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연의 인문학산책] 시대와 편견에 맞선 여성 전사들

    2021년 04월 제 1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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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바 페론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노래의 주인공 에바 페론은 1952년 34년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페론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아르헨티나 대중들은 에바 페론을 성녀로 지정해 달라고 교황청에 요청했고 부자와 보수주의자들은 악녀의 죽음을 축하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렸다.

    에바 페론은 1919년 사생아로 태어났다. 농장주의 첩이었던 에바의 어머니는 가난 속에서 에바를 키웠다. 미모의 에바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서 나이트클럽 댄서, 싸구려 코미디 배우를 전전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군부 쿠데타 주동자였던 후안 도밍고 페론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성공한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후안은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됐고 에바는 영부인이 된다.

    에바의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대농장주들을 중심으로 한 부유층과 보수 세력들은 에바의 전력을 부풀려 ‘창녀’라고 떠들어댔다. 사람들은 또 에바가 빈민을 위해 성녀 행세를 했지만 사실은 사치와 방탕에 빠진 악녀였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그녀가 죽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에바를 둘러싼 뒷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사실 에바는 허영에 들떠 배우가 되기 위해 도시로 간 것이 아니라 지주 자식들의 성폭력을 피해 도망간 것이었다. 지주 아들들은 미모의 에바를 납치해 욕보이려다 실패하자 발가벗긴 채 길거리에 버렸고 온갖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다. 평생 에바를 따라다닌 소문들은 이때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에바는 실제로 민중을 사랑했다. 그녀가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왕궁을 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야, 방이 많기도 하네. 고아원을 만들면 좋겠다.”

    그녀는 부자와 보수층에는 늘 도도했으나 민중들과는 친구처럼 지냈다. 소문처럼 포퓰리즘에 영합한 머리 나쁜 퍼스트레이디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준 진보적 정치가이자 운명에 맞서 싸운 열정적인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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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 살로메
    ▶천재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던 루 살로메

    채찍을 맞는 말의 눈이 너무 슬퍼보여서 말의 목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는 철학자 니체. 그는 평생 한 여인을 사랑했다.

    이지적이고 오묘한 매력을 지닌 여인 루 살로메가 그 대상이었다. 로마 여행길에 루를 만난 니체는 루에게 청혼을 한다. 하지만 루는 신비스럽고 고독한 콧수염을 기른 이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통을 끌어안고 고뇌와 씨름하던 니체는 일주일 만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다. 실연이 창조의 신비로 연결된 순간이었다. 루에게 사랑의 헌신을 바친 인물은 니체 이외에도 시인 릴케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있었다.

    릴케는 루에 대해 “루는 나의 맑고 순수한 샘물이다. 나는 그녀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싶었다”는 헌사를 바쳤고, 프로이트는 “루는 여자로서 최고 운명을 가졌다”고 찬사를 보냈다.

    우리가 루를 이들의 연인으로만 기억하는 건 세 남자가 모두 워낙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뿌리에는 남성중심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루는 독립적이며 탁월한 지성인이었다. 그녀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상당한 학문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186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루는 형이상학 종교학 등을 공부한 후 취리히로 거처를 옮겨 철학 신학 예술사를 섭렵했다. 그녀는 남자의 의식을 흔들 수 있었을까. 그녀가 남자들에게 단 한 번도 종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는 자유인이었다. 루는 세 명의 지성 모두에게 매력을 느꼈고 그들과 지내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들과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19세기 말 여성에게 결혼은 영혼을 반납하는 일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자신의 자유와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여성에게는 혁명 같은 선택이었다. 그녀를 만인의 연인이 아닌 독립적인 여성으로 다시 연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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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몬 드 보부아르
    ▶시몬 드 보부아르의 숨겨진 사랑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7년 사르트르와 함께 미국으로 강연을 떠난다. 이곳에서 보부아르는 미국 소설가 넬슨 앨그렌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사람들은 보부아르가 평생 사르트르의 자기장 안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보부아르에게는 가슴 시린 사랑이 있었다. 보부아르가 넬슨 앨그린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저는 살고 싶어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적어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은 말이에요. 때로 저는 당신 없이 그처럼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는 게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진답니다. 당신의 열기와 친절함 덕분에 삶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좋은 것이에요, 나의 사랑하는 사람. 사랑에 빠진 당신의 아내가 개구리의 사랑과 키스를.”

    그날 이후 20여 년간 둘은 편지를 주고받는다. 보부아르가 앨그렌에게 보낸 편지는 무려 304통. 한 권의 책으로 묶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편지에는 여느 사랑에 빠진 여인이 그러하듯 애교 섞인 콧소리가 가득하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페미니즘 여전사로만 알고 있었던 보부아르가 이런 편지를 썼다니 그것만으로도 신선하고 놀랍다. 더구나 보부아르는 프랑스어를 못하는 앨그렌을 위해 서툰 영어로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남편’이라는 호칭도 등장한다. 그녀와 계약결혼을 했던 사르트르도 남편이라는 호칭은 못 들어보고 생을 마감했다.

    보부아르의 사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의 대표작 <제2의 성>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제2의 성>은 여전사의 경직된 자기주장이나 항변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살았고 여성으로 사랑했던 한 지식인의 정당한 문제제기였다. <제2의 성>은 페미니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저서다. 보부아르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남성과 동등한 성이 아닌 제2의 성(性)이라고 주장했다. 정상적인 하나의 성이 아니라 무엇인가 결핍된 비주류의 성이었다는 것이다. ▶여성, 사회적 타자에서 역사의 주인공으로

    보부아르가 책을 쓴 1949년 무렵까지 “여성은 불완전한 남성”이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낡디낡은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보부아르가 몸담았던 학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부아르는 이 책을 통해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는 불후의 명언을 던지며 남성 중심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보부아르는 1908년 파리의 몰락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톨릭 학교를 거쳐 소르본 대학을 졸업하고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차석이자 최연소로 합격한다. 이때 수석을 한 사람이 바로 사르트르다. 성적은 보부아르가 더 좋았지만 여성 차별로 차석이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실 보부아르는 운동가라기보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콩쿠르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은 소설가였다. <제2의 성>도 처음에는 자전소설 정도로 기획된 것이었으나 창작 초기 인문서로 방향을 튼 것이다. <제2의 성>에서 보부아르는 “남성이 여성에게 ‘신비함’이라는 거짓된 아우라를 주입시켜 여성을 사회적 타자로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다음 구절을 보자.

    “여성은 남성에 따라서 정의되고 구분되지만 남성은 여성에 따라서 정의되고 구분되지 않는다. 남성은 주체이며 절대자이다. 하지만 여성은 타인이다. 남성의 변두리에 살고 있는 여성은 세계의 보편적인 모습을 파악하지 못한다.”

    보부아르의 지적은 현대 페미니즘의 바이블이 됐다. <제2의 성>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자 프랑스 정부는 서둘러 ‘여성의 날’을 제정했다. <제2의 성> 이후부터 지식인들이 남성과 여성을 계급적 시각이 아닌 ‘차이의 시각’으로 보는 습관을 갖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부아르는 책의 후반부를 이렇게 끝맺는다. “이 주어진 현실 세계를 자유가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다. 이 숭고한 진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녀가 분명한 우애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부아르는 시대와 편견에 맞선 지적인 혁명가였다.

    [허연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선임기자·시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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