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김치 국물과 동지 팥죽, 대보름 오곡밥… 역병을 물리치는 음식들 미신일까?

    2020년 04월 제 115호

  • 중세 유럽을 절망에 빠트렸던 흑사병이 이랬을까, 중국 우한에서 퍼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지금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의학이 발달한 21세기 현대에도 예방과 치료법을 몰라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데 전염병에 무지(?)했던 옛날 사람들은 그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별별 방법이 다 동원됐는데 그 중 하나는 식이요법이다. 음식으로 전염병을 물리친 것인데, 그 속에는 역병은 귀신이 퍼트리는 것이니 음식으로 액땜을 해서 역귀를 쫓아야 한다는 주술적 요소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름의 지혜와 과학이 담겨 있고, 그 흔적이 지금까지도 우리 실생활 구석구석에 남아 전해진다. 역병이 돌았을 때 옛 선인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으며, 그 음식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16세기 초, 평안도 일대에 전염병이 돌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19년(1524년) 7월 7일자의 기록에는 당시의 참상을 이렇게 전했다.

    “평안도 용천 일대에 전염병인 여역이 창궐해 죽은 사람이 670명이나 된다. 예전부터 전염병이 돌면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어찌 이번처럼 참혹한 일이 있는가? 평안감사에게 명을 내려 여러 가지로 구원하여 다시는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산 사람도 굶주릴 염려가 있으니 구호식량을 내리도록 하라.”

    ‘여역(癘疫)’은 지금의 장티푸스 혹은 나병으로 추정되는 병이다. 때로는 이름 모를 전염병을 그냥 여역이라고도 불렀다. 사망자가 670명이라고 했는데 17세기 말 지금의 평안북도 최대 도시였던 의주 인구가 약 1만 명 남짓이었다. 그러니 압록강 하구 마을인 용천 인구는 그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670명이 사망했다면 한마디로 고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을 것이다.

    이런 치명적인 전염병 치료를 위해 조정에서 내린 처방약이 나박김치였다. 여역이 휩쓴 이듬해 중종은 의관 김순몽과 박세거 등을 시켜 의학서 <간이벽온방>을 펴냈다. 이 책에 전염병 확산방지를 위해 순무로 담근 나박김치 국물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 사발씩 마시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구절이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 나박김치였을까. 전염병 창궐 속도가 빠르고 피해가 극심해지자 허둥대던 조정에서 내렸던 속절없는 민간요법이었을까. 아니면 나름의 과학과 영양학적 근거가 있었던 것일까. 알고 보면 그렇게 터무니없는 처사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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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으로 한의학에서는 무와 동치미를 약효가 뛰어난 식품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나박김치의 주재료인 무만 해도 “무가 시장에 나오면 의사가 망한다”고 했을 정도로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인정받았다. <본초강목>에도 무는 가장 이로운 채소로 소화를 돕고, 소변을 다스려 주며 허한 기를 보충하는 데 좋다고 했으니 전염병 창궐 지역에 치료제로 사용했을 만하다.

    따지고 보면 옛날에만 나박김치로 전염병을 막았던 것도 아니다. 현대에도 1970년대에는 연탄가스에 중독됐을 때 동치미 국물로 응급처치를 했고, 2003년 사스(SARS) 유행 때도 김치 국물이 예방에 특효라고 했으니 김치와 전염병 예방의 관계는 꽤 인연이 깊다.

    김치도 그렇지만 옛 사람들이 역병을 물리칠 때 최고로 꼽았던 음식은 팥죽이었다. 흔히 동짓날 팥죽 먹는 이유를 귀신이 팥의 붉은 색을 무서워해 액땜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주술적 측면이고 과학적 근거는 따로 있다. 동지 팥죽이 그 증거인데 팥죽은 한·중·일 공통의 역병 치료음식이었으니 그만큼 효과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지 팥죽의 기원은 6세기 중국의 풍속을 적은 <형초세시기>에 나온다. 황하를 다스렸던 공공씨(共工氏)라는 강의 신에게 아들이 한 명 있었다. 아버지와 달리 재주도 없고 말썽만 피우며 온갖 못된 짓을 다하다 동짓날 죽어 역귀가 됐다. 마침 이 귀신이 팥을 무서워했기에 팥죽을 끓여 역귀를 쫓았다는 것이 <형초세시기>에 나오는 동지 팥죽의 기원이다. 무슨 뜻일까. 역귀는 전염병 역(疫), 귀신 귀(鬼)이니 곧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강의 신인 공공씨가 분노해 홍수를 일으켰고, 그러자 재주 없다는 아들이 전염병을 퍼트렸다는 소리다.

    역귀가 설쳤던 형초 지방은 양자강 중류 지역으로 옛날부터 홍수가 잦았던 곳이다. 연평균 강수량이 1800~2000㎜인 데다 집중 폭우가 쏟아져 현대에도 홍수로 인한 피해가 엄청났던 곳이다. 그래서 지금은 산샤댐을 세워 홍수를 막고 있다.

    홍수가 나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이 전염병이다. 방역시설이 전무했을 6세기 무렵이면 홍수 후 전염병은 필연이었을 것이기에 그 두려움이 홍수를 일으키는 강의 신인 공공씨의 재주 없는 아들이 죽어서 역귀가 됐다는 말로 표현됐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팥죽이었을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5~6세기 팥은 일반 백성들에게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6세기는 아직 벼농사 지역인 중국 남방에조차 쌀이 널리 퍼지지 못했을 때다. 그러니 일반 백성들한테는 칼로리가 높은 팥이 특별 영양식 역할을 했다. 실제로 당시 의사들은 하나같이 팥을 병을 고치는 묘약으로 여겼다. 6세기 때의 의사 도홍경도 <신농본초경>에서 팥은 붓기를 가라앉히고 고름을 없애준다고 했으니 이질 같은 전염병 역귀를 물리치는 데 안성맞춤이다.

    또 하나, 동짓날은 양력으로 12월 21일 또는 22일이다.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추울 때다. 형초 지방은 양자강 유역인 만큼 기온은 많이 떨어지지 않지만 습도가 높아 한기가 뼛속을 파고드는 것처럼 오슬오슬 추운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뜨거운 팥죽을 먹으면 한기를 쫓아 추위를 이겨내고 동시에 겨울철 부족했던 영양을 보충할 수 있다. 역귀는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인 만큼 몸이 따뜻하고 영양상태가 좋은 사람을 싫어한다. 무서워 도망가니 액땜이 되는데 곧 병을 예방하고 이겨내기 쉽다는 소리다. 팥죽에는 이렇게 액운을 막는 주술적 의미와 전염병을 예방 치료하는 과학적, 영양학적 근거가 있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대보름에 먹는 오곡밥, 잡곡밥도 역병과 관련이 있다. 실제 조선시대 문헌에는 대보름에 오곡밥을 먹는다는 기록보다 역병이 돌 때 먹었다는 기록이 더 많이 보인다. 이율곡이 선조 앞에서 강연하고 토론한 내용을 적은 <경연일기>에도 나온다.

    “정초. 팔도에 온몸에 종기가 나는 피부병, 여역(癘疫)이 돌림병으로 맹렬하게 퍼졌다. 민간에서는 하늘에서 강한 독을 품은 역신(疫神)이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사람들이 오곡으로 잡곡밥을 지어 먹으며 돌림병을 물리쳤다.

    시내에 말이 돌기를 잡곡을 쌓아 놓았던 사람들이 이로 인해 큰 이익을 봤다고 한다. 또 사람들이 말하기를 소고기를 먹고 문에다 소 피를 뿌리면 귀신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곳곳에서 소를 도축하는데 죽은 소의 숫자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다. 지난해에는 흉년으로 굶어 죽은 사람이 많았는데 올봄에는 돌림병 때문에 죽는 자가 부지기수다. 임금께서 평안, 황해 두 도에서 전염성 피부병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제사를 지내라고 명했다. 팔도에 모두 돌림병이 퍼졌지만 평안도와 황해도가 특히 심하기 때문이다. 왕자도 전염병에 걸려 온몸에 종기가 퍼졌다.”

    비슷한 기록이 작자 미상의 <문헌교략>에도 보인다. 선조 10년 정초에 한양과 팔도에 온몸에 부스럼이 나는 돌림병이 크게 퍼져 죽는 사람이 많았는데 오곡밥을 먹으면 돌림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해서 잡곡을 쌓아 둔 자들이 큰 이익을 봤다는 것이다. 이율곡의 경연일기에 나오는 내용과 동일하다. 참고로 율곡이 봄이라고 한 것은 지금의 정월 대보름 무렵이다.

    전염병의 피해와 공포가 얼마나 심했는지 그래서 병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 별별 민간 소문과 민간요법이 다 동원됐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과학과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오곡밥의 영양가 때문인지 혹은 무엇인가 신비한 힘을 느꼈던 것 같다.

    나박김치부터 팥죽, 오곡 잡곡밥과 마늘과 식초 등등, 옛날 역병이 돌았을 때 먹었던 음식들을 보고 현대인들은 얼핏 공포심이 낳은 미신이고 무지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상황에 맞춘 나름의 과학과 영양의 조화가 담겨 있다. 더욱이 본질적으로는 역병이 돌 때 무엇보다 잘 먹고 영양의 균형을 맞춰서 병을 예방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지혜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5호 (2020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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