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옥스퍼드에서 만난 사진 찍는 동화작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2021년 04월 제 127호

  •  기사의 0번째 이미지


    학문, 예술, 지성, 젊음 등이 도시 전체를 감싸는 옥스퍼드는 13세기에 수도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도시이다. 현재 이곳은 케임브리지와 함께 영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상아탑의 전당이다. 주민의 80%가 학생일 정도로 도시는 젊음과 지성으로 생동감이 넘쳐난다. 더군다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루이스 캐럴이 젊은 시절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삶의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대학도시이다.

    어느 것 하나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건물이 없는 옥스퍼드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단연 크라이스트처치이다. 1525년에 지어진 크라이스트처치는 40여 개의 단과대학 중 가장 오래된 곳이자 청년 캐럴이 수학을 전공하고, 교수로 학생을 가르쳤던 명문대학이다. 학교 내부에는 캐럴 교수가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촬영했던 예배당, 분수, 강당, 톰 타워 등이 들어서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크라이스트처치를 빛낸 교수들의 초상화가 걸린 그레이트 홀이다. 1529년에 건축된 홀은 지금도 교수와 학생들이 구내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5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이 홀은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 마법학교 식당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대부분 사람은 오렌지빛 전등이 인상적인 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캐럴 교수의 초상화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등장인물을 소재로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환한 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벽에 닿는 순간 우리 눈에도 익숙한 캐럴 교수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홀 안에는 옥스퍼드를 빛낸 유명인들의 초상화가 너무 많아 캐럴 교수의 초상화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의 초상화는 입구 왼쪽 벽면 아래에 있는데, 입구로 들어와 등을 돌려야만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캐럴 교수의 초상화 밑에는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 대신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라는 본명이 쓰여 있어서, 그의 본명을 모르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의자에 앉아 그윽한 눈빛으로 사색을 즐기고 있는 초상화를 바라보면, 그가 남긴 아름다운 동화들이 이내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논리학과 수학에 매우 뛰어났던 캐럴 교수는 평생을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에서 교수로 지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거울 나라의 앨리스>라는 판타지 소설가이자 19세기 최고의 인물 사진작가로 알려져 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앨리스


    수학 전공과는 달리 평소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났던 그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데 관심이 많았다. 특히 연극배우 엘렌 테리와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등과 함께 교분을 쌓으며 예술적인 감수성을 끊임없이 발산했다. 스물네 살이 되던 1856년 우연히 다게레오타입의 카메라를 갖게 되면서 새로운 운명을 맞았다.

    그런데 수학과 교수가 카메라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그의 성향과 예술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양한 예술 분야를 넘나들면서 직접 하길 좋아한 캐럴 교수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수학자가 갖춰야 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현상과 섬세한 인화 과정의 카메라 메커니즘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렌즈 속으로 들어오는 피사체가 유리판에 거꾸로 상이 맺히고, 암실에서 흑백이 전도되는 영상의 마술을 경험하는 순간 그의 온몸에는 환상의 세계가 흐르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반대로 맺히는 피사체를 통해 <거울의 나라 앨리스>가 탄생하기도 했다.

    늘 예술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많았던 캐럴 교수는 카메라를 통해 더 많은 환상과 꿈을 꾸었다. 처음에는 주로 풍경을 촬영하다가 카메라에 손이 익숙해질 즈음 그의 카메라 앵글 속으로 자연풍경 대신 사람들이 들어왔다. 30여 년간 많은 인물을 촬영한 캐럴 교수는 줄리아 마거릿 캐머런과 함께 19세기 뛰어난 인물 사진가로 꼽힌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작가라는 명성보다 사진작가에서 그의 이름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카메라에 대해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그레이트 홀


    수학과 교수가 아닌 사진작가로 점점 더 사진의 세계로 빠질 때쯤, 그의 앞에 엄청난 운명의 소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실제 인물인 앨리스 자매들이다. 그의 일기에 따르면 이들과의 만남은 1856년 4월 25일에 시작되었다. 이날 캐럴 교수는 크라이스트처치의 성당과 정원을 촬영하려고 수학과 학장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때 학장의 어린 세 자매는 자신의 집 앞에서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캐럴 교수와 마주쳤다. 훗날 이 어린 소녀들이 캐럴 교수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 될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캐럴 교수의 모델이 된 앨리스 자매들과 함께 산책하거나 뱃놀이와 소풍을 다니면서 환상적인 동화를 들려주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1865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캐럴 교수는 앨리스 자매들과 점점 더 친해지면서 사진과 동화가 어우러진 미학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당시 동화의 내용은 대부분 교훈적이거나 계몽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는데, 그의 동화는 유머와 환상, 그리고 즐거움을 주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이는 곧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 소녀들을 촬영하는 데 집착했고, 심지어 소녀들의 누드 사진까지 촬영하였다. 결혼도 하지 않은 독신의 남성이 계속해서 소녀들의 사진을 찍자, 주민들은 그의 행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캐럴 교수는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과 달리 누드 사진은 순수하고 성별이 없는 단순한 신의 창조물이라고 여겼고, “옷을 걸치지 않고 찍은 사진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880년 8월 18일, 신문에 캐럴 교수가 ‘소아성애자’라는 기사가 실리면서 더는 소녀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동화와 사진의 세계에서 자신의 꿈을 찾으려 했던 캐럴 교수. 그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는 옥스퍼드에서 그의 삶과 마주한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다. 만약 캐럴 교수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만 가르쳤다면 인류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이 되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카메라를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꿈꿨고, 그 세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천진무구한 어린이들이었다.

    옥스퍼드를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저마다의 카메라를 들고 고풍스러운 낭만의 도시를 기록하게 된다. 시간이 정지된 사진의 메커니즘처럼 옥스퍼드와 루이스 캐럴의 이미지 또한 우리의 마음속에 시간이 멈춘 한 장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사진 속의 빛바랜 잔상은 더욱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