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원의 클래식 포레스트] 파리의 모차르트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보다

    2021년 06월 제 129호

  • 어느덧 다시 여름이다. 하지만 올여름에도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출장, 유학, 가족사 등으로 꼭 나가야 할 일이 없다면 국내에 머무르는 게 상책일 것이다. 강의와 원고에 파묻혀 쳇바퀴 도는 일상을 보내다가 한 번씩 짬이 나면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던 필자 같은 사람에겐 실로 답답하고 재미없는 시절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욕구불만 탓인지, 지난 봄 어렵사리 재개된 강좌 프로그램 중 하나를 ‘여행과 시련’으로 정했다. 기본적으로 유럽의 특정 도시나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분위기로 운을 뗀 다음, 대개 작곡가로 상정된 여행 속 주인공이 인생의 시련을 겪어냈던 이야기를 관련 음악작품과 함께 풀어가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 가운데는 여러분에게도 친숙한 모차르트가 있었다. 이제부터 모차르트가 프랑스의 수도 파리(Paris)를 여행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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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차르트의 파리 여행

    모차르트가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가 평생 동안 여행을 다닌 기간은 도합 3720일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의 수명이 35년 남짓이었던 사실을 떠올리면 인생의 3분의 1을 ‘길 위에서’ 보낸 셈이다. 모차르트의 여행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1763년에서 1766년에 걸친 ‘그랜드 투어(서유럽 대여행)’일 것이다. 당시 겨우 일곱 살을 넘긴 모차르트는 아버지, 어머니, 누이(나네를)와 함께 3년 반 동안 독일, 벨기에,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등 서유럽 각지의 여러 도시를 여행했다. 이 여행은 외적으로는 ‘신동 모차르트’의 존재와 명성이 확립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고, 내적으로는 어린 모차르트가 유럽 각지의 문물과 음악 스타일을 두루 경험하며 장차 대가로 성장하는 데 기초가 된 자양분을 풍부하게 섭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모차르트는 그랜드 투어 도중에 파리도 당연히 거쳐 갔다. 유럽을 대표하는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이자 가장 중요한 음악도시 중 하나이기도 한 파리에서 모차르트 가족은 다섯 달 넘게 체류했다. 그동안 모차르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국왕 루이 15세와 퐁파두르 부인을 알현했는가 하면, 두 세트의 ‘클라브생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K.6~9)’를 선보였는데, 이 소나타의 악보는 모차르트의 생애에 처음 정식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그는 영국 런던과 네덜란드를 방문한 다음 스위스로 향하던 길에도 다시 파리를 찾아 두 달 동안 머물렀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 스물두 살의 모차르트는 세 번째로 파리를 찾았다. 그 몇 달 전에 그는 자신을 잘츠부르크 궁정음악가 직무에 옭아맸던 주군 콜로레도 대주교에게 사직서를 던졌다. 1777년 9월 자신만만하게 ‘구직여행’에 나선 그는 아버지의 고향인 아우크스부르크를 거쳐 당시 독일어권 최고의 선진음악도시로 명성이 자자했던 만하임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곳의 음악가들과 친분을 나눴고 ‘플루트를 위한 협주곡과 사중주’를 써달라는 작곡 의뢰도 받았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소프라노 알로이지아 베버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참고로, 모차르트는 나중에 빈에서 알로이지아의 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한다.) 그러나 유능한 음악가가 즐비한 만하임 궁정에서 마땅한 일자리는 구할 수 없었고, 고향에 있는 아버지는 파리로 가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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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C장조(K.299)
    ▶파리에서의 시련과 비극

    1778년 3월 23일, 모차르트는 ‘평생 그렇게 지루한 적이 없었던’ 아흐레에 걸친 마차여행 끝에 파리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여섯 달 동안 이어진 파리 체류는 모차르트의 생애에서 가장 불행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갖다 놓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누추한 숙소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얼마 후 집안의 오랜 친구인 그림 남작의 도움을 받아 사정이 나아졌고, 만하임에서 사귄 친구들과 해후하는 등 한동안 희망적인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는 ‘신께서 주신 재능을 허비하는 것’으로 여겼고, ‘4대의 관악기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K.297b)’ 공연과 관련해서는 사기에 가까운 일을 당하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파리의 음악가들이 자신을 질투하고 경계한다고 의심했다. 그리고 자신이 더 이상 과거에 어디를 가나 환영받았던 ‘신동’이 아님을 자각했다.

    모차르트는 파리가 싫어졌다. 일시적 유행에 목매는 변덕스러운 청중들이 혐오스러웠고, 자신을 멸시하는 공작부인의 저택에서 그림 그리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을 위해 형편없는 피아노를 연주해야 했을 때는 모욕감과 분노마저 일었다. 물론 가장 큰 불만은 사랑하는 알로이지아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난생 처음 아버지에게 노골적으로 반항하기도 했다. 베르사유 궁전의 오르가니스트직 제안을 아버지가 보란 듯이 거절했던 것이다. 6월 18일 튈르리 궁전에서 진행된 대중공연 ‘콩세르 스피리튀엘’에서 선보인 ‘파리 교향곡’이 열광적인 호응을 받으면서 잠시 짜릿한 희열을 맛보기도 했지만, 파리에서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그와 동행했던 어머니가 병을 앓고 있었다. 장기간의 불안정한 여행 동안 나빠진 건강에 아들이 밖으로만 나도는 사이에 느낀 소외감이 겹치면서 병이 악화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맨 끝에 7월 3일,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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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향곡 제31번 D장조(K.297)
    ▶천재에게 시련이 필요한 이유

    모차르트의 세 번째 파리 여행은 이전까지 철모르던 ‘신동 음악가’에 지나지 않았던 모차르트가 세상의 쓴맛을 제대로 보고서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난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모차르트 음악의 모습은 사뭇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그 음악들에 한번 귀기울여보기를 권한다. 당대에 각광받았던 ‘만하임 악파’의 기법을 응용한 장쾌하고 다이내믹한 연주효과들로 파리 청중의 환호를 이끌어냈던 ‘교향곡 제31번 D장조(K.297)’, 고전파 음악으로는 이례적인 비극적 정감으로 가득한 ‘피아노 소나타 제8번 a단조(K.310)’, 모차르트의 손에서만 가능한 ‘천상의 음률’이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가늠하게 해주는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C장조(K.299)’ 등이다. 아마 모차르트가 파리에서 경험했던 순간들, 그때의 감정과 소회를 예상보다 생생하고 살갑게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쾨헬 번호-모차르트의 작품목록을 정리한 번호. 1862년에 목록을 처음 작성한 루트비히 폰 쾨헬(Ludwig von Kochel)의 이름을 따서 K. 또는 KV를 숫자 앞에 붙인다.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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