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기업평판 전문가가 말하는 실패하지 않는 재벌가 자식교육 4계명

이재철 기자, 황순민 기자
입력 2018/05/06 18:28
수정 2018/05/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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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시작된 나비효과가 대한항공을 넘어 재계 전반에 휘몰아치고 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너 경영에 부정적인 여론이 퍼진 근본 원인은 철저한 능력 검증 없이 일부 재벌 3·4세가 '무조건' 경영을 이어받는 가업 승계 구조에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갑질'과 '일탈'이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반(反)기업 정서까지 키우고 있다. 사실 2·3세 경영은 세계적인 기업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경영 방식이다. 세계적 기업인 도요타자동차, 포드, 월마트 등도 일가가 가업을 물려받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객관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이사회를 통해 내부적으로 철저한 검증 시스템을 작동시켜 경영자를 선별하기 때문이다.

매일경제신문은 6일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 회사인 A케이스를 비롯한 기업 경영·평판 및 재벌기업 관련 전문가그룹 자문을 받아 자녀에게 가업 승계를 고려하는 기업가가 기억해야 하는 4가지 자녀 교육 방침을 정리했다.

① 乙의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방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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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에 있어 일정 부분 '방임'이 필요하다.


재벌가 자녀 중 일부가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고, 심지어 폭력성까지 띠는 가장 큰 이유는 선대에 대한 피해의식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떻게 해도 아버지가 일궈놓은 성과와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심리가 작용하면서 반발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반면 부모가 일궈놓은 풍요롭지만 폐쇄적인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것은 부모의 손바닥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부모에 대한 반항심을 대부분 약자인 '제3자'에게 풀면서 갑질 사태나 폭력·폭언 등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자녀의 가치관 형성에 있어서 부모의 생각을 주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최근 경영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는 시장의 룰로 설명된다.

새로운 시각과 넓은 시야가 경영자에게 필수적인 이유다. 기존 아버지 세대가 밟은 '엘리트코스'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장남인 박서원 씨는 미국에 건너가 뒤늦게 발을 들여놓은 광고계에서 혼자 힘으로 빛을 발했다.

2006년 설립한 빅앤트인터내셔널을 이끌며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은 옥외광고 '뿌린 대로 거두리라'로 세계 5대 국제광고제에서 15개 상을 휩쓰는 등 자신만의 재능을 찾았다. 외부에서 인정받은 후 두산그룹 광고 계열사인 오리콤에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로 합류했다.

'실패'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기존 기업들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결과 중심의 성공시스템이 아니라 빨리 실패하고 그에 대해 대응하고 변모하는 방식의 기업이 살아남고 있다. 이는 자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녀의 실수를 실패나 잘못으로 교육시키는 방법으로는 경쟁력 있는 경영자를 키워내기 힘들다.

② 끼리끼리 재벌문화 벗어나…다양한 친구 사귀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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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벌 3·4세는 비슷한 환경을 가진 소규모 '그룹'에 속한다. 재벌가 자제들끼리 닫힌 세계에서 교류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교류하면서 다른 이에게 공감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반면 군림하거나 명령하는 것에 익숙해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소통하는 것은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다.


일방적인 리더십이 통하는 시대는 갔다. 자녀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풀어놔야 한다는 얘기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손자이자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 정경선 씨는 재벌 출신이지만 부모와 별개로 스스로 자립해 사회적 기업을 이끌고 있다.

정경선 씨는 고려대에 재학 중이던 2008년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문화예술 행사를 열고 행사에서 거둔 수익금을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는 '쿠스파'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들을 발굴·육성하는 회사도 차렸다.

중국에서는 재벌 2세인 푸얼다이(富二代)들이 '릴레이차이나' 등 CEO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모임에 재벌 2세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대표 등 자수성가형 기업인들을 포함시켜 교류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임을 통해 격월간지를 발간하면서 청년 기업인들 활동을 홍보하기도 하고, 외국 석학을 초청해 교류하는 등 '다양성' 배우기에 한창이다.

③ 록펠러 가문처럼…스스로 돌아보게 '투명 냉장고' 도입을

최근에는 직위나 직책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로 리더에 대한 평가가 좌우된다. 직위와 직책, 오너 일가라는 배경만으로 존경을 표하는 시대는 지났다. 자녀에게 승계를 고려하고 있다면 수많은 주위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을 관리하도록 '트레이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이나 회사에서 '투명 냉장고'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식당 등에서 사용하는 투명 냉장고는 내용물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투명 냉장고를 쓰는 사람은 바깥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냉장고 안 내용물을 의식적으로 '진열'하고 깨끗하게 관리한다.

이는 기업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투명화하고, 재벌 총수 가족이라도 구성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성과 연결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언제건 위기는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도덕성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타인이 모방하는 품성"이라며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로 도덕성을 꼽았다. 록펠러의 패밀리오피스가 제정한 록펠러 가문헌장은 후손들 학교 성적에 따라 돈을 주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한 푼도 받지 못하게 정해놨다. 이 같은 가문헌장은 재산을 불리면서도 사회적 명예를 지켜온 록펠러가의 숨은 비결이다.

④ 오너 2·3세도 자기 꿈 있어…가업승계 강요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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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승계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자녀 취향과 현재 기업의 비전이 일치하느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부모가 시켜서 하거나, 억지로 떠맡아서 가업을 이어받는 것은 기업 미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오너 마인드부터 바뀌어야 하는 대목이다.

자녀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그룹 경영에 관심을 보이고 무엇보다 '재능'을 증명한다면 점진적으로 기업을 물려줄 수 있다.

실제 국내 많은 대기업들은 이제 전일적인 승계가 가능하지 않은 구조에 봉착해 있다. 흔히 말하는 '가족기업'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오너 자녀가 무조건적으로 승계를 바라보는 내부 직원들과 주주들 시선도 이전과 달리 차갑다. 자신이 스스로 일군 성과를 바탕으로 '자질'을 증명한다면 추후 그룹을 이어받을 경영자 후보군에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다.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장남 구본웅 씨는 LS그룹 장자 승계원칙에 따라 가장 먼저 그룹 경영에 나설 수 있었지만 벤처기업 투자회사 포메이션그룹을 창업해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2011년 설립한 포메이션그룹은 가상현실(VR)기기 업체 오큘러스에 1250만달러를 투자했고, 오큘러스가 2014년 페이스북에 매각되면서 투자금의 10배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100년 기업'을 일궈온 발렌베리가(家)는 회사를 이어받기 위해서는 해군 장교 복무를 통해 국방 의무를 마치도록 했다. 또한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힘으로 명문대 졸업, 외국 유학, 발렌베리가 아닌 회사에서 근무라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해외기업 살펴보니…노블레스 오블리주 필수
해외선 바닥부터 경영훈련…20대임원 드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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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가족기업문화가 구축된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을 비롯해 독일 밀레 등 성공한 가족주의 기업의 특징은 '혹독한 현장 경험'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두 가지로 요약된다. 사회·경제적으로 평가 받는 자리에 있을수록 이에 상응하는 강력한 법과 도덕 의무를 이행한다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에 수대째 경영권을 대물림해도 건재할 수 있었다.

대표 사례가 4대째 성공적으로 경영권이 자손들에게 이어져 온 독일 프리미엄 가전기업인 밀레그룹이다. 밀레의 공동 소유자인 라인하르트 진칸 공동회장은 최근 이탈리아 로마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평판은 책임을 제대로 이행할 때 얻어지는 것(Reputation Bears Responsibility)"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유럽식 가족경영문화는 현장에서 혹독하게 경험을 쌓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체득한 자녀를 상대로 엄정한 경영능력 검증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밀레그룹은 공동창업자인 밀레 가문과 진칸 가문이 1899년 이후 120여 년째 가족경영을 성공적으로 이어왔다.

진칸 공동회장은 최초 공동 창업자인 라인하르트 진칸 회장의 4대손으로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그 결과 또 다른 공동 창업자 카를 밀레의 4대손 마르쿠스 밀레 회장과 공동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 역시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밀레에 입사하지 않고 BMW 등 다른 기업에서 마케팅 경험을 쌓았다. 이어 서른셋의 나이에 밀레에 합류한 뒤에도 고위 임원으로 상승하지 않고 실무를 배웠다. 이후에도 두 가문에서 세 명씩 모두 여섯 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최종 검증을 통과해 비로소 '제1의 종업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총수 자녀라는 이유로 20대에 등기이사로 초고속 승진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LG전자가 지난 2년여의 구애 끝에 인수한 오스트리아 자동차 조명기업 ZKW가 대표 사례다. 1982년부터 ZKW를 지배해온 모머트 가문의 울리히 모머트 소유자는 '언제라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적임자가 있다면 기꺼이 매각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업을 운영해왔다.

세계 최대 통신 장비 업체인 에릭슨, 항공·방위산업체 사브,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를 비롯한 계열사를 보유하며 스웨덴 국내총생산의 3분의 1을 책임지는 발렌베리 가문은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업의 대표적인 예시다. 발렌베리 가문은 우리나라의 재벌처럼 수많은 계열사를 보유하며 '세습경영'도 이어가고 있지만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다.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비판도 찾아보기 힘들다. 가업을 넘기기 전에 냉혹하게 자녀의 능력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일부 재벌 3~4세의 일탈 행위로 전문경영인 체제와 오너가 후계 방식에서 일방적인 선악의 판단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족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 중 어떤 지향점을 추구해야 할지에 대해 "가족·오너 경영은 위기 순간에 강하고 장기적 안목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장점이 있다"며 "지주사를 오너가 책임지고 계열사를 전문경영인 분업 체계로 강화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재 도요타의 사장 도요다 아키오는 창업자의 증손자로 오너 4세 경영인이다. 53세에 사장 자리에 올라 10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는 그는 가속페달 결함 문제에 금융위기까지 겹쳐 위기를 맞은 도요타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케이스다. 전문 경영인 체제를 15년째 이어가고 있던 도요타 이사회는 회사 존망이 걸린 위기 상황에서 오너경영으로의 복귀를 택했다. 그는 도요타 지분이 없지만 능력으로 최고경영자(CEO)로 인정받았다.

위기관리전문 컨설팅사 A케이스 유민영 대표
오너 一家 개인 일탈이 경영권 위협 불러…대한항공 '물컵갑질' 타기업에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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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평판·위기관리 전문 컨설팅회사 A케이스의 유민영 대표는 6일 "대한항공 물컵 사건은 국내 재벌사(史)에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기업들의 '재벌 3·4세 리스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무장된 강력한 여론과 만났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춘추관장을 지낸 유 대표는 당시로선 처음으로 대통령이 직접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국정 홍보를 하도록 초석을 다진 장본인이다. 5년간 매일 반복된 위기 상황에 대응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들을 대상으로 평판과 위기관리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번 사건은 오너 자제의 '일탈'이 경영권의 위협으로 발전하고 기업의 평판이 경영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단지 한 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영 승계를 고려하고 있는 다른 재벌들에게도 반면교사"라고 지적했다. 각종 부조리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강력한 개인의 등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유 대표는 지적했다.

그는 "이번 대한항공 사건을 보면 사건이 터지고 난 이후 내부 평판이 더 폭발적이고 위력적으로 작용했다"며 "외부에 보이는 모습이 아닌 내부 구성원들이 보는 '평소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재철 기자 /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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