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⑫ 추상화가 파울 클레를 스위스 베른에서 마주하다

    2020년 01월 제 112호

  • “나는 음악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고, 앞으로도 위로받을 것이다”라는 파울 클레의 말을 생각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스위스의 수도 베른으로 겨울 여행을 떠난다.

    ‘곰’이라는 뜻의 베른은 1191년 도시 건설자로 유명한 베르톨트 5세에 의해 군사적인 요새로 건설됐다. 13세기 초 자유도시로 성장한 베른은 나폴레옹에게 정복돼 프랑스의 통치를 받은 적도 있지만, 1848년에 스위스의 수도가 되면서 지금까지 옛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스위스 한복판에 자리한 베른은 인구 15만 명의 작은 전원도시지만, 루소·아인슈타인·헤르만 헤세·파울 클레 등이 머물며 많은 역사적 자취를 남긴 예술의 도시이다. 고전적인 예스러움을 한껏 뽐내는 구시가지는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중세의 분위기가 일 년 내내 펼쳐지는 곳이 바로 베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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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 클레
    중앙역에서 구시가지 중심부로 들어서면 유럽 특유의 고풍스러운 건축물들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시계탑, 11개의 독특한 분수, 800여 년 된 석조 아케이드 등 중세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장미정원에 서면 발아래로 아레 강과 스위스 최대 성당인 베른 대성당이 힘찬 위상을 뽐낸다.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건축물에서는 진한 중세의 향기가 배어난다. 좀 더 베른의 깊은 속내와 파울 클레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 도시의 중심인 슈피탈 거리로 가야 한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따라 덜컹거리는 전차들이 슈피탈 거리를 마구 누비며 낭만적인 분위기가 쉴 새 없이 연출되는 슈피탈 거리. 고전적인 전차를 타고 구시가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이 도시의 자랑거리인 11개 분수는 빼놓지 말고 봐야 할 명소이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힘차게 솟아나는 분수들은 베른 사람들의 질긴 생명력과 강인함을 보여준다. 어디서 물을 끌어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모터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적인 수차와 압력을 이용해 분수를 만든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분수는 16세기에 만들어졌으며 다양한 모양의 동상이 분수 위를 장식하고 있다. 백파이프 연주자의 분수, 베른의 영광을 그린 사자의 분수 그리고 이 도시를 만든 체링겐 가문의 베르톨트 5세가 투구를 쓴 곰 분수 등이 중세도시의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중세시대의 기품과 우아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베른의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이 도시를 대표하는 추상화가 파울 클레의 삶과 그의 흔적이 점점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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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강의 푸가(1921)


    러시아의 칸딘스키와 함께 추상화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히는 파울 클레는 베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이다. 1879년 12월, 베른 교외에 있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인 뮌헨부흐제에서 태어난 클레는, 음악 교사였던 아버지와 성악가였던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7세 때 바이올린을 배웠고, 11세 때부터는 베른 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할 만큼 음악적 재능이 탁월했다. 음악뿐만 아니라 소년 클레는 시도 잘 썼고, 그림도 잘 그렸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청년이 된 클레에게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것인지 아니면 화가가 될 것인지. 음악을 전공한 부모님은 클레가 바이올린 전문 연주가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1914년 튀니지의 카이로우완을 다녀온 클레는 “색은 나를 소유하고 있다. 그것은 나를 영원히 소유하고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순간만큼은 색과 내가 하나라는 행복한 느낌이다. 나는 화가이다”라고 선언하며 연주자가 아닌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음악가가 아닌 화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미술에서 자신의 무한한 창조력을 최대한 발휘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클레가 음악가로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피아니스트인 릴리 슈툼프와 결혼한 후에도 생계를 위해 부부가 함께 공연했고, 바이올리니스트로 연주 활동도 계속해 나갔다. 결과적으로 보면 클레의 선택은 적중했고, 자신의 신념대로 부단히 노력해 고전주의 음악에 충실한 ‘음악가’라는 칭호보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추상화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좀 더 그의 예술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는 2005년 베른 외곽에 문을 연 ‘파울 클레 센터(Zentrum Paul Klee)’로 가야 한다. 물결 모양의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파울 클레 센터는 베른 시민들이 그의 예술에 대한 오마주로 탄생시킨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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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체른 공원(1938)


    61세까지 살다간 클레가 평생 그린 그림의 수가 9000여 점인데, 이 중에서 4000여 점을 파울 클레 센터가 소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에 의해 설계된 건물은 그의 작품만큼 추상적이고 독특하다. 현재 클레의 미술 전용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음악·공연·댄스 등 문화예술을 위한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이다. 그래도 이곳을 찾는 주된 이유는 클레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이다. 클레의 작품 수가 워낙 많아 센터에서는 120~150 작품씩 주기적으로 변경하며 전시하고 있다. 어떤 작품을 만날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은 단순하면서 맑고 때로는 해학적이고 너무 추상적이라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작품에 쏟은 그의 열정만큼은 똑같이 느낄 수 있다. 클레는 “나의 예술적 자양분이 음악”이라 했을 만큼 음악을 미술에 접목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1920년 이후 그는 음악과 미술의 상응 관계를 조명하기 위해 빨강·노랑·파랑 등을 중심으로 색채 구조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빨강의 푸가>(1921년)와 (1930년) 등 여러 작품에서 마치 악보 위에 음표들을 배열하듯이 색채들을 배열하는 시도를 보였고, 이러한 시도는 미술사에서 한 획을 긋는 이정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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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른


    1933년 12월, 화가로서 성공을 거둔 파울 클레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왔다. 독일의 나치는 클레의 아틀리에를 수색하고 우편물 압수하는 등 그의 작품 100여 점을 강탈해갔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수직에서 물러난 클레는 고향 베른으로 돌아왔다. 불행하게도 이때 클레의 손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난치병이 더욱 심해져 그림뿐만 아니라 바이올린도 더는 연주할 수 없었다.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던 클레가 1936년에는 불과 25점밖에 그림을 못 그릴 정도로 그의 육체와 정신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클레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예술적 영혼을 아주 치열하게 짜내기 시작해 1937년에는 264점, 1938년에는 489점을, 1939년에는 무려 1254점을 그렸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해인 1940년, “나는 이 세상에서 이해될 수 없는 존재다. 내가 편안하게 머무는 곳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통의 경우보다는 조금 더 창조의 핵심에 다가가 있지만, 아직 충분하다고 할 만큼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하지만 파울 클레의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과 추상화는 예술로 승화되어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베른 하늘에 울려 퍼질 것이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2호 (2020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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