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유럽 스테이크는 젠틀맨의 부르주아 음식, 철도와 카우보이 덕에 대중화된 미국 스테이크

    2020년 12월 제 123호

  • 스테이크는 연말 송년모임 같은 자리에서 먹기에 어울리는 음식이다. 고급요리라는 이미지에다 그럴 듯한 레스토랑 분위기까지 맞물리면 음식 하나 먹으면서도 꽤나 기품 있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조금 유별난 부분이 없지 않다. 거칠게 말하면 덩어리째 구운 소고기에 불과할 뿐인데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스테이크를 고급요리로 여기며 그 맛에 열광하는 것일까.

    소고기가 원래 맛있는 고기인 데다 값이 비싸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이상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스테이크의 역사를 보면 경제와 산업, 그리고 문화와 사회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뜻밖의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여성이 들으면 발끈할 수도 있겠지만 스테이크는 태생이 금녀의 요리였다. 물론 여자가 먹으면 안 된다는 법 조항이나 문화적 규범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여성은 애초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스테이크 자체가 원천적으로 마초적 성격이 강하기도 했지만 퍼져나간 배경이 그렇다. 스테이크는 18세기 초, 영국의 비프스테이크 클럽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비프스테이크 클럽은 1705년 영국에서 시작된 남성 사교클럽이었다. 이 무렵 대부분 사교클럽은 숙녀의 출입을 제한한 남성 전용클럽이었으니 특별할 것도 없지만 어쨌든 여자들은 클럽 출입을 할 수 없었으므로 커피와 마찬가지로 스테이크 역시 여성은 먹어보기 힘든 음식이었다. 현재 기준으론 기가 막힌 차별이지만 남녀가 평등하지 않았던 시절, 후세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듯한 흥미성 사실일 뿐이다. 그런데 스테이크는 왜 하필 18세기를 전후해 비크스테이크 클럽 같은 곳에서 발달했을까. 여기에는 나름 의미가 있다. 스테이크가 귀족이 아닌 부자들의 요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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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이크는 산업혁명으로 영국이 부를 축적한 시기에 신사들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요리다. 바꿔 말해 농경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소의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소고기 요리가 퍼졌고 이 무렵 발달한 것이 스테이크였다. 비프스테이크 클럽은 연극배우가 처음 만든 모임이었다.

    다시 말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신사들의 사교모임이었지 귀족의 모임은 아니었다. 소고기 스테이크는 그러니까 경제적 상류층의 음식이었고 계급적 상류층의 요리는 아니었다. 이 무렵 귀족들은 주로 사냥으로 잡은 사슴고기, 백조고기 요리 등을 즐겼다. 이후 비프스테이크 클럽은 신사는 물론 장군과 귀족 등 상류층 전체의 모임으로 발전했다. 소고기 스테이크는 또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 사이 민족갈등의 상징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스테이크라는 요리법보다는 소고기라는 고기가 원인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영국에서 비프스테이크와 구운 소고기 로스트비프가 널리 퍼지자 프랑스인들이 “소고기나 먹는 것들”이라고 조롱했다. 농업사회에서 소는 농사짓는 데 필요한 가축이지 고기를 먹기에 적합한 동물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영국인은 프랑스인을 이렇게 놀렸다. 소고기도 못 먹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며 “개구리 뒷다리나 먹는 것들”이라고 손가락질했다. 프랑스 요리 중에 개구리 뒷다리 요리가 있고, 또 당시 프랑스는 농업사회여서 소고기를 잘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조롱싸움의 결과는 프랑스의 판정패였다. 18세기 후반부터는 프랑스에서도 비프스테이크가 널리 퍼지면서 상류층의 요리로 자리 잡았다. 당시 프랑스의 중산층, 부르주아들은 주말에 가족과 함께 스테이크로 외식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유럽에서 스테이크는 부자들, 상류층이 즐겨 먹는 고급요리였는데 하지만 미국에서는 또 달랐다. 미국에서는 스테이크가 비록 값은 저렴하지 않아도 상당히 대중화됐는데, 여기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다.

    스테이크가 미국에서 대중화된 데는 19세기 서부 개척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남미까지 포함한 미 대륙에는 원래 버펄로라고 하는 들소 무리가 있었을 뿐 젖소를 포함해 흔히 우리가 말하는 종류의 사육 소는 없었다.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정복자를 비롯한 유럽 개척민들이 유럽에서 소를 가져와 퍼트렸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여서 처음에는 스페인 개척민들이 플로리다에 소를 들여와 키웠고 서부에는 1820년대에 당시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에서 정착민들이 유럽의 소 종자를 들여와 목축업을 시작했다. 텍사스는 이후 1936년 멕시코에서 분리 독립하면서 텍사스 공화국이 됐고 1845년 미합중국과의 합병에 서명하면서 미국의 28번째 주가 됐다. 이 무렵 텍사스에서는 소고기가 정말 싸구려 고기였다. 사육 소는 많았던 반면 인구는 적었기에 소는 고기보다 주로 소가죽과 소기름, 우지를 얻는 데 쓰였다. 그러다 1861년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남부 연합에 속했던 텍사스의 목장 주인들도 전쟁에 참전했다.

    1865년까지 5년간 계속된 전쟁기간 중 소를 돌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텍사스에서는 전투가 없었기에 자연방목 상태의 소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 결과 1865년 텍사스에는 약 500만 마리의 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전쟁이 끝난 후 패배한 남부 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텍사스 역시 소는 넘쳐났지만 시장 자체가 없었기에 소 값이 ×값이었다. 반면 뉴욕과 같은 동부는 달랐다. 냉장기술이 발달했고 시카고까지 철도가 연결되면서 소고기 수요가 급증했다. 이 무렵 뉴욕에는 유럽 음식문화의 영향을 받아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가 곳곳에 들어섰다.

    이때 시카고의 가축 중개상이었던 조셉 맥코이라는 사람이 텍사스의 소 떼에 눈을 돌렸다. 텍사스에서는 당시 물가로 소 한 마리가 4달러에 불과했지만 뉴욕에서는 40달러를 훨씬 웃돌았다고 한다. 텍사스 소를 뉴욕으로 가져가면 큰돈을 벌 수 있었지만 아직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운송이 쉽지 않았다.

    이때 등장한 것이 역사적인 대규모 소몰이와 카우보이다. 이들이 소를 텍사스에서 철도 운송이 가능한 캔자스까지 몰고 간 후 다시 시카고까지, 그리고 당시 대륙철도의 중심지인 시카고에서 뉴욕을 비롯한 동부 곳곳으로 소고기가 퍼졌다.

    역사적인 소몰이는 1866년부터 1886년까지 약 20년에 걸쳐 있었는데, 첫해에 25만 마리를 시작으로 20년의 세월동안 서부에서 몰고 간 소의 숫자는 약 2000만 마리에 달했다. 이로 인해 미국에 소고기가 값싸게 퍼졌고 스테이크가 대중화됐다.

    대규모 소몰이 과정에서 많은 전설이 생겨나기도 했다. 서부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카우보이도 그중 하나인데, 여기에는 꽤 많은 오해가 있다고 한다. 영화를 통해 전형적인 총잡이 이미지가 만들어졌지만 사실상 카우보이는 당시 미국의 전형적인 극빈층이었다. 재산을 몽땅 잃은 퇴역 남군들 혹은 멕시코 출신의 히스패닉 내지는 흑인들이 주축이었다. 실제 총을 살 수 있었던 카우보이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최신 콜트 권총 한 정 값이 카우보이의 평균 월급 9개월 치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카우보이 대부분은 젊은 나이에 사망했는데, 총상이 아닌 낙마사고나 초원의 질병이 원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소 떼를 모는 과정이 워낙 험난했다. 소를 제값에 팔려면 살이 빠지지 않게 이동해야 하는데 하루 평균 24㎞의 속도로 약 1600㎞를 달리는 머나먼 여정이었다.

    미국에서 소고기 스테이크가 널리 퍼진 과정에는 또 다른 갈등도 있었다. 치열했던 양과 소의 전쟁이 있었고, 그 이면에는 방목 권리를 놓고 싸운 소와 양 목축업자 간의 반목, 나아가 인종 갈등도 한몫을 했다.

    양의 전쟁(Sheep Wars)으로 불리는 목축업자 사이의 갈등은 1870년부터 1920년 사이에 텍사스와 애리조나, 콜로라도 지역에서 벌어졌던 분쟁이었다. 초원의 풀을 놓고 다툰 싸움으로 약 50년에 걸쳐 120번의 충돌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54명이 사망했으며 약 10만 마리의 양 떼가 학살됐다. 미국에서 소고기 스테이크는 발달한 반면 양고기가 발달하지 않는 배경에는 이렇게 19세기 양과 소의 전쟁으로 인한 양 목축업 쇠퇴도 작용을 했다고 한다. 맛있게 먹는 스테이크에도 이렇게 다양한 산업의 역사와 인간 세상의 모습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3호 (2020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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