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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때 싹튼 신물질로…SK바이오팜, 27년만에 여의도 입성

한예경 기자
입력 2020.05.26 17:30   수정 2020.05.26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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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쌓이고 인재영입 힘들어도
최태원회장 신약 개발에 열정
올해 신약 美시장 진출등 성과
바이오팜 증시 상장도 앞둬

"당장 돈 안돼도 미래보고 개발
오너 의지없인 불가능한 사업"
"그래도 그냥 놔둡시다."

겉으론 태연했다. 속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사회에 내년도 예산을 제출하는 4분기만 되면 장동현 SK(주) 사장은 매년 그랬다. 신약 개발을 하는 자회사 SK바이오팜이 예산안의 최대 '도전 과제'였기 때문이다. 바이오산업 특성상 연구개발(R&D) 예산은 매년 더 커졌고, SK가 제약·바이오 전문회사도 아닌데 좋은 인재를 데려오려니 예산은 늘 걸림돌이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만은 생각이 달랐다. 매년 큰폭의 적자를 내는 회사를 두고도 최태원 회장은 "돈 좀 쓰는 거, 그냥 놔둡시다"고 했다. 처음 시작부터 그랬다.

SK바이오팜과 SK팜테코를 주력 편대로 하는 제약·바이오 사업은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SK그룹에서 각별한 위치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1990년대 들어서 유공의 정밀화학 사업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정밀화학 사업의 가장 심화된 기술은 인체에 들어가는 의약품을 만들어내는 제약·바이오 사업이다. 마침 일본이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유공 미국 연구소도 정밀화학 연구 부산물로 신약 물질을 연구 중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3년 미국 연구진을 국내로 불러들여 유공의 대덕연구단지 인력과 합쳤다. 10명 남짓한 소규모 연구팀 이름은 'P프로젝트'. 영문 '파머슈디컬(제약이라는 뜻)'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P프로젝트'는 SK그룹 제약·바이오 기업 모태가 됐다.

미국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최태원 회장은 그로부터 27년간 'P프로젝트'를 조용히 이끌어온 실질적 프로젝트 리더다. 1997년에는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의약 사업 진출을 선언했고, 미국 뉴저지에 의약개발전문연구소를 개설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0년대 초반 경영권 분쟁 등을 겪으면서도 신약 개발 연구 지원만은 빠뜨리지 않았다.


심지어 SK그룹을 지주회사로 전환시킨 2007년에도 그는 신약 개발 조직만은 지주사 직속으로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자회사 밑에 뒀다가는 제대로 된 지원을 못 받을테니 지주사 밑에 두고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의지였다. 2011년 신약 개발 사업을 하는 SK바이오팜을 별도 법인으로 만들고, 2015년엔 원료의약품을 생산·판매하는 SK바이오텍을 떼어내 아일랜드·미국 등지 회사들을 인수·합병(M&A)해 몸집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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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드디어 'P프로젝트' 성과가 가시화됐다.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가 미국시장에 출시됐고, 기업공개(IPO) 절차가 시작돼 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다. SK팜테코의 미국 생산법인이 미국 정부가 발주한 필수 의약품 확보 사업의 핵심 공급처로 선정되는 등 CMO쪽에서도 성과가 뚜렷하다. 그동안 돈만 쓴다고 해서 '코스트 센터'로 불리던 제약·바이오 사업이 돈을 버는 '캐시카우'로 등극하는 날도 머지않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27년 전 제약·바이오업에 처음 뛰어들었던 SK그룹조차도 훗날 일이 이렇게 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30대 중반이던 최태원 회장은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무모했고, 누군가 미래를 만들어주길 기다리는 대신 미래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했을 뿐이다. 도전했고 실패했지만 그래도 다시 도전했다.

장동현 사장은 "오너의 의지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사업이었다"며 "세상에 없는 신약을 개발한다는 건 연구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돈이 안 되는 걸 사업으로 개발하는 것은 오너의 의지 이외에는 더 설명이 안 된다"고 밝혔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81년 컬러비디오테이프를 국내 최초로 생산해 대한민국을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40년 후 최태원 회장은 신약으로 글로벌시장을 놀라게 하고 있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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