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영의 영화로 보는 유럽사] (16) 제국주의와 아프리카 식민지 사회상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맨스에 가려진 식민 지배

    2021년 04월 제 1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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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에는 제국주의 팽창의 최대 피해국이 집결해 있다. 유럽과 맞닿아 있는 데다 금과 다이아몬드의 대륙으로 알려지면서 유럽 강대국의 집중적인 먹잇감이 되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유럽 각국은 넘쳐나는 상품을 소화하고 축적된 잉여 자본의 투자처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1870년 이후 본격화된 제국주의의 아프리카 침탈전은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아직 내전과 기아의 상태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 식민화 과정에서 원주민이 건국한 마흐디국과 침탈 선봉에 선 영국군 간 공방전을 다룬 영화가 전편에서 소개한 <하르툼 공방전>이라면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스펙터클한 영상을 식민지에서 벌어지는 스토리와 엮어낸 영화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1985>는 황홀하게 펼쳐지는 아프리카 대륙의 환상적인 영상과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아름답게 흐르는 낭만적인 로맨스 영화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이 안에는 뼈아픈 아프리카 식민지의 사회상이 투영되어 있어 그림과 음악, 스토리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수작으로 꼽힌다. 덴마크 출신 카렌 블릭센(Karen Blixen, 1885~1962)이 케냐에서 17년 동안 커피농장을 경영하다가 실패해 귀국한 뒤 1937년 자전적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출판했고, 시드니 폴락 감독이 1985년 이 소설을 각색해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작곡상, 음향상, 미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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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렌의 당당함과 데니스의 자유로운 삶, 그리고 목가적 사랑

    영화는 덴마크에 사는 카렌의 나지막한 내레이션과 함께 광활하고 경이로운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 독신 여성 카렌은 아프리카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이곳에 미리 도착한 약혼자 브릭센 남작과 결혼식을 올린다. 카렌은 브릭센의 주장를 받아들여 시작한 커피농장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정작 브릭센은 농장 일에 무관심한 채 사냥만 즐기고 외도를 일삼다 전쟁에 참전한다. 카렌은 어느 날 초원에 나갔다가 사자의 공격을 받고 데니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카렌은 이야기꾼인 자신에게 만년필을 선물하고 아프리카 생활의 나침반 역할을 해준 데니스와 점차 가까워진다. 이 와중에 카렌은 남편에 의해 자신이 매독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고 치료를 위해 덴마크로 요양을 떠났다가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온다.

    결국 남편과 이혼한 카렌은 사랑하는 데니스에게 결혼을 요구하지만 속박 받는 것을 싫어하는 데니스는 그녀를 떠난다. 이후 카렌의 농장과 공장은 화재로 소실되어 도산하고 카렌은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신임 총독에게 키쿠유족 노동자들이 지낼 수 있는 땅을 제공해달라고 호소하는 자리에서 데니스를 만나고, 카렌은 그녀를 바래다주러 다시 오겠다는 데니스를 기다린다. 그러나 약속했던 날 도착한 사람은 비행기 추락으로 데니스의 사망 소식을 전하러 온 전 남편 브릭센이다. 카렌은 장례식 참석 후 쓸쓸한 추억을 남긴 채 아프리카를 떠난다.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가 투영된 <아웃 오브 아프리카>

    로맨스에 감춰진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진짜 이야기는 카렌이 커피농장에서 원주민과 함께 생활하고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한 데니스를 만나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내용이다. 그녀가 아프리카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프리카는 소유와 계몽의 대상이었지만 원주민과 함께 일하고 우정을 나누면서 아프리카는 결코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점에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데니스를 통해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 현실을 비판한 영화로도 볼 수 있다.

    주인공인 카렌은 키쿠유족 노동자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아픈 노동자들을 치료하며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학교를 세우는 의식 있는 농장주이다. 그러나 그녀의 의식 저변에 제국주의적 사고가 배어있음이 영화의 여러 장면에서 드러난다. 카렌이 아프리카에 처음 도착해서 탄 기차에서 카렌은 상아를 옮기는 흑인들을 향해 “슈슈” 하며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한다. 흑인들이 다가오니 급한 마음에 소떼를 몰 때나 사용하는 의성어를 사용한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는 흑인 요리사에게 격식을 갖춰 음식 서비스를 하도록 흰 장갑을 끼워주는 장면이 나온다. 커피농장을 시작한 후 농장 근처에 흐르는 냇물을 보고 하인인 파란이 이 물은 몸바사 것이며 몸바사로 가야 한다고 반대하지만 카렌은 저수지로 사용하려고 제방을 쌓는다. 아프리카인의 공동재산인 물을 사적 소유물로 간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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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유와 계몽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아프리카

    영화 속에서 카렌의 연인인 데니스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카렌에게 아프리카 식민 지배가 부당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암시한다. 1919년 신년 맞이 파티장에서 카렌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선교 사업을 하겠다고 하자, 데니스는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는 교육은 의미가 없고 그들을 영국인화 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 또한 카렌이 농장을 비롯해 이곳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 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아프리카는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더 나아가 문명이라는 미명하에 계몽되어야 할 존재도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데니스의 탈식민주의적인 입장은 동료 백인과 대화하는 내용에서도 나타난다. 전쟁에 개입하려는 친구 버클리에게 영국이나 독일이나 똑같은 제국주의로 이곳에서 멋대로 국경을 나누는 국가들인데 우리가 왜 그들 싸움에 끼어드느냐며 핀잔을 준다.

    백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식민지 사회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독일이 아프리카까지 침공했다는 소식에 케냐에 있던 백인들은 투사인 마사이족을 무장시켜 남쪽으로 보내자고 하고, 소말리아족과 가까이 지내는 영국인 버클리는 소말리아족을 척후병으로 써서 국경선까지 탐색하자고 한다. 식민지 모국의 이해가 걸린 전쟁에 거리낌 없이 관계도 없는 원주민들을 투입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나이로비 거리에는 동원된 아프리카인의 환호를 받으며 영국 국기를 든 백인 병사 행렬을 뒤따라 식민지 병사들이 개선 행진하는 장면이 나온다.

    커피농장이 풍작이 될 것을 기대한 순간 화재로 모든 것을 잃게 된 카렌은 아프리카 땅은 결코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다. 와인을 서빙하는 요리사에게 흰 장갑을 처음부터 끼워주는 게 아니었다며 벗겨주고, 하인 파라와 헤어질 때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말한다. 아프리카인을 동등한 관계로 바라보고자 했던 것이다, ▶케냐의 식민 역사와 독립운동

    카렌 블릭센이 살던 20세기 초 유럽인들은 케냐 지역의 키쿠유족이나 마사이족 등 원주민의 땅을 거의 빼앗은 상태였다. 영국은 1895년 케냐를 보호령으로 삼고 대단위의 토지를 점령했으며 백인국가 건설을 목표로 백인 정착민들을 끌어들였다. 땅을 미리 확보함으로써 정복자의 이주를 정당화한 것이다. 또한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 토지와 자치권을 준다는 허황된 약속을 하고 그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쟁터에서 희생하게 했다.

    백인들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자는 운동은 1952년 비밀결사대인 마우마우단의 ‘케냐토지자유군’ 투쟁으로 시작됐다. 영화에 나오는 키쿠유 부족은 토지자유군의 주력부대로 활동했고, 이 부대는 유럽인 이주자들을 추방하기 위해 백인 농장과 총독부 건물을 공격했다. 빼앗긴 농토를 되찾자는 이 투쟁은 케냐 독립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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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칸에 의한 아프리카를 위하여

    제국주의는 아프리카 전통과 문화를 ‘야만’으로 규정짓고 유럽식 ‘문명’을 따라야 한다는 논리로 통치했다. 아프리카 사회를 야만에서 미개, 문명의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했던 것이다. 식민지인의 기본권을 철저하게 유린했던 제국주의가 유럽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유행했던 시대에 벌어졌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인식도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프리카의 문명은 상당 부분 역사 속에 묻혀 있다.

    식민 지배 형태의 제국주의는 20세기 중반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함으로써 일단락됐다. 하지만 상당수 국가들은 내전에 시달리며 가난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식민지 시절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 지역을 편의대로 구획 짓고, 독립적으로 살던 종족을 마음대로 통합시킨 정책 탓이 크다. 더욱이 경제적으로 종속되고, 정치적으로는 내정 개입이 이뤄져 강대국의 신식민주의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보는 거울이라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하는 국가는 결국 국민에게 굴욕과 가난을 안겨줄 뿐이다. 식민 지배를 경험한 우리나라도 같은 과정을 거쳤고 예외 없이 비슷한 역사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자부심을 가질 만한 국민임에 틀림없다. 지속가능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앞으로도 각 분야에서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이다. 정치의 영역이든, 경제의 영역이든, 사법의 영역이든, 문화의 영역이든 국민 각자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능력을 계발하고 발전시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또한 국경을 넘어 세계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배와 종속이 아니라 세계와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말이다. K-Pop이 K-Film, K-Food, K-Culture로 깊어지고 K-Medical, K-Money, K-Politics로 넓어지는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이미영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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