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원의 클래식 포레스트] 마리스 얀손스의 후임자로 내정된 사이먼 래틀① 최고 거장 지휘자의 계보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2021년 03월 제 126호

  • 엊그제 올 5월로 예정됐던 ‘라이프치히 말러 페스티벌’이 2023년으로 연기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진작부터 개막공연 티켓을 끊어놓고 기다리던 공연이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전작을 세계적인 교향악단들이 교대로 연주하는 성대한 음악축제! 물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아무래도 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행사 자체의 취소나 연기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도 못내 아쉬운 마음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좀 반가운 소식은 없을까?’ 아쉬움을 떨치려 기억을 더듬다가 연초에 역시 독일에서 날아들었던 낭보가 떠올랐다.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이 차기 상임지휘자로 영국의 사이먼 래틀을 내정했다는 소식이었다. BRSO의 수장 자리는 2019년 말 전임자 마리스 얀손스가 타계한 후로 공석 상태였다. 얀손스와 BRSO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긴밀한 파트너십과 드높은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었기에,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그 자리를 과연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내지 호기심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식이 전해지자 두 가지 상념이 교차했다. 하나는 앞으로 펼쳐질 ‘래틀 시대’에 대한 기대였고, 다른 하나는 ‘최고의 거장’ 얀손스를 향한 그리움이었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마리스 얀손스. 사진 매경DB.
    ▶푸르트벵글러에서 아바도까지

    ‘최고의 거장은 누구인가?’ 어쩌면 그저 호사가들의 말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클래식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는 화두이다. 그중에서도 통상 ‘마에스트로(Maestro)’로 불리는 거장 지휘자들에 관한 질문은 끝없는 갑론을박을 유발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느 정도 정답이 나와 있는 명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요즘에는 지휘자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처럼 통용되기도 하지만, 한 세대 전까지 ‘마에스트로’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오른 거장급 지휘자들에게만 허용되던 호칭이었다. 그런 이들은 대개 지휘대 위에서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는 ‘제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20세기 중후반을 풍미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대표적이다. 한창 때 빈, 밀라노, 런던 등지를 오가며 최고의 교향악단과 오페라단을 지휘하여 ‘기적의 카라얀’으로 불렸고, 1955년부터 1989년까지 독일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클래식의 대중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오스트리아 지휘자이다. 동시대를 풍미한 레너드 번스타인, 게오르그 숄티 등이 라이벌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화려한 명성과 광범위한 역량에서 그 누구도 카라얀의 아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카라얀 이전에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있었다. 카라얀보다 앞서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었던 이 전설적인 독일 지휘자의 독특한 스타일과 심오한 예술혼은 불가사의한 마력으로 당대의 청중은 물론이고 후대의 음반 애호가들까지 사로잡았고,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이 그를 ‘역사상 최고의 마에스트로’로 추앙한다.

    카라얀의 사후 지휘계에는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제왕적 권력을 틀어쥔 권위적 지휘자들의 시대가 가고 이른바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휘자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있었다.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선출된 그는 ‘마에스트로’가 아닌 ‘클라우디오’로 불리기를 자처하면서 단원들을 부하가 아닌 동료로 대했다. 비록 그런 파격의 여파로 베를린에서는 영욕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가 만년에 도달한 음악세계는 더욱 각별했다. 그가 2003년부터 매년 여름 스위스의 루체른 호숫가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동료들과 함께 일구어낸 무대는 실로 지고(至高)의 성취라 할 만했다. 그것은 최고의 역량에 더해진 신뢰와 화합을 통해서 열어 보인 오케스트라 예술의 새로운 경지였고, 화제의 ‘말러 사이클’을 비롯한 당시의 주요 기록들은 영상물과 음반으로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그 아바도가 2014년 초에 세상을 떠나자, 지휘계는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든 듯했다. 아바도의 친구 또는 경쟁자였던 주빈 메타, 다니엘 바렌보임, 리카르도 무티 등이 건재했고, 그의 직속 후배들인 사이먼 래틀과 리카르도 샤이, ‘러시아 지휘계의 차르’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이 연륜을 축적하여 명실상부 ‘거장’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관록의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와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도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최정상의 거장으로 꼽히기에 손색없는 인물들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값진 성취를 보여준 이는 바로 마리스 얀손스였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사진 매경DB.
    ▶대기만성의 거장, 마리스 얀손스

    1960년대부터 명성을 떨쳐온 아바도에 비해 ‘대기만성’에 속하는 얀손스는 다소 낯설어 하실 독자분들도 계실 것 같다. 마리스 얀손스는 1943년 ‘발트 3국’에 속하는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Riga)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옛 소련의 저명한 지휘자 아르비드 얀손스,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였다. 부모를 본받아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얀손스는 처음에는 바이올린을 잡았다가 지휘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엔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러시아 투어를 온 카라얀의 마스터클래스에 출연했다가 거장에게서 베를린으로 오라는 제안을 받지만 소비에트 정부는 그의 출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듬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서 전설적인 지휘 스승 한스 슈바로프스키를 사사했고, 잘츠부르크에서는 카라얀의 가르침을 받았다. 1971년 카라얀 재단에서 주최한 국제 지휘 콩쿠르에 출전하여 2등상을 받았고, 1973년부터는 예프게니 므라빈스키가 이끄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역시 소비에트 정부의 방침 때문에 유럽 본토로의 진출은 제한되었지만, 덕분에 그는 ‘철의 장막’ 양쪽을 대표했던 두 거장, 카라얀과 므라빈스키를 모두 사사한 드문 경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얀손스의 지휘 경력이 본궤도에 올라선 것은 1979년, 노르웨이의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맡으면서부터였다. 그는 이 악단을 20년 넘게 이끌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세계적인 악단으로 발전시켰고, 그 사이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 미국의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도 겸하면서 자신도 국제적인 지휘자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오슬로를 떠나던 무렵, 그는 세계 최정상급 교향악단 두 곳과 차례로 상임지휘자 계약을 맺는 기염을 토했다. 2003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200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에서의 임기가 시작되었고, 그 후 15년여 동안 그는 ‘최고의 거장’으로 칭송받으며 분주하게 세계 각지를 누볐다. 두 악단을 이끌고 런던, 파리, 뉴욕, 도쿄 등지의 세계적인 공연장들을 꾸준히 방문했고, 베를린 필하모닉, 비엔나 필하모닉(빈 필)도 정기적으로 지휘했다. 암스테르담과 잘츠부르크에서는 오페라도 지휘했고, 자택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나이 예순이 넘어서야 찾아온 전성기이자 완숙기였다.

    (※ 마리스 얀손스와 BRSO, 사이먼 래틀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