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영의 영화로 보는 유럽사] (12) 근대 시민혁명 | 영화 `당통`과 프랑스 대혁명의 明暗

    2020년 12월 제 123호

  • 프랑스에서는 사람 셋만 모이면 혁명을 꾀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를 증명하듯 프랑스 역사를 보면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830년 7월 혁명, 1832년 6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보불전쟁 직후의 파리 코뮌, 나치 독일 치하의 레지스탕스, 1968년의 68운동 등 굵직한 혁명이 많다. 이 가운데 가장 파급력이 큰 것으로는 프랑스 대혁명이 꼽힌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1794년 일어난 시민혁명으로 구체제의 절대 왕정과 군주제를 붕괴시켜 왕이 없는 공화국을 수립했으며, 인권선언문을 인류사에 길이 남겼다. 하지만 혁명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공포정치가 지속되면서 자유와 평등의 이상은 멀어져갔고 결국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대혁명은 끝이 났다. 영화 <당통>의 시대적 배경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기로 당통이 같은 자코뱅파였던 로베스피에르와 대립을 빚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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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영화

    영화 <당통(1983)>은 개혁적 성향의 폴란드 거장 안제이 바이다가 감독을 맡았다.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앞두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거금을 지원받아 제작된 이 영화는 개봉 후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며 프랑스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문제의 핵심은 향락주의자로 볼 수 있는 당통이 화합과 자유의 상징으로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묘사된 반면 도덕적이고 엄격한 혁명가인 로베스피에르는 실제보다 냉혹한 독재자로 연출됐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자코뱅파로부터 정통성을 찾는 프랑스 사회당은 영화 <당통>에 대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사회당 출신 미테랑 대통령은 불쾌감을 표현할 정도였다. 반면에 프랑스 대혁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수정주의 역사가들은 영화가 ‘공포정치’의 지도자 로베스피에르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풍모를 지닌 당통을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시각에 따라 영화 <당통>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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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영화는 공화정 2년째인 1794년, 스산하고 기괴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시민들이 겁에 질려 감시당하는 공포 분위기로 시작한다. 광장에는 단두대가 자리 잡고 외국에서 돌아온 당통이 시민의 환호를 받는다. 길게 늘어선 배급소에서는 빵이 없다는 시민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공안위원회의 공포정치 비난에 앞장선 인쇄소가 폐쇄된다. 이런 가운데 로베스피에르 측에서는 당통을 중심으로 비난 글을 쓴 데믈랑 등이 쿠데타를 모의한다고 의심하고, 당통 편에서는 위험이 닥치기 전에 먼저 로베스피에르를 쳐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로베스피에르는 협력을 구하고자 당통과 만난다. 그러나 둘의 성향 차이만 극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당통은 향락주의적 부르주아답게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해 진수성찬에 값진 와인을 대접하지만 금욕주의자인 로베스피에르는 입도 대지 않는다. 대화가 시작되자 시각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로베스피에르는 당통을 죽이고 싶지 않다며 더 이상 자신을 비난하지 말라고 요구하지만 당통은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고 공포정치를 하는 공안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로베스피에르를 비난한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을 이용해 부를 늘려가는 자로부터 민중을 보호하고 정의의 실현을 위해 공포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당통은 “빵이 없으면 법이 없어! 자유도 정의도 공화국도 없다고. 공안위와 함께 지옥까지 가라!”며 소리를 지른다.

    결국 회담은 실패로 끝나고 그날 밤 당통과 데믈랑 등 4명의 친구가 잡혀가게 된다. 로베스피에르는 당통을 처형하기 위해 재판에 넘기지만, “당통의 재판은 딜레마야. 우리가 재판에서 지면 혁명이 패배하는 거고, 우리가 이겨도 마찬가지야”라며 괴로움을 토로한다. 이어지는 화실 장면에서 로베스피에르는 로마 황제처럼 옷을 입고 초상화를 그리게 하는 등 혁명가가 아닌 독재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재판에 회부된 당통은 자신을 변호하는 발언을 하고 이에 호응하는 사람들로 재판정은 아수라장이 된다. 결국 피고가 없는 가운데 당통과 친구들은 음모를 주도했고 국민의 대표를 부패시켰다는 이유로 사형이 언도된다. 당통은 “인민에게 내 머리를 보여줘라. 그럴 가치가 있다”라며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침대에 누워 식은땀을 흘리는 로베스피에르의 모습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게 그려지면서 교차 편집된다.

    처형이 끝나고 한 측근이 승리를 자축하자고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내가 살면서 지키려고 한 모든 것이 깨져버렸고 혁명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민주주의는 환상이다”라며 절망적으로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아이가 로베스피에르 앞에서 프랑스 제1공화국의 인권 헌장을 기계적으로 떠듬떠듬 외우기 시작한다. “1조,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렇게 살 권리가 있다… 4조, 자유는 타인을 해치지 않는 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각자의 자연권 행사는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할 경우 말고는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다. 이러한 제약은 오로지 법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식은땀을 흘리며 이것을 듣는 로베스피에르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승리자가 아닌 패자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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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두 가지 관점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해석에는 크게 두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익히 알고 있듯 구체제를 타파하고 역사의 진보를 이룬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보는 전통적인 관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프랑스 혁명이 과연 그 정도로 진보적인 사건이었는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해석하는 수정주의적 관점이다.

    수정주의 시각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역사의 진보로 도식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다층적인 모습으로 바라봐야 하고, 실제로 여성·노동자·유색인 입장에서는 구시대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본다. 특히 자유주의적 입장하의 프랑스 수정주의 학자들은 프랑스 대혁명이 민중의 폭력적 개입으로 본궤도에서 벗어났고, 혁명은 입헌군주제와 국민주권의 원리를 담은 ‘1791년 헌법’ 제정에서 끝을 맺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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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스피에르는 위대한 혁명가인가, 냉혈한 독재자인가

    그렇다면 1792년 이후에 일어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는 혁명의 정신인 자유와 평등, 정의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권력유지를 위해 필요 이상의 독재를 휘두른 것일까.

    잠시 역사를 훑어보자. 18세기 말 특권층인 귀족과 성직자는 세금도 내지 않고 호사스런 생활을 누렸지만 시민 계급과 농민은 힘겹게 국가 재정을 떠받치면서도 정치,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했다. 여기에 1785년 극심한 가뭄과 1787년 대홍수, 다시 1788년 가뭄과 우박, 기록적인 추위가 프랑스를 덮치며 민중의 생활고는 극심해진다. 이런 와중에 프랑스 왕정은 미국 독립 전쟁을 지원해 국가 재정이 파탄 위기에 빠진다.

    혁명이 시작되고 우여곡절 끝에 수립된 국민의회는 모든 계급과 특권이 사라졌음을 밝히는 인권선언을 발표하고 교회 재산을 몰수하며 1791년 입헌군주제를 규정한 ‘91헌법’을 제정한다. 그러나 혁명을 막으려는 외국 군대의 위협 속에서 민중들의 혁명은 더욱 과격해진다. 민중을 끌어안은 자코뱅파는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국민 공회를 조직해 공화정을 선포한다. 이후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을 포함한 자코뱅파는 국왕을 처형하고 혁명에 걸림돌이 되는 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보낸다.

    하지만 혁명을 함께 주도했던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은 공포정치가 계속되면서 대립하게 된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의 완성을 위해 공포정치를 지속해야 한다고 본 반면, 당통은 이제 혁명을 중단하고 내실과 화합을 이뤄야 한다고 보았다.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을 같이 했던 당통과 그 지지자들을 숙청하고 종국에는 자신도 반대파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우파가 봉기를 일으키자 혁명주체 세력들은 나폴레옹에게 사태를 진압하도록 하고, 나폴레옹은 1799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보수파가 세력을 회복하여 프랑스 대혁명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로베스피에르는 민중 세력을 이끌어 역사의 진보를 가져온 위대한 혁명가인가, 아니면 ‘인권선언’을 망치고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내몰았던 독재자인가. 두 얼굴을 가진 로베스피에르에 대해 영화는 후자에 좀 더 무게를 실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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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이 공화정을 선포하고 국왕을 처형하며 혁명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을 숙청하기까지 같은 이상을 추구한 동지였다는 사실은 씁쓸한 감정을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 자유와 평등은 과연 양립가능한가, 공존을 위해 타협은 어느 정도까지 용인되어야 하는가, 하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른 가치를 희생해야 한다면 기준은 어떠해야 하는가,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등 여러 가지 굵직한 문제의식을 던져준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분열의 시대를 맞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프랑스 국기에서 파란색, 흰색, 적색은 각각 자유, 평등, 박애를 의미한다. 박애가 한 축을 이루는 것은 자유와 평등을 박애의 정신으로 엮어내라는 의미가 아닐까. 헌법의 기본 정신은 자신의 권리와 더불어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박애의 정신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타협의 자세가 절실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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