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원의 클래식 포레스트] 마리스 얀손스의 후임자로 내정된 사이먼 래틀 ② 얀손스의 업적과 래틀이 열어 보일 미래

    2021년 04월 제 127호

  • 지난달에 꺼냈던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과거와 미래의 수장들인 마리스 얀손스와 사이먼 래틀에 관한 화제를 이어가려 한다. 앞서 얀손스를 가리켜 ‘최고의 거장’이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이후 ‘가장 값진 성취’를 보여준 지휘자라고 했는데, 그런 평가가 가능한 이유부터 이야기해보자. ▶오슬로를 떠나 날개를 활짝 펼치다

    2000년대 초 얀손스가 암스테르담과 뮌헨에서 정상급 교향악단 두 곳을 동시에 맡게 되었을 때, 그는 국제무대에서 이미 정상급 지휘자로 각광받고 있었다. 사실 오슬로 필이 그와 함께 눈부시게 성장했다고는 하나 다수 청중에게는 여전히 ‘변방의 실력 있는 악단’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숙원사업이었던 ‘오슬로 콘서트홀 건립’이 최종적으로 무산되고 퇴임을 선언하자 사정이 급변했다. 베를린 필과 빈 필을 비롯한 최고의 악단들과 카네기홀, 산토리홀 등 굴지의 무대들에서 러브콜이 잇따랐고, 북유럽에서 웅크리고 있던 얀손스의 날개는 예순을 넘긴 나이에 비로소 활짝 펼쳐졌다.

    그 무렵 ‘준비된 거장’으로서 한껏 물이 올라 있던 얀손스의 위용은 이스탄불의 중세교회에서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등을 지휘한 베를린 필의 2001년 ‘유러피언 콘서트’,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월드 앙코르’라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베를린 필의 ‘발트뷔네 콘서트’ 등의 실황영상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강건하고도 여유로운 음악의 골격, 절묘하게 균형 잡힌 앙상블, 풍부한 음향과 충실한 디테일, 호쾌하되 범람하지 않는 표현과 자연스럽고 소탈한 표정 등이 므라빈스키의 엄밀함과 절도에 카라얀의 유려함과 세련미를 더한 듯한 전성기 얀손스의 지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매우 멋지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효과적인 그의 지휘 포즈는 보는 이의 눈까지 즐겁게 해주는 덤이다.

    아울러 유명한 ‘빈 필 신년음악회’에 처음 초청받았던 2006년의 기록도 빼놓을 수 없는데, 얀손스는 이후에도 이 유서 깊은 음악회를 두 번 더 지휘하는 영예를 누렸다. 물론 그를 수장으로 맞아들인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과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에서도 속속 음반과 영상물을 내놓았는데, 그중에서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지휘한 2004년 9월의 RCO 취임기념공연 실황영상은 ‘얀손스 시대’의 개막을 증언하는 귀중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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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매경DB
    ▶암스테르담과 뮌헨에서 원숙기를 구가하다

    얀손스의 명성은 2010년을 전후로 절정에 다다른다. 특히 RCO는 2008년 영국의 음악잡지 그라모폰(Gramophone)에서 발표한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에서 빈 필과 베를린 필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전까지 ‘만년 3위’로 인식되던 RCO의 반란이라 할 만한 사건이었다. 또 같은 차트에서 6위에 랭크된 BRSO는 시간이 흐를수록 얀손스와의 파트너십을 긴밀히 다지면서 베를린 필이 부럽지 않은 앙상블로 거듭나고 있었다. 얀손스 역시 RCO보다 BRSO에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는데, 그와 RCO의 관계가 ‘동행’이라면 BRSO와의 그것은 ‘밀월’에 가까웠다.

    얀손스와 BRSO의 밀월관계는 세 차례에 걸친 내한공연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이틀에 걸쳐 베토벤의 교향곡 2, 3, 6, 7번을 연주했던 2012년의 첫 번째 내한공연에 대해서 필자가 한 일간지에 기고했던 리뷰를 일부 인용해본다. “BRSO의 앙상블은 독일 정상급 악단답게 견실했다. 단원들의 개인기 면에서는 베를린 필에 뒤질지 몰라도 앙상블의 유기성과 자연스러움이라는 면에서는 오히려 앞선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울러 그 사운드는 여느 독일악단에 비해 한결 밝고 유려하고 따스했다. 그리고 얀손스의 주도면밀한 손길이 모든 파트를 생생하게 살아 숨 쉬도록 만들었다.” 2014년의 두 번째 내한공연은 더 놀라웠다.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등 익히 알려진 명곡들에서 작품들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이나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운, 사뭇 신선하고 고결한 해석으로 충격을 안겼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모음곡’의 클라이맥스에서는 황홀하기 이를 데 없는 ‘천상의 음률’을 선사했다.

    그런 음악, 그런 파트너십이 가능했던 밑바탕에는 얀손스의 인간미가 자리하고 있었다. 거장급 지휘자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에서 한결같이 ‘인품’이 거론되는 경우가 드문데, 얀손스는 그러한 사례에 속하는 매우 이례적인 인물이었다. 지난 2019년에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BRSO의 페이스북 계정은 ‘우리는 지금 절망적’이라는 문구로 구성원들의 심경을 전했다. 또 영국의 저널리스트 노먼 레브레히트는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마에스트로들의 빈번한 약점인 식탐, 과음, 색욕, 물욕이 없던 사람. 비즈니스에 관심이 없었고 정치에 시간을 낭비한 적도 없었다. 우리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보화와 같은 사람을 잃었다.” 이처럼 고도의 인품을 지닌 지휘자의 탁월한 역량과 그에게 감화된 단원들의 자발성과 진정한 화합이 이루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마리스 얀손스와 BRSO의 밀월 여정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업적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오케스트라 예술의 극치’였다. ▶래틀의 원숙기에 대한 기대

    한편 얀손스의 뒤를 이어 BRSO를 맡기로 한 사이먼 래틀은 전임자와는 다분히 대조적인 이력의 소유자이다. 1955년에 변방인 라트비아 같은 곳이 아니라 음악 시장의 심장부인 영국에서 태어났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의 엄혹한 분위기가 아닌 자본주의 발상지의 자유로운 환경을 만끽하며 성장했다. 일찍이 청소년 시절부터 영국 음악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스무 살 이전에 유력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약관의 나이에 메이저 악단(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을 지휘했다.

    일개 지방악단(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을 맡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도약시킨 점은 비슷하지만, 젊어서부터 국제무대에서 스타 지휘자로 각광받으며 활약했던 점은 얀손스의 ‘대기만성’과 대비된다. 40대 중반의 나이로 쟁쟁한 선배들을 따돌리고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후임으로 베를린 필에 입성한 과정, 16년에 걸친 베를린 필 재임기의 업적과 한계 등 래틀에 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

    2018년 베를린 필을 떠난 후 래틀은 금의환향하여 한 해 전부터 이끌고 있던 런던 심포니에 안착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 초 BRSO와의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런던 심포니에서는 음악감독에서 명예지휘자로 물러앉기로 했다. 공히 영국을 대표하는 지휘자와 악단의 밀월이 예상보다 훨씬 일찍 막을 내린 이면에는 ‘브렉시트’라는 악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독일에 거처를 둔 래틀의 바람과 BRSO 측의 적극적인 구애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관측된다.

    아마 ‘검증된 거장’ 래틀의 역량 외에 그 특유의 남다른 친화력과 민주적 리더십, 비즈니스 수완도 어필했을 것이다. 그가 취임할 2023년이면 얀손스가 집념으로 건립을 성사시킨 뮌헨의 새로운 콘서트홀이 개관을 예정하고 있는 해이기도 하다. 과연 얀손스와는 사뭇 다른 이력과 개성을 가진 그가 BRSO와 함께 열어 보일 또 하나의 원숙기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된다.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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