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현대미술은 법 밖에 존재하는 사기’ 개념미술가는 봉이 김선달?

    2021년 03월 제 126호

  • 이미 4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소위 ‘가난한 수집가’ 또는 ‘프롤레타리아 컬렉터’로 유명한 허브 보겔(Herb Vogel, 1922~2012)과 도로시 보겔(Do rothy Vogel, 1935~) 부부는 로버트 베리(Ro bert Barry, 1936~)의 암스테르담과 토리노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릴 예정인 <닫힌 갤러리(Closed Gallery, 1969)>라는 작품을 당시 돈 250달러에 구입했다. 그런데 이들이 손에 쥔 물리적인 실체는 “전시회 기간 중 전시장은 닫힙니다”라고 쓰인 3장의 초대장과 이 초대장이 진품이라는 보증서가 전부였다. 과연 이런 정신 나간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도 가난한 수집가가 말이다. 그런데 이 부부는 이런 실체가 없는 개념적인 작품만 약 4700점을 모아 후일 미국의 50개 미술관에 50점씩 기증하면서 삶을 정리했다.

    사실 이렇게 물질적인 면보다는 비물질적인, 즉 실체 없이 아이디어나 과정을 중시하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은 ‘예술이란 무엇일까’ 또는 ‘미술시장과 독립된 미술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하겠다고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많은 비평가와 컬렉터를 당혹스럽게 하고 짜증나게 했다. 하지만 어떤 컬렉터는 모험 또는 재미삼아 이런 개념미술의 아이디어나 실체 없는 작품만 수집했다. 보겔 부부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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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수스 <하나 그리고 세개의 의자>(1965) 의자사진, 실제의자, 사전의 의자. MoMA 소장. 사진 정준모


    개념미술가들은 화랑이나 수집가 또는 구체적인 판매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작업했다. 그들에게 판매할 것은 ‘작품’이 아니라 오직 ‘말’뿐이었다. 이들은 특히 상품으로서의 작품을 거부해 미술품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을 약화 또는 부정했다. 이는 컬렉터와 미술가, 전통적인 미술품에 적용되는 모든 가치 기준을 부정하는 공격이자 부정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을 ‘장인’이 아니라 ‘마음’이라 주장했다. 이들에게 세상 물건은 모두 작품으로 선택되고 제시될 수 있었다. 주제 또한 거침없어 일상적인 것, 전문적인 것, 사소한 것, 심오한 것, 사실이거나 추상적인 것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대동강 물 팔아먹는 봉이 김선달을 능가하는 실체 없는 작품을 판매하는 ‘사기’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이들에게 사기를 당해주는 미래 지향적인(?) 비평가와 컬렉터들이 있었다. 이들은 기꺼이 작품을 구입하는 계약서와 진품임을 인증하는 보증서, 작품 구입 후 혹시 재설치에 필요한 경우 설치지침서를 작품 대신 손에 넣었다. 이런 작품의 경우 화재나 도난, 파손 등과 관련된 보험 가입도 불가능했고, 쓸모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는 ‘공기’ 같은 것이었지만 창고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은 있었다.

    정신에 봉사하는 미술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개념미술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업하던 에드워드 키엔홀츠(Edward Kienholz, 1927~1994)가 발표한 <개념그림(Concept Tableaux, 1965~1966)>이라는 작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일반적으로 본다. 키엔홀츠는 작품 제작과 운송, 보관에 드는 비용이 증가하자 작품을 완성하기 전, 작품의 아이디어와 제작방법을 적은 설명서를 액자에 넣어 판매했다. 우선 이 설명서를 구입하고, 그 후 추가비용을 내면 작품을 실제 제작할 권리를 갖게 되고, 세 번째 재료비와 작가의 인건비를 지불하면 실제작품을 제작해주는 방식이었다. 작품 설명서에는 작품의 실현단계별 비용과 가격이 있고, 각각의 설명서에는 작품 제목, 작가명, 그리고 날짜가 적힌 동판을 함께 제공했다. 많은 개념그림을 팔았지만 실제로 제작된 것은 스톡홀름의 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정신병동을 재현한 <주립병원(The State Hospital, 1964)>이 유일했다.

    물론 개념미술에 처음부터 컬렉터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개념미술을 대중들이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코수스(Joseph Kosuth, 1945~)의 대표작인 <하나 그리고 세 개의 의자(One and Three Chairs, 1965)>는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컬렉터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이런 ‘것’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종류의 작품은 작가들에게 많은 돈을 안겨 주었다. 이런 아이러니를 두고 <미술품의 거래(Art of the Deal)>란 책에서 저자 호로비츠(Noah Horowitz, 1979~)는 개념미술이 작품 생산의 본질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미술제작 시스템에 관한 미술’이고, 소비문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인 비평과 일치해 ‘특권 없는’ 미술이라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작품의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에서 ‘팔린다’는 것은 작품이 실패했다는 것이라 말하며 그 이중성을 지적했다. 반미술적이며 반시장적인 개념미술가들은 1970년대 중반 들어 작품을 팔려고 노력했고 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역설적인 태도에 대해 루시 리파드(Lucy Lippard, 1937~) 등 많은 이론가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미술시장에서 한번 탄력을 받은 개념미술은 연일 상종가를 기록하며 컬렉터들에게 인기품목이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미술시장의 선도 종목으로 성장해 1987년에는 크리스티가 48점을 경매에 부칠 만큼 상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때 약 25㎝ 크기의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의 벽화도면이 처음으로 경매에서 약 3000만원에 팔려나갔다. 1960년대에 310만원에 팔린 작품이 약 10배가 오른 가격에 팔린 것이다. 낙찰 받은 이는 솔 르윗의 아카이브에 등록된 번호와 함께 진품 증명서를 수중에 넣었는데, 실제 솔 르윗이 한 일이란 그의 서명이 첨부된 진품증명서와 도면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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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 르윗 <월 드로잉 895> 1999년 2월 SF MOMA 로비. 사진 정준모


    이렇게 개념미술은 누가 작품을 제작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벽화의 형태와 실행방식을 지시한 솔 르윗이 창작의 주체이자 작가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실체가 없는 개념만 있는 미술품은 종종 그 ‘대동강 물’ 같은 성격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2012년 푸에르토리코 컬렉터 로데릭 스틴캄프(Roderic Steinkamp)는 시카고의 한 화랑에 이 작품의 원본 보증서를 위탁했다. 하지만 화랑은 보증서를 분실했고 보증서 없이는 작품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판매할 수 없게 된 소장가는 화랑주에게 15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물론 솔 르윗 재단은 작품의 유일성이 훼손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보증서의 재발급을 거부했고, 사후 작품을 제작 판매하는 저드나 댄 플레빈 재단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보험 회사도 이 경우 보상할 수 없다고 해 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물론 몇 주 뒤 양측은 미공개 금액으로 합의해 종결되었으나 이 사건 이후 보험사 크리스털(Crystal&Co.)은 AIG보험과 협력해 개념미술의 상업적 가치를 보장하는 보험 상품을 개발했다.

    21세기 지금의 개념미술은 어떨까. 대런 베이더(Darren Bader, 1978~)는 넷 아트, 사회적 실험, 텍스트 작업 등을 통해 갤러리에서 미술작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의 존재적 본질을 탐구하고 비평하는 작업을 한다. 관객들이 임의로 기부한 일상용품을 그대로 작품이라고 다시 팔거나 경매를 통해 높은 가격을 낙찰시켜 이를 사회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세갈(Tino Sehgal, 1976~)은 미술 산업을 상품의 생산과 유통을 중심으로 한 시장경제의 축소판으로 보고 미술관을 ‘물건’을 ‘작품’으로 만들어 엄청난 부를 생산하는 곳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그는 미술관이 소장할 수 없는 ‘대화’나 ‘순간적인 행위’만을 작업했다. 하지만 그는 상업 화랑과 함께 7700만원에 뉴욕 현대미술관에 이런 작품을 팔았다. 그는 애써 자신의 작품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이율배반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한다.

    결국 개념미술은 ‘작품’보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한 보증서를 사는 것이다. 범부의 눈에는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이상하고, 또 반상업적 태도로 안 팔겠다고 버틸수록 잘 팔리는 이 신통한 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백남준은 미술을 사기라고 했던가? 하여튼 사기는 사기지만 작가는 사람들을 속여서 재미있고 당한 사람은 당해서 즐겁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법 밖에 존재하는 ‘사기’인지도 모른다.

    [정준모]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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