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샌드위치부터 베이글 파니니, 크루아상에 담긴 빵 이름의 비밀

    2021년 02월 제 125호

  • 빵 좋아하는 사람들 많다. 소문난 제과점을 찾아 먼 거리를 마다하고 빵집 순례를 하는 열성파들, 이른바 빵돌이, 빵순이가 적지 않다. 갓 구워낸 빵 냄새에 취하고 입안에 군침부터 도니 맛집 찾아다니듯 빵집 탐구생활이 전혀 번거롭지 않다. 우리 주변에는 이름만 들어도 입맛 다시게 만드는 빵들이 적지 않다. 간단한 땅콩 샌드위치부터 클럽 샌드위치, 서브마린 샌드위치 그리고 크로크 무슈와 파니니 등 낯선 이름까지 샌드위치만 해도 종류가 다양하다. 아침에 커피나 우유 한잔 곁들여 먹는 크루아상, 생크림 듬뿍 얹어 브런치로 먹는 와플은 생각만 해도 분위기가 그럴듯해지고 크림치즈 싹싹 발라 먹는 베이글에선 뉴요커가 된 기분을, 바게트를 먹으면서는 파리에 온 듯 착각에 빠진다. 제과점에서 간식으로 포카치아를 사먹으며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듯한 환상에 빠질 수도 있다. 빵 이름이 가져다주는 이국적인 노스탤지어다.

    굳이 외국 빵뿐만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군것질로 먹는 붕어빵, 도미빵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배고플 때면 마트에서 사다 놓은 식빵 뜯어먹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름만 들어도 군침 돌게 만드는 다양한 빵 종류를 나열했지만 상당수 빵 이름의 원래 뜻에는 뜻밖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런 빵 이름이 생긴 내력에는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이 잔뜩 담겨 있다.

    먼저 샌드위치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말이지만 샌드위치를 먹는다는 것은 곧 모래땅을 파먹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샌드위치는 샌드와 위치의 합성어로 샌드(Sand)는 모래, 위치(Wich)는 고대 영어에서 땅, 장소(Place)라는 뜻이다. 흔히 샌드위치의 유래를 도박 좋아하는 샌드위치 백작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는데 샌드위치라는 작위 자체는 영국 남부의 켄트 주에 있는 항구도시, 샌드위치의 지명에서 비롯됐다. 런던을 흐르는 템스 강 하구의 모래땅에 세워진 마을이라는 뜻에서 생긴 지명이고 샌드위치 백작은 이곳을 다스렸던 귀족에게 내려진 작위다. 초대 샌드위치 백작은 에드워드 몬터규라는 해군제독이다. 청교도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프랑스로 망명했던 찰스 2세가 귀국하는데 이때 왕을 호위해 돌아온 제독이다. 그리고 샌드위치 항구는 그때 왕이 상륙했던 장소다. 샌드위치 백작은 이렇게 왕정복고에 기여한 공로로 받은 작위다. 참고로 샌드위치 빵 이름의 원인제공자로 지목받는 사람은 백작 4세인 증손자 존 몬터규 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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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글도 이름으로 보면 이상한 빵이다. 베이글을 먹는다는 것은 말의 등자(鐙子)를 뜯어 먹는다는 소리가 된다. 등자는 말안장에 매달아 양쪽 옆구리에 늘어트려 말을 탈 때 디딤으로 쓰거나 달릴 때 두 발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도구다. 빵 이름은 등자를 뜻하는 독일어 뷔겔(Bugel)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맛있는 빵에 왜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일단 빵 생김새가 등자를 닮았기 때문이겠지만 그 이상의 배경이 있다.

    1683년 오스만 터키 군대와 신성로마제국 군대인 오스트리아, 폴란드 연합군이 충돌했다. 비엔나 전투로 유럽이 이슬람 세력의 침공을 막아내 기독교 문명을 지켜냈다는 전투다. 신성로마제국 연합군의 패배 직전, 조비에스키 국왕이 이끄는 폴란드 기병대가 지원군으로 달려와 터키군을 물리치고 유럽을 구했다.

    베이글은 이때 전투를 승리로 이끈 폴란드의 조비에스키 왕에게 백성들이 승리의 영광으로 바쳤던 빵이라고 한다. 비엔나의 유대인 제빵업자가 기병대의 승리를 기념해 밀가루 반죽을 말안장의 등자 모양으로 둥글게 빚어 구운 후 뷔겔(Bugel) 빵이라고 이름 지었다.

    팩트가 아닌 소문이지만 어쨌든 왜 하필 이 대목에서 유태인과 폴란드 왕이 나오는 것일까? 일단 베이글이 기본적으로 유태인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폴란드가 다른 지역에서 배척당하던 유태인의 정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베이글 유래에 폴란드 왕이 등장하는 이유다. 훗날 2차 대전 때 폴란드에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비롯한 유태인 학살이 심했는데 폴란드에 유태인이 많이 살았던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크루아상이라는 빵 이름도 황당하다. 어원이 프랑스어로 초승달(Croissant)이다. 그러니 크루아상을 먹는다는 것은 곧 초승달을 먹는다는 말이 된다. 조금 더 확대 해석하면 적의 상징물을 뜯어 먹는다는 말도 된다. 크루아상이 만들어진 것 또한 베이글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전투가 배경이다. 제빵사가 땅굴을 파고 들어오는 터키 군대를 발견한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했고 이를 기념해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 권리를 제빵사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했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황당한 이야기지만 꽤 깊은 뜻이 있다. 터키의 선진 제빵 기술이 오스트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전해지는 유럽 고급 빵의 전파 경로가 반영된 전설이기 때문이다. 비엔나 전투 때인 1683년 당시의 터키는 선진 문명국으로 음식문화 또한 발달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이 제빵 기술을 배워 터키에서 빵의 수호신이 됐다고 할 정도로 제빵 기술이 발달했는데, 오스만 터키와 신성로마제국 전쟁을 통해 터키의 제빵 기술이 오스트리아에 전해진다. 이후 오스트리아에서는 빵 역사에서 획기적 전환점이 되는 스팀 오븐이 개발되는 등 제빵 기술이 꽃을 피운다. 그리고 이런 빵 만드는 법은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왕 루이 16세에게 시집 갈 무렵 프랑스로 전해진다. 프랑스 빵 크루아상을 터키 깃발의 초승달 모양을 본 따 만들었다는 일화는 이런 제빵 기술의 전파 경로가 반영돼 있다.

    알고 보면 원뜻이 이상한 빵 이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와플을 먹는다는 것도 벌집을 먹는다는 소리다. 와플이라는 빵 이름이 벌집(Honeycomb)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네덜란드에서 입, 주둥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예전에는 벌집이라는 뜻이 있었던 중세 네덜란드어 바펠(Wafel)이 어원이다. 와플 이름이 벌집인 이유는 먼저 와플 굽는 금속판이 벌집 모양의 격자형이었기 때문이고, 네덜란드어가 어원이 된 까닭은 한때 네덜란드가 세계 경제와 무역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바게트는 막대기, 지팡이라는 뜻에서 비롯됐으니 바게트 먹을 때는 느낌이 이상할 수 있겠는데 제과점에서 볼 수 있는 포카치아 역시 사실은 화덕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화덕 난로 아궁이를 뜻하는 라틴어 포카치우스(Focacius)가 어원이기 때문이다.

    빵 이름이 화덕에서 비롯된 데는 배경이 있다. 이 빵의 기원은 로마시대로 아궁이의 여신인 포르막스에게 바치는 축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로마에서는 예전 우리 할머니들이 섣달 그믐날 부엌의 신인 조왕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집안에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달라며 풍요를 빌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포르막스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열기를 제대로 조절해 빵이 잘 구워지도록 빌었다. 포카치아는 이때 아궁이에서 구워 바쳤던 제물에서 비롯된 빵이라고 한다.

    굳이 서양의 빵 이름만 이상한 것도 아니다. 붕어빵의 원형이 되는 도미 빵은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빵인데, 이때만 해도 일본에서 도미는 최고급 생선이어서 서민들은 감히 사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 빵 모양이나마 평소 먹지 못하는 고급 생선을 본 떠 만들어 먹으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는 것이고 붕어빵은 예전 한국에서는 붕어가 가장 대중적인 생선이었기 때문이다.

    별 생각 없이 말하는 빵 이름인 식빵도 따지고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다. 빵 중에 못 먹는 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먹을 수 있는 빵이라는 뜻으로 식빵(食빵)이라고 했을까? 빵은 서양 식품이다. 동양에서는 밥이 주식이기 때문에 처음 빵이 전해졌을 때는 어디까지나 간식이었지 밥 대신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단팥빵, 소보로빵이 그런 빵이다. 그런데 식빵은 밥 대신 식사 때 먹을 수 있었으니 그래서 식사로 먹는 빵, 식빵이 됐다. 일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모래땅에서부터 말안장의 등자, 초승달에 벌집, 그리고 지팡이에 화덕, 그리고 붕어에 도미까지 지금 맛있게 먹는 빵 이름의 원뜻을 알고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이름이 생긴 내력을 알고 보면 음식에 대한 고마움, 위기에서 지켜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 등등 하나하나에 모두 감사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5호 (2021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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