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흑당 버블티’의 원조는 감자탕?! 조선시대 흑당은 보약 ‘점입가경’ 건강한 단맛

    2020년 01월 제 112호

  • 한동안 버블티 열풍이 불더니 요즘 몇 년은 ‘흑당 버블티’가 유행이다. 버블티에 흑설탕을 추가한 게 전부인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인기일까? 혹자는 극강의 단맛을 이유로 꼽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비밀은 아무래도 버블티에 들어가는 흑설탕 아닌 흑당(黑糖)에 있겠는데, 이게 꽤 역사가 깊고 사연이 많다.

    흑당은 흑설탕과는 다르다. 원칙적으로 사탕수수 즙을 정제해 당밀을 분리하고 원당을 결정화시킨 것이 백설탕이고, 당밀이 남아 있고 탈색하지 않은 것이 흑설탕(Brown Sugar)이다. 반면 사탕수수 즙을 그대로 졸여 끈적끈적한 덩어리로 만든 게 흑당(Black Sugar)이다. 때문에 흑설탕에 단맛만 있다면 흑당에는 사탕수수의 영양과 풍미가 살아 있다. 거창하게 말해 남국의 향기와 맛이 배어 있다. 아마 흑당 버블티가 인기를 얻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음식의 역사를 보면 뜻밖의 사실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흑당 버블티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사실이 흑당 속에 잔뜩 녹아있다. 먼저 왠지 모르게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이 음료, 언제 어디서 시작됐을까? 버블티는 대략 1990년대 타이완에서 유행해 세계로 퍼졌고, 흑당 버블티는 2010년을 전후해 역시 타이완에서 생겨나 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맞기는 한데 정확하게 말하면 원조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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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당 버블티의 원조는 ‘감자탕’이다.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어떻게 감자탕이 흑당 버블티의 원조가 될 수 있냐는 분들이 대부분이겠는데, 옳은 말씀이다. 당연히 우리가 알고 있는 뼈 해장국, 감자탕이 원조는 아니다. 사탕수수의 한자 표기인 감자(甘蔗) 즙을 끓여 졸인 국물 탕(湯)인 감자탕이 뿌리다. 이쯤 되면 말장난으로 억지 관심 끌려 한다고 비난하는 분들도 있겠는데 애써 부정은 않겠지만, 그럼에도 말장난 같은 소리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실제 고대 중국에서는 흑당을 감자탕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해 흑당 버블티가 최근 새로 개발된 음료 같지만 따지고 보면 역사가 그만큼 오래됐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언제부터 흑당 버블티인 감자탕을 마셨을까? 옛 문헌 중 <삼국지>에 감자탕이 보인다. 소설 삼국지인 <삼국지연의>가 아니라 역사책에 실린 기록이니 3세기에 실제로 존재했던 식품이다. 오나라 역사를 적은 <오서>에 교주(交州)에서 감자당(甘蔗餳)을 진상했다고 나온다. 감자당은 사탕수수엿이니 요즘 말하는 흑당이고 이것을 끓여 마신 게 감자탕이다. 교주는 지금의 중국 광동, 광서 지역으로 삼국시대에는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이역만리 남만 지역이다.

    이 무렵의 감자당, 즉 흑당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1400년 전인 6세기 말 육조시대 기록에는 사탕수수 즙을 햇빛으로 말렸다고 나온다. 정리하면 남국에서만 자라는 사탕수수에서 짜낸 즙을 햇빛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엿 덩어리로 만든 것이 흑당인데, 남방에서 공물로 바쳐야만 맛볼 수 있었다.

    그러면 고대에는 흑당을 어떤 용도로 마셨을까? 지금처럼 맛으로 마시는 디저트 음료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특별한 용도가 있었을까? 고대의 흑당, 나아가 흑당의 원료인 사탕수수 즙은 보통 음료가 아니었다. 요즘은 설탕이 건강에 좋지 않은 감미료라는 인식이 강하고 흑당 역시 귀할 것 없는 음료지만, 고대에 흑당 내지 사탕수수 즙은 너무나 귀했기에 왕후장상이 아니면 감히 넘보지 못할 그런 식품이었다. 당연히 특수 용도로 쓰였는데 최초로 보이는 흑당의 원액, 사탕수수 즙은 숙취해소 음료 즉 해장 음료였다.

    고귀한 신분이 아니면 마시지 못한 특수 음료라면서 고작 해장 음료였다니까 역시 싱거운 말장난 같겠지만 여기에도 반전이 있다. 흑당의 원액 사탕수수 즙에 관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더 이전의 중국 한나라 역사를 기록한 <한서>의 ‘예악지’에 보인다. 자장(柘漿)이라는 음료를 설명하면서 한 잔 들이켜면 아침 숙취 해소에 특효라고 적었다. 자(柘)는 사탕수수, 장(漿)은 즙이라는 뜻이니 곧 사탕수수 즙이다. 그러고 보면 해장국의 원조쯤 되는 콩나물국이 6세기 문헌에 보이니 해장의 원조는 흑당 음료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서 예악지>가 도대체 무슨 책이기에 이렇게 숙취 해소 음료까지 적어 놓았을까 싶은데, 역사서 중에서 ‘예악지(禮樂志)’는 일반적으로 왕실의 제사 지내는 법을 설명해 놓은 책이다.

    해장 음료인 자장은 제사에 쓰는 술, 즉 신에게 바치는 술에 대한 설명 부분에 나온다. 이 술은 온갖 꽃이 만발했을 때처럼 향기를 풍기는 술이다. 그만큼 좋은 술이다. 그런데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이런 술과 함께 술 깨는 데 좋은 사탕수수 즙, 자장을 함께 준비한다. 신령이 술에 취해 기운이 맑고 깨끗하지 못함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흑당의 원액 사탕수수 즙이 숙취를 해소하는 해장 음료인 것은 맞는데, 왕후장상 정도가 아니라 신령이 제사 술 마시고 취했을 때 숙취를 없애주는 특별한 해장 음료였던 것이다.

    흑당의 효과에 대해서도 역사서에 기록이 보인다. 흔히 흑당 버블티를 마시며 사탕수수의 천연 성분이 그대로 남아 있어 건강에 좋은 단맛이라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뻔한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왈가왈부 따질 것은 아닌 듯싶고 다만 흑당을 건강한 단맛이라고 하는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사탕수수는 기원전 1~2세기 무렵 중국에서도 멀고 먼 남방에서 어쩌다 구할 수 있는 식품이었다. 삼국시대를 지나 6세기쯤에도 고대 한나라 때보다는 흔해졌지만 여전히 쉽게 구할 수 없는 음료였기에 약으로나 마실 수 있었다. 근대 이전까지는 서양에서도 사탕이 약으로 쓰였던 까닭이다. 그렇기에 6세기 중국 남북조 시대, 도교에 정통한 도사였으며 의사였던 도홍경은 <명의별록>에서 감자탕, 즉 사탕수수를 졸인 흑당을 요즘처럼 몸에 좋은 음료라고 설명해 놓았다. 사탕수수는 강동(江東)에서 잘 자라는데, 그 중 광주(廣州)에서 자라는 사탕수수는 크기가 대나무만 하다. 여기서 즙을 뽑은 것이 사탕(沙糖)으로 사람한테 아주 유익하다고 했다.

    이 무렵은 아직 설탕 정제기술이 발달하기 전이었으니 이때의 사탕은 지금 같은 백설탕이나 흑설탕이 아닌 사탕수수 즙을 졸인 흑당이었을 것이다. 명나라 의학서 <본초강목>에도 간을 따뜻하게 하고 조혈작용을 돕는 등 건강에 이롭다고 나온다. 옛 사람들 눈으로 보면 흑당이 워낙 귀했던 식품으로 어렵게 구해 필요할 때만 마셨으니 그 자체로 보약으로 여겼을 것이다. 옛날 흑당은 이렇듯 곡식을 졸여서 만드는 엿이나 천연 꿀보다도 더 단 남방의 귀중품이었기에 약으로 많이 쓰였는지 주로 의학서에 기록이 보인다. 이 정도였기에 옛날 중국에서는 흑당을 구하는 데 혈안이었다.

    단순히 흑당을 구하는 것에 그친 게 아니라 국산화를 위해 노력했으니 <신당서>에는 당 태종이 647년 마게타(摩揭陀)국에 사람을 보내 흑당 만드는 법을 배워왔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렇게 만든 흑당이 드디어 서역의 것과 비교해 맛과 색이 뛰어나다며 좋아했다는 것이다. 마게타국은 신라스님 혜초가 다녀와서 쓴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천축국’ 중의 하나로 지금의 인도에 있었던 나라다.

    11~12세기 송나라 때에는 지금의 스리랑카인 ‘삼불제(三佛齊)’, 아랍인 ‘대식국(大食國)’에서 사탕을 들여오는 등 흑당은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원으로 퍼졌다. 그리고 사탕수수 재배법과 흑당 제조법이 일본에 흘러들어갔고 다시 타이완으로 전해졌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흑당이 조선 후기 순조 무렵에 보이는데, 한반도에서는 사탕수수 재배가 안 됐던 만큼 흑당 제조기술은 전해지지 않았고 대신 서양 수입품인 박래품(舶來品)으로 전해졌다. 얼마나 달콤했는지 당시 조선 선비가 맛보고는 ‘점입가경의 맛’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유행하는 흑당 버블티, 알고 보면 유서 깊은 동양의 보약 같은 음료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여전히 흑당의 건강한 단맛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만사 필요할 때 적당히 취하면 무엇이든지 보약이지만, 맛있고 좋다고 지나치면 과유불급, 모자람만 못하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2호 (2020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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