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영의 영화로 보는 유럽사] (19) 제1차 세계대전과 중동 지역 |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굴곡진 아랍의 역사

    2021년 07월 제 130호

  • 1차 세계대전은 유럽을 주 무대로 한 연합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대 동맹국(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제국 등)의 제국주의 국가 간 전쟁이었지만, 이들 국가의 지배 아래 있던 피식민지들까지 독립을 시켜준다는 약속을 믿고 참전했던 세계 전쟁이었다. 피식민지 유색인종 군인이 수백만 명 참여한 가운데, 아프리카 전선에서만 200만 명 넘게 참전했다. 프랑스는 식민지인 세네갈 등지에서 시민권과 훈장을 당근으로 내세우며 아프리카인 자원병들을 모았고, 영국도 인도나 뉴질랜드 등에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모았다. 영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독일과 같은 편인 오스만제국 지배하의 중동 아랍계 유목민들을 독립이라는 허황된 약속을 내걸며 세계대전에 끌어들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아랍을 지배하고 있었던 오스만제국(현 터키)이 영국·프랑스 진영에 큰 타격을 가하자 다급해진 영국은 오스만제국의 후방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아랍인을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낭만적이며 괴짜스러운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라는 영국 정보국 장교가 큰 역할을 담당한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는 분열돼 있던 아랍 부족을 통합해 전쟁을 영국의 승리로 이끈 로렌스의 활약과 복잡한 내면을 중심으로 중동의 역사, 나아가 유럽 제국주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광활한 사막과 스펙터클한 전투 등 압도적 비주얼로 볼거리를 제공하며 평단의 호평과 함께 아카데미상 작품상·감독상·촬영상·편집상·음악상·음향효과상·미술상 등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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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학도 출신 로렌스 장교의 활약과 내면을 다룬 영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로렌스에 대해 찬사와 비난이 오가면서 1차 세계대전 당시 그의 삶이 회상되는 구조로 진행된다. 1916년, 수에즈운하를 둘러싸고 영국과 오스만제국은 대치하고 있었고, 아랍 지역은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의 카이로 사령부는 로렌스 중위를 아랍 지역에 파견하고 반군 지도자인 파이살 왕자를 만나게 한다. 이후 로렌스는 아랍 해방을 약속으로 내걸고 오스만제국과의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면서 아랍의 선지자이자 영웅적 존재로 부각된다. 그러나 카이로 사령부로 돌아온 로렌스는 오스만제국이 몰락하더라도 영국과 프랑스가 당초 약속과는 달리 아랍 지역을 독립시키지 않고 분할 점령한다는 사이코-피콧 밀약에 대해 듣게 된다. 그는 크게 분노하며 아랍 독립을 위해 힘써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전투에 참가해 승리하고 다마스쿠스를 차지한다.

    그러나 아랍 부족들 사이에 반목이 여전하고 사망자와 부상자 처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로렌스는 아랍 민족 독립에 한계를 느낀다. 여기에 파이살 왕자마저 명목상 왕위를 잇는다는 조건으로 아랍의 독립을 포기하면서 로렌스는 절망감으로 분개하고 무기력하게 집으로 돌아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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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 화약고’의 시발점이 된 제1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 하면 유럽 서부전선의 참호전이 상징적인 장면으로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세계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전투가 발발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배경인 중동 지역에서는 영국이 오스만제국의 후방을 교란시키기 위해 아랍 유목민을 이용했고, 오스만제국이 패전국이 되면서 오늘날 중동 지역 분쟁의 씨앗이 되는 국경선이 영국과 프랑스의 입맛대로 구획 지어졌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의 한 축을 차지했던 오스만제국은 17~18세기 발칸반도와 아리비아반도, 북아프리카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을 다스린 대국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서구 열강의 간섭으로 국력이 약화되면서 오스만제국은 지배를 받던 여러 소수 민족들의 반란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들 소수 민족의 독립을 도와준다는 빌미로 자국의 영향력을 확장해나갔고, 특히 수에즈운하를 통해 해상제국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구축한 영국은 오랜 기간 오스만제국의 영향권하에 있었던 이집트를 차지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적대적 관계에 있던 오스만제국을 상대로 서구 열강에 대항하는 지하드(성전)를 수행해야 한다며 전쟁에 끌어들인다. 영국은 위험에 처한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보호하고 오스만제국을 무력화하기 위해 아랍 민족을 이용하는 전략을 세운다. 영국은 아랍 지역이 원래 아랍인의 땅인데 튀르크라는 이민족이 침략한 것이므로 독립을 위해 오스만제국과 싸워야 한다며 참전시킨다. 아랍 부족들의 참전과 지원을 이끌어낼 인물로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일대에서 영향력이 있는 반군 지도자 후세인과 그의 아들 파이살에 주목했고, 그곳에 영국 정보국의 로렌스 중위를 투입한다. 영국의 속셈은 독립 전쟁을 명분으로 아랍인들이 연합군 측에서 싸우도록 유도하고,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패배국인 오스만제국의 중동 지역 영토를 전리품으로 차지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속셈을 증명하듯 영국과 프랑스는 아랍 부족들이 오스만 튀르크군과 한참 전쟁하고 있을 때 승전국이 되면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어떻게 나누어 가질지에 대한 사이크스-피콧 협정을 맺는다. 이 협정의 내용에 따라 전후 영국은 현재의 요르단과 이라크 남부 지역, 프랑스는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북부를 차지하게 되고, 이러한 국경선은 나중에 중동전쟁을 일으키는 화약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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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렌스는 아랍 민족의 영웅인가, 제국주의의 하수인인가

    영화 초반 로렌스의 장례식장에서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양 극단으로 나뉜다. 중동전쟁의 영웅이며 대단한 전술가였다는 평가와 함께 자아도취증 환자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존 인물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1888~1935)는 옥스퍼드대 사학과를 졸업한 역사가로, 중동의 유적에 관심이 많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아랍 지역의 지도를 제작하는 정보 장교로 카이로에 파견되고 아랍 부족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하다가 탁월한 전술 역량을 인정받아 오스만제국과 싸우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는 이권에 관심이 있었던 영국 사령부와는 달리 분열된 아랍 부족들을 결집시켜 아랍 민족의 독립을 이루겠다는 야심을 갖고 전투에 임한다.

    아랍인 복장을 했던 로렌스는 아랍인과 함께 영국군이 엄두도 내지 못한 아카바항을 점령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다마스쿠스를 차지하지만 이내 아랍 부족은 분열되고 독립은 물 건너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랍인과 로렌스의 승리는 독립과 해방이 아닌 제국주의 영국의 승리를 위한 것이었다. 제국주의라는 열강들의 패러다임 속에서 소수 민족의 독립과 해방, 중동의 평화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로렌스는 아랍 민족의 영웅이 될 뻔했으나 의도와는 달리 제국주의의 하수인 역할에 그친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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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는 오리엔탈리즘

    로렌스란 인물에 대한 상반된 평가처럼,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대한 시각도 다양하다. 이 영화는 로렌스를 영웅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신 분열에 시달리는 한 인간의 내면과 제국주의 영국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입체적이고 나름 균형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랍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랍인들을 천박하고 무식하게 묘사했다는 측면 때문에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로렌스와 함께 여러 전투에 참여한 알리 족장은 자기 구역의 사막에서 허락받지 않고 우물물을 마셨다는 이유로 무고한 아랍인을 죽이는 야만적인 행동을 한다. 또한 족장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로렌스의 의견을 따르는 비주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로렌스와 힘을 합쳐 튀르크군을 무찌른 하위탓 부족의 족장도 아랍인의 독립보다는 돈을 위해 싸우며 돈이 안 될 경우 약속도 쉽게 저버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영화는 중동 전투에서의 승리를 아랍인의 활약보다는 로렌스의 탁월한 지도력·전술과 연관 짓고, 아랍 독립의 실패 이유를 제국주의의 농간 외에 부족 간의 갈등과 반목, 의회를 이끌만한 지도자의 부재, 아랍인의 무지라는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요르단의 역사학자 슐레이만 무서는 아랍 혁명과 전투에서의 승리는 한 영국군의 영웅적인 활약이 아니라 아랍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부족을 끌어들여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단결을 통해 아랍 부족을 아랍 민족으로 이끌어 간다는 전략도 아랍 반군의 전략이지 로렌스의 전략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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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에서도 예외가 아닌 약소국의 설움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1차 세계대전 당시 아랍 부족들이 자신의 힘으로 오스만제국에서 독립하고 국가를 형성했다면 중동의 지도는 지금과 판이해졌을 것이다. 오늘날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중동 분쟁의 씨앗은 누구의 책임으로 봐야 할까. 중동 국가의 국경선을 제멋대로 구획 지은 서구 제국주의의 책임이든, 아니면 종교와 부족이라는 틀 안에서 세계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자주 독립을 이루지 못한 아랍인들의 책임이든, 역사적으로 약소국은 늘 짓밟히고 유린당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미영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0호 (2021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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