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torcycle Test-Drive] 장거리 주행에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BMW 모토라드 R 1250 RT

    2020년 04월 제 115호

  • 쭉 뻗은 길에서 스로틀을 감는다. 다리 사이에서 엔진이 활기차게 돌아간다. 주변 풍경이 잔상처럼 흘러간다. 탁 트인 시야가 기분을 청량하게 바꿔준다. 엉덩이에 전해져오는 노면 질감은 편안하다. 묵직한 차체가 도로를 진중하게 누르는 느낌이 안정감을 더한다. 편의와 안전을 책임지는 각종 기술도 안 보이는 곳에서 빠르게 작동한다. 속도를 높여도 넓고 높게 자리 잡은 윈드실드가 거친 바람을 걸러준다. 편안한 마음으로 오직 라이딩에 집중하게 한다. 투어링 모터사이클의 저력이다. 어떤 모델보다 멀리, 편하게 가기 좋은 모터사이클.

    모터사이클은 장르에 따라 확연히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두 바퀴가 있고 엔진이 있다는 점만 같다고 할까. 바퀴 크기부터 엔진 배기량, 차체 무게까지 영향을 미칠 요소가 가득하다. 그 차이가 장르를 가르고, 또 그 안에서 등급을 나눈다. 무엇이 좋다고 할 순 없다. 자동차와는 또 다르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각자 선사하는 재미가 다르다. 자동차도 각자 특성이 있지만, 모터사이클만큼 극적이진 않다. 모터사이클을 접하고 나서 알게 된 명확한 한 가지다. 어떤 모델을, 어떤 장르를 높게 보고 낮춰 보는 건 사실 무의미하다. 높낮이가 아닌, 다름의 관점이다. 그럼에도 장르 차이는 분명하다. 장르가 재미의 성향이자 용도를 규정하는 까닭이다. 모터사이클을 어떻게 즐길지 정했다면 장르에 맞는 걸 찾아야 한다.

    투어링은 장거리 여행에 특화된 모터사이클 장르다. 여기서 특화했다는 게 중요하다. 어떤 모터사이클이라도 장거리 여행을 못 한다고 말할 순 없으니까. 혼다 슈퍼 커브로도 유라시아 횡단을 감행한다. 단지 느려서 오래 걸릴 뿐이다. 느리고 오래 걸리니 별로일까. 오히려 찬찬히 추억과 인연을 만들 수 있다. 느리기에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분명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장거리를 달릴 때 투어링 모터사이클의 장점은 명확하다. 부인할 수 없다. 장르의 특성이다. 보통 투어링 모터사이클은 크고 배기량도 높다. 그만큼 고급스럽고 편의장치도 많다. 자동차로 따지면 그랜드 투어링, 즉 GT라고 분류할 수 있다. 모터사이클계의 럭셔리를 담당한달까. 중년의 자유를 꿈꾸며 모터사이클을 택한 이들의 맞춤 모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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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브랜드의 최고점은 투어링 모터사이클

    고급 대형 투어링 모터사이클은 각 브랜드에서 꼭짓점을 담당한다. 혼다 골드윙이 대표적이다. BMW 모토라드 K 1600 시리즈나 할리데이비슨 스트리트 글라이드 등도 각 브랜드의 기함으로 군림한다. 각 모델마다 모터사이클에 담을 수 있는 각종 편의장치를 품었다. 해서 거대하고 안락하다. 스피커에선 음악이 나오고 후진 기능이 있는 모델도 있다. 짐을 싣기 편한 저장 공간도 넉넉하게 마련해 놓았다. 모터사이클에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런 형태랄까. 물론 그만큼 가격도 꼭짓점이다.

    ‘BMW 모토라드 R 1250 RT’ 역시 투어링 모델이다. 꼭짓점은 아니지만 고급 투어링 모델로 잔뼈가 굵다. BMW 모토라드의 상징 같은 수평대향 엔진, 즉 복서엔진(복서가 글러브를 맞댄 것처럼 엔진이 생겼다고 해서 붙은 별칭)을 품고 곳곳을 누벼왔다. 거대한 전면 페어링과 윈드실드가 바람을 유순하게 거르고, 음악을 즐길 차체 스피커도 품었다. 각종 편의장치도 투어링답게 마련했다. 열선 그립과 열선 시트는 물론 수납공간도 두둑하다. 크루즈컨트롤 기능까지 있으니 어련할까. 주행에 관련한 다양한 기술도 빼곡하다.

    게다가 전자식이다. 버튼만 조작하면 그뿐이다. 주행모드에 따라 엔진 반응성을 바꾸고 그에 맞춰 서스펜션 감쇄력도 조절한다. 요즘 고급 모터사이클에 없으면 아쉬울 안전장치들도 잊지 않았다. 즉 꼭짓점은 아니지만 고급 투어링의 관점에서 손색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고급 대형 투어러에 비해 배기량이 낮고 가볍다는 점에서 다루기 쉬운 이점이 있다. 물론 상대적인 얘기다. R 1250 RT만 해도 무게가 279㎏이나 나가는 덩치를 자랑하니까.

    R 1250 RT는 작년에 이름을 바꿔 새로 나왔다. 그전에는 R 1200 RT였다. 가운데 숫자는 엔진 배기량을 뜻한다. 1.2ℓ에서 1.25ℓ로 엔진 배기량을 키웠다는 얘기다. 50cc면 별거 아니잖아,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냥 키우기만 하지 않았다. 시프트캠이라는 기특한 장치를 더했다. 밸브를 여닫는 시간과 타이밍, 공기량을 조절해 출력과 효율을 둘 다 잡았다. 라이더가 체감하는 특징이라면 엔진이 더욱 풍성해졌달까. 기존보다 저속에서 토크가 두툼해지고 고속에서 밀어주는 힘이 늘었다.

    원래 모델도 내 기준에선 충분한 출력이어서 고속 영역의 변화는 체감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모터사이클을 밀어붙이지 않으니까. 반면 저속 토크가 두툼해졌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저속에서 예민하지 않게 토크가 두둑했다. 즉 저속에서 모터사이클을 다루기 편해졌다. 중요한 지점이다. 투어링은 편하게 타야 하는데 예민하면 신경 쓰인다. 덩치도 만만치 않은 만큼 저속에서 실수하면 넘어지기 마련이다. 엔진 특성을 보완해 더욱 타기 쉽게 다듬었으니 신형답다. 역시 쌓인 시간만큼 완숙해졌다.

    ▶BMW 모토라드의 상징, 복서 엔진

    엔진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다른 엔진도 아닌 복서 엔진인 까닭이다. 복서 엔진은 BMW 모토라드의 상징이다. 기계공학에 일가견 있는 독일 브랜드의 고집으로 빚은 엔진이다. 20세기 초에 생산하기 시작해 100년을 이어왔다. 복서 엔진의 특성은 모터사이클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무게 중심이 낮고 엔진 질감이 독특하다. 모터사이클은 엔진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운전하기에 엔진 특성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BMW 모토라드의 복서 엔진은 특유의 선 굵은 걸걸한 느낌이 맛깔스럽다. 모델과 장르를 넘어서는 엔진만의 고유한 특징이 선명하다. 그러니까 투어링에서도 복서 엔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R 1250 RT의 매력이다. 투어링이지만 마냥 부드럽지 않은 역동성도 즐기게 한다. 그러면서 당연히 투어러답게 각종 편의장치도 빼곡하다. 재미와 편의 요소를 이모저모 챙기고 부담은 덜어낸 고급 투어링 모델. R 1250 RT의 위치다.

    시동을 걸면 복서 엔진 특유의 텁텁한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클러치를 떼고 스로틀을 감으면 왼쪽으로 살짝 기우뚱한다. 복서 엔진 특유의 반응이다. 신호에 따라 차체가 반응하니 왠지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면 과장일까. 복서 엔진에 빠져들면 이렇게 느끼는 사람, 꽤 있다. 클러치를 붙이고 나아가기 시작하면 무게감은 현저히 줄어든다. 핸들링이 무척 안정적이다. BMW 모토라드의 대표적 장치인 텔레레버 서스펜션을 장착한 까닭이다. 보통 모터사이클 앞 서스펜션은 조향과 충격 완화 두 가지를 한꺼번에 수행한다. BMW 모토라드 앞 텔레레버 서스펜션은 조향과 충격 완화를 각기 다른 장치가 상호 보완하며 대처한다. 하나보다 둘이 나은 당연한 이치다. 물론 요즘에는 기술이 발전해 하나로 둘 다 아쉬움 없이 해내긴 한다. 그럼에도 두 장치가 각각 대처하면 더 능숙할 수밖에 없다. R 1250 RT의 앞 텔레레버 서스펜션은 온화하고 정확한 핸들링 감각을 선사한다. 무거운 투어링이기에 조작할 때 한결 마음 편해진다. 이런 성향, 중요하다. 타다 보면 섬세한 기술에 새삼 놀란다.

    복서 엔진의 개성과 앞 텔레레버 서스펜션의 영특함이 어우러지니 시종일관 달릴 때 즐겁다. 그러면서 꽉 들어찬 각종 주행 편의장치는 투어링다운 풍성함을 즐기게 한다. 이대로 전국일주라도 떠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반응. 뒷자리도 큼직해 텐덤으로 주행하기에도 알맞다. 주말마다 양평 인근에서 부부 혹은 연인이 투어링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는 이유가 있다. 그렇게 달리라고 만든 모터사이클이니까. 그에 걸맞은 각종 요소를 담뿍 담았으니까. 투어링 모터사이클이 꾸준히 인기를 얻는 이유다. 스포츠 모터사이클로 자극을 탐닉하는 사람이라도 종종 투어링 모터사이클의 넉넉함에 기웃거리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안락하게 장거리를 가고픈 욕망이 있잖나. 모터사이클이 일상을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라면, 투어링 모델은 더 멀리 더 편하게 벗어나게 해준다. R 1250 RT는 때로 자극적이면서 대체로 편하게, 그 길로 인도한다.

    [김종훈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5호 (2020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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