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예술가들이 사랑한 伊 최고의 도시 베네치아

    2021년 06월 제 129호

  • 흔히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117개의 섬과 150개의 운하를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한 운하의 도시이다. 습지와 갯벌을 메우고 ‘라군(lagoon)’이라는 석호 위에 건설된 베네치아는 구절양장처럼 S자형의 운하 사이로 오가는 수상 배, 바포레타가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어려운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 발돋움한 베네치아는 여행자에게 소중한 추억과 낭만을,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도시이다.

    영어로 ‘베니스(Venice)’라고 불리는 베네치아는 567년 훈족(튀르크)의 습격을 피해 온 롬바르디아의 본토 사람들이 12개 섬을 간척하면서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 후 후추, 향신료, 계피 등 아시아 농산물들을 유럽에 유통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고, 9~13세기에 걸쳐 산 마르코 대성당, 광장, 궁전, 다리 등 수많은 건축물을 짓고, 강력한 왕국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베네치아의 경제적 번영은 이탈리아 예술의 근간이 될 정도로 르네상스 시대부터 피렌체와 더불어 천재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티치아노, 베로네세, 틴토레토 등 16세기 르네상스 화가들과 17세기 음악가 비발디, 18세기 문학가 카사노바와 로렌초 다 폰테 등이 바로 베네치아를 빛낸 예술가들이다. 18세기 이후 베네치아 출신이 아닌 괴테, 발자크, 바그너, 니체, 릴케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당대의 지식인들이 베네치아를 찾았고, 이들은 베네치아의 모습을 글과 그림 그리고 음악에 고스란히 담았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베네치아를 찾아온 수많은 예술가 중에서 이탈리아 사람들만큼이나 이곳을 사랑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흔적이 산타 루치아 역 주변에 있다. 도보로 10분 채 걸리지 않는 카 벤드라민 칼레르지 저택은 바그너가 1882년 9월 <파르지팔> 작품을 완성한 곳이자, 이듬해 2월 16일 프란츠 리스트의 딸이자 그의 아내인 코지마 품에 안겨 사망한 장소이다. 독일의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인 바그너는 1852년 7월부터 죽을 때까지 40여 년 동안 이탈리아를 아홉 번이나 찾았다. 그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고,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 바로 베네치아이다.

    한 걸음 더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골목길을 따라 산 마르코 광장으로 나가면 운하 위에 놓인 다리 중에서 제일 유명한 리알토 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셰익스피어는 이곳을 다녀가지 않고, 작품의 배경지로 리알토 다리를 멋지게 묘사했다. 반면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1788년 5월에 베네치아를 찾았고 자신의 작품 <이탈리아 기행>에 리알토 다리와 함께 베네치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이제 집들이 점점 더 빽빽이 들어서고, 모래땅과 늪지는 암석처럼 단단한 지반으로 바뀌었다. 집들은 조밀하게 심어진 나무들처럼 높이 솟구쳤다. 옆으로 확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위로만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 치의 땅이라도 탐이 났는데 처음부터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골목길의 폭도, 양편의 집들을 분리하고 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밖에 내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들에게 물이 거리와 광장과 산책로를 대신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폴 시나크 <대운하>


    리알토 다리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녀가는 산 마르코 광장에 이른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히는 산 마르코 광장은 크기만큼이나 예술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역사의 현장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중에서도 베네치아의 자랑거리인 ‘플로리안 카페’는 300여 년 동안 광장의 한자리를 지키며 유럽의 수많은 예술가가 다녀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1720년에 문을 연 플로리안 카페는 괴테, 바그너뿐만 아니라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마네와 모네, 제임스 티소 등 수많은 예술가가 커피를 마시며 예술에 대한 담론을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카페에서 가장 오래된 ‘저명인사의 방’은 중세 골동품 가게를 보는 듯 고풍스러운 테이블과 의자로 장식돼 있다. 벽에는 베네치아 출신의 저명한 10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르코 폴로와 티치아노의 초상화도 볼 수 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플로리안 카페는 프랑스 혁명, 오스트리아와 나폴레옹의 점령 등 역사적 대사건의 증인이자 그 무대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플로리안 카페를 최신 뉴스의 센터로 만들었고, 1797년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하자 애국적인 지식인과 청년들은 플로리안에서 저항그룹을 형성하여 일반 시민들에게 궐기를 호소하였다. 그뿐 아니라 플로리안 카페는 당대의 지식인들이 모여들어 자유의 정신을 불태웠던 민주주의의 성지였다.

    카페에서 광장으로 나가면 이곳의 터줏대감인 비둘기 떼가 여행자들을 향해 달려든다. 1908년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인 클로드 모네가 아내 앨리스와 이 광장에서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것처럼 여행자들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모네 <황혼의 베네치아>


    광장에서 바닷가로 한 걸음 더 다가서면 저 멀리 모네의 <황혼의 베네치아>(1908) 배경이 된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운 좋게 해 질 무렵 이곳에 서면 모네의 그림처럼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바다와 하늘, 그리고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황홀한 저녁을 감상할 수도 있다. 만약 베네치아 출신의 음악가 비발디의 흔적을 찾는다면 광장 바로 옆에 있는 피에타 교회로 가면 된다. 비발디의 성당으로도 잘 알려진 피에타 교회는 비발디가 1723년 <사계>를 완성한 곳이다. 비발디의 음악적 재능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았는데, 아버지는 이발사였지만,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했다. 어릴 적부터 성당의 합창단과 관현악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했을 만큼 비발디의 재능은 타고났다. 하지만 그는 25세 때 서품을 받고 가톨릭 사제가 되었고, 1703년부터 1740년까지 베네치아의 보육원이자 여자음악 학교였던 피에타 보육원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지내면서 주옥 같은 명곡을 만들었다.

    이처럼 베네치아는 가는 곳마다 예술가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베네치아 여행의 대미는 화가들의 몫으로 남는다. 20세기 전후 영국 런던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가는 오리엔털 특급 열차가 개통되면서 중간 기착지였던 베네치아로 많은 예술가가 찾아들었는데, 특히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이 강렬한 햇살과 어우러진 대운하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마네의 <대운하>(1875), 르누아르의 <대운하의 곤돌라>(1881), <산 마르코 광장>(1881), 폴 시나크의 <대운하>(1905), 모네의 <곤돌라>(1908) 등 유명한 화가들의 손에 의해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이 유럽 전역으로 전해졌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