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r My Walking] 기분 좋은 단절… 육지 속 섬에서 보낸 한나절, 강원도 영월 청령포

    2021년 08월 제 131호

  • 땡볕 아래 가만히 서있어도 뒷목에 땀이 흘렀다. 휴대폰으로 날씨를 검색해보니 쨍한 햇님 그림 아래 35℃가 표시돼 있다. 체감온도는 무려 38℃. 그런데 이 후텁지근한 기운이 그늘 아래에선 풀이 죽었다. 너른 주차장을 가로질러 매표소 앞에 다다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도 시원하다. 그래서인지 앞서간 이들 중 한 무리 여성들의 손엔 양산이 한아름이다. 알록달록한 색 너머로 휘돌아나가는 서강은 붉게 물들었다. 어제 비가 많이 온 탓인데, 비온 다음 날 쨍한 볕에 습도가 낮아져 바람에 얹힌 더운 기운이 가라앉았다.

    강원도 영월에 자리한 청령포를 찾았다. 앞에는 서강이, 뒤에는 육육봉이 버티고 선 이곳에 가려면 작은 배를 타야만 한다. 그야말로 육지 속의 작은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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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바닷물이 빨개. 왜 물이 이렇게 빨개진 거야.”

    서강을 건너는 작은 배안에서 네댓 살쯤 된 사내아이가 아빠를 바라보며 묻는다. 아빠는 뭔가 굉장히 분주하다. 무게가 꽤 되어 보이는 접이식 유모차를 한손에 들고 다른 손으론 두어 살 위인 딸아이 손까지 잡고 힘겹게 버티고 섰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이를 무릎에 앉힌 엄마가 질문을 받았다.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갑자기 불어나는데 물이 많아지면서 흙탕물이 생겼나봐. 강물이 갑자기 불어나는 게 싫은 물고기들이 화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참, 이건 바다가 아니라 강이야. 바다는 여기보다 훨씬 넓어.”

    엄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가 한마디 보탠다.“물고기들 집이 없어졌나 부다. 그래서 화를 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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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로 가는 나룻배


    청령포에 가려면 물고기들이 화가 났는지 아니면 풀렸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작은 나룻배가 이곳에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데, 아침에 비라도 오면 배가 멈춰 선다. 한반도를 닮은 지형에 물길이 좁아 적은 강수량에도 강물이 험악해지는 탓이다. 성인 기준으로 왕복 3000원이면 탈 수 있는 배의 경로는 약 50~60m가 전부다. 고작 그거냐고 얕봤다간 큰코다친다.

    배 안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강물은 언뜻 봐도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흐름이 묵직하다. 배에서 내리면 강물 안쪽에 쌓인 자갈과 모래가 이어지는데, 장마가 오기 전엔 이곳에 들풀과 야생화가 지천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들풀만 무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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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로 붉게 물든 서강
    ▶어린 단종의 유배지, 휴대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청령포는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뺏긴 단종의 유배지다. 조선 6대 왕인 단종은 560여 년 전 궁궐을 떠나 영월까지 내려와 이곳에 유배됐다. 뒤는 험준한 산이요, 앞은 강이니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50호로 지정된 지금의 청령포는 그러니까 당시 단종이 한양을 그리며 살던 망향의 터다. 이 적막한 산하에서 단종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선착장에 내려서서 조금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객을 반긴다. 한눈에도 경광이 빼어난 이 숲은 2004년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숲 곳곳에 단종이 살던 흔적을 재현해놨는데, 나무 데크를 놓아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크게 5곳으로 나뉜 길은 각각 ‘단종어소’ ‘단묘재본부시유지비’ ‘금표비’ ‘노산대’ ‘망향탑’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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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이 머물렀던 처소


    우선 단종어소는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관노들이 살던 행랑채로 재현돼 있다.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깨끗이 관리돼 있는데, 승정원의 일기에 따라 새로 지어진 본채는 사람 한 명 누우면 꽉 차는 방 크기가 궁색하다. 걸음을 좀 더 안쪽으로 옮기면 소나무 숲 중앙에 들어서게 된다. 여기선 잠시 휴대폰을 꺼놓는 게 어떨까.

    벤치에 앉아 눈을 감으면 소나무 솔 사이를 비집고 드나드는 바람 소리, 나뭇가지에 앉은 작은 새소리가 은은하다. 이곳에선 40℃에 육박하는 여름 볕의 기세는 아무 소용없는 허세일 뿐이다. 나무 아래 앉아있는 것만으로 가슴속이 푸른 무엇으로 꽉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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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 349호 관음송


    눈을 떠 소나무 숲의 중심으로 시선을 옮기면 천연기념물 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이 하늘로 솟았다. 높이 30m, 둘레 5m, 두 갈래로 갈라진 관음송은 동서로 비스듬히 자랐다.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곤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소나무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원하다. 누구랄 것도 없이 두 갈래로 갈라진 관음송의 가운데에 서서 셔터를 누른다. 시원한 음료수를 갖고 갔다면 잠시 산책을 멈추고 충전하는 장소로도 제격이다. 아, 청령포 안에는 매점이 없기 때문에 간단한 음료는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청령포의 뒷산인 육육봉(六六峯)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에 오르기 전 아담한 크기의 망향탑이 눈에 띈다.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생각하며 단종이 하나하나 쌓아올렸다는 탑은 지금의 서울 방향을 바라보고 섰다. 물론 현재에 이르러 다시금 재현한 탑이지만 이 탑은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지금이야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당시 단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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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어소
    ▶단종이 두 달 머문 청령포

    지금은 둘도 없는 산책 코스


    소나무숲이 시작되는 부근에 세워진 금표비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유배지의 출입을 막는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단종을 보호하려는 영조의 마음이었다고 한다.

    단종은 이곳에서 두 달 머물렀다. 그 해 여름 홍수나 지금처럼 붉은 강물이 청령포를 덮쳐 거처를 영월 객사의 관풍헌으로 옮겼다고 한다.

    단종은 이곳에서 자규시를 남겼다. 피를 토하며 구슬피 운다는 소쩍새에 자신의 처지를 빗댄 처절한 시다. 단종은 1457년 10월 24일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다. 그의 능인 장릉은 청령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자리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곳 또한 후대에겐 더없이 좋은 산책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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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향탑
    ▷영월에 가면 꼭 한번~!

    ‘동강, 어라연’(국가지정명승 제14호)

    기암괴석과 울창한 송림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2004년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곳은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차량 출입이 통제된다.

    ‘선돌’(국가지정명승 제76호)

    말 그대로 기암괴석이 서 있다는 뜻의 층암절벽이다. 순조 때 영월부사를 지낸 홍이간이 쓴 ‘운장벽(雲莊壁)’이란 글귀가 남아있다.

    ‘고씨굴’(천연기념물 제219호)

    국내 대표적인 석회암 동굴이다. 4억~5억 년 전 형성됐다고 추정되며 종유석의 생성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법흥사’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다. 1902년 법흥사로 개칭됐다. 징효대사 보인탑비(보물 612호)와 부도, 적멸보궁, 사리탑, 석굴 등이 남아있다.

    ‘요선암, 요선정’(천연기념물 제543호)

    조선시대 문인 양사언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선녀탕 위의 바위에 요선암이란 글을 새겨놓은 데서 유래됐다.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1호 (2021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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