까지 최상고음을 오르내리는 초고난이도의 선율을 강렬하고도 섬세하게 연기해야 하는 댄버스 부인의 ‘킬링넘버’를 비롯한 뮤지컬 <레베카>의 치명적인 무대울림은 묘한 중독성을 가진 메아리로 승화된다. 흐르는 눈부신 무대예술과 다채로운 음악은 관객의 눈과 귀를 확실하게 잡는다. 2013년 한국 초연 이후 다섯 번째 공연을 맞이하는 <레베카>는 초특급 흥행대작으로 한국 총 동원 관객 수 67만 명, 평균 객석 점유율 92%의 긴장감 넘치는 또 다른 매력으로 무대를 압도한다. ‘아무리 봐도 또 보고 싶은’ 레베카 신드롬을 이어가며 더욱 업그레이드된 뮤지컬 <레베카>가 언제나 관객을 설레게 하는 이유다. <레베카> - 170분(인터미션 20분)

    ·공연일시 : 2020년 3월 15일까지

    화·목 20시 / 수·금 15시, 20시 / 토·공휴일 14시, 19시 / 일 15시

    ·공연장소 :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출연 : 옥주현, 알리, 류정한, 카이, 엄기준, 신성록 등

    [황승경 국제오페라단장, 사진제공 EMK뮤지컬 컴퍼니]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2호 (2020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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