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⑮ 수레바퀴 밑에서 만난 독일의 지성, 헤르만 헤세

    2020년 04월 제 115호

  • 우리에게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유리알 유희>, <싯다르타> 등으로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는 문학가가 되기까지 처절한 몸부림과 절규로 점철되었다. 마울브론 신학교 퇴학생, 시계공장 잡부, 서점 점원, 시인, 화가, 반전주의자 등 그의 이력만 봐도 그의 고난과 역경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자전적인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라는 작품에서 “14세 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고, 15세 때 연애를 하고, 16세 때 술집에 드나들며 금기된 책을 읽고 대담한 글을 쓰다”라고 자신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헤르만 헤세는 독일의 문호가 되기 위해 어릴 적부터 내면에 숨겨진 작은 유혹들과 부딪히며 처절하게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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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세의 어릴 적 방황이 스민 고향, 칼브(Calw)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칼브는 ‘검은 숲’이라는 뜻처럼 전나무 숲이 울창하다. 낯선 도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인적이 드물고 여행자들의 방문도 아주 적은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하지만 헤세를 사랑하는 팬들로 일 년 내내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 바로 그의 고향, 칼브이다. 그 이유는 1900년에 발표한 <헤르만 라우셔>와 1915년에 발표한 <크눌프>는 나골트강을 배경으로 하고, 1906년에 발표한 <수레바퀴 밑에서>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이곳을 무대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세는 “내가 시인으로서 숲이나 강, 초원, 밤나무 그늘, 혹은 전나무 향기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칼브 주변의 숲과 나골트강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수레바퀴 밑에서>를 통해 자신의 소년 시절을 회상하며 가족과 친구 등 사춘기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과 방황했던 시절을 가감 없이 그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를 좋아하는 팬들은 헤세의 고뇌와 처절했던 삶에 대한 흔적을 찾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세는 1877년 7월 2일 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1962년 스위스 몬테뇰라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다. 그는 유서 깊은 신학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끝내 신학자의 길을 저버리고 문학, 그림, 음악 등 예술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아버지 요하네스는 개신교의 목사였고, 어머니 또한 신학자의 딸이었다. 특히 외할아버지 헤르만 군테르트는 우수한 신학자로 인도에서 수년간 포교 활동을 하였으며, 그의 성품과 종교적인 열정은 헤세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가 남긴 보석 같은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그의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여행도 꿈꾸게 된다. 사실 소박한 꿈이 꿈틀대는 칼브는 여행지로서 많은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은 아니다. 여느 도시처럼 큰 교회나 성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리품을 전시한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별로 없다. 다만 헤세가 보냈던 그 시절의 작은 예배당, 변함없이 흐르는 나골트강, 검은 전나무 숲, 그의 유품을 전시한 헤세 박물관 등 그의 문학적 배경이자 원천이 된 고향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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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몇 번의 기차를 갈아타고 산 중턱에 있는 칼브 역에 내리면 발아래로 나골트강과 아기자기한 집들, 그리고 도시의 이름처럼 짙은 전나무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차역이 높은 곳에 있는 것도 낯설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마을로 진입하는 것도 흥미롭다. 우선 마을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골트강을 건너야 하는데, 헤세가 살던 시절에는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4개의 다리가 세워져 있다. 역 바로 앞에 있는 마르크트 다리는 최근의 것이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니콜라우스 다리는 북서쪽으로 100여 미터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드디어 니콜라우스 다리에 이르면 헤세가 고뇌하고 방황할 때마다 친구가 되어 준 소박한 예배당이 재빠르게 눈 속을 파고든다. 다리의 길이는 십여 미터이고 너비도 그리 크지 않지만, 한 천재의 어릴 적 꿈과 고독감이 스며 있어, <수레바퀴 밑에서>를 읽은 팬들에게 이 다리는 일생에 꼭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성지와 같은 곳이다. 다리는 바닥에 박석을 깔아 중세의 멋스러움을 더했고, 지금은 들어갈 수 없는 600여 년 된 예배당은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헤세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작은 다리 한가운데 안경 쓰고 중절모를 손에 든 헤세의 청동상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대부분 여행자는 청동상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다리 난간에 앉아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조용한 마을과 호흡하고 헤세의 자유정신과 마주한다.

    니콜라우스 다리를 건너 본격적으로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투박하지만 아담한 분수가 눈에 들어온다. 일명 ‘헤세 광장’에 서 있는 분수대는 그가 수습공으로 일하던 시계공장 부근이어서 <수레바퀴 밑에서>의 주인공을 회상하기에 알맞은 장소이다. 작은 광장 중심에는 그의 초상화가 새겨진 ‘헤세의 분수’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원래 분수는 마을의 중심지에 있었지만, 탄생 75년을 맞이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분수대를 등지고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한 걸음 더 안으로 들어가면 이곳의 상징인 시청사가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마을에서 제일 큰 시립 교회와 마리크트 광장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시청사 앞에는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어우러져 그나마 분주한 느낌을 준다. 특히 시청사 정면에 있는 6번지에는 헤세의 초상화와 그의 가족이 1874부터 1881년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동판에 아로새겨져 있다. 바로 6번지 가옥이 헤세가 태어난 생가이다. 현재 생가는 사람이 거주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생가 앞에 서면 머릿속에는 그의 영혼과 만나는 상상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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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헤세의 문학적 향기를 좀 더 느끼고 싶다면 생가를 등지고 낮은 언덕으로 100여 미터 정도 올라가면 그와 관련된 모든 기록물과 유품을 모아 놓은 헤세 박물관에 이른다. 오전 11시에 문을 여는 박물관에는 세계 각지에서 출판된 그의 간행물들과 사진, 그리고 헤세가 사용하던 물건들이 시대별로 잘 전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박물관에서 인상적인 것은 앙드레 지드, 로맹 롤랑, 슈바이처 박사 등 유명인들과 주고받은 엽서, 헤세의 사진, 헤세의 육성이 담긴 레코드, 헤세가 사용했던 타자기, 40세 이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의 삶을 극복하기 위해 그렸던 수채화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그가 남긴 수채화와 자연 풍경을 스케치한 그림들은 그의 또 다른 예술적인 면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마울브론 수도원에서 사용하던 책상이 전시되어 있어, 그의 절망적이고 방황하던 사춘기 시절을 연상케 한다. 다양한 유품들을 바라다보면 독일의 지성인 헤세의 문학관과 그의 세계관에 빠져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한 편의 시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삶의 밀도를 한층 더 높여준다. 툭 부러진 나뭇가지

    벌써 여러 해 동안 그대로 매달려

    바람 불면 삐걱대며 메마른 노래를 부른다

    잎사귀도 다 떨어지고, 껍질도 없이

    벌거벗고 창백한 모습, 기나긴 인생길에

    기나긴 죽음의 길에 이젠 피곤한가 보다

    그래도 단단하고 끈질기게 울리는 그의 노랫소리

    버팅기는 소리, 하지만 남몰래 두려운 소리

    여름 한 철만 더

    겨울 한 철만 더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5호 (2020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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