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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엑소더스’ 현상에 실리콘밸리의 불안한 미래? 언택트 혁명·높은 인건비 원인… 상징성은 여전

신현규 기자
입력 2020.10.0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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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국) 남부 쪽에 집 한 채 사서 떠날까 말까 고민 중이에요.”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는 한 지인이 8월 중순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했고, 현재 이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그다. 그런데 대뜸 실리콘밸리가 아닌 다른 지역에 있는 부동산을 사서 이사를 갈까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털어 놓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리콘밸리에 이미 정착을 한 그는 이곳이 날씨, 치안, 교육 등 모든 여건이 살기 좋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너무 비싸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이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같은 값이면 남부 쪽에 있는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 수도 있는데, 힘들게 조그마한 실리콘밸리의 집에서 사는 게 한심하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 지역은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전국에서 최대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점이 그의 큰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그의 회사는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재택근무 상태에 돌입해 있기도 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코로나19 때문에 저도 그렇고 아내도 재택근무를 하는데 지금 집은 좁아요. 침실과 각자의 집무실이 따로 있어야 할 것 같고, 아이들 또한 각자의 공부방이 필요하니까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어떡할 거냐고 물으니, 자신이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 되지 않느냐고 답을 했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마침 듣고 있던 팟캐스트 ‘금주의 스타트업(This Week in Startup)’이라는 코너에서 비슷한 주제의 대화가 오가고 있는 게 들렸다. ‘루프스톡’이라는 실리콘밸리 소재 부동산 핀테크 회사의 CEO인 게리 비즐리는 진행자인 엔젤투자자 제이슨 칼라카니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람들은 주거공간을 빠르게 재정의하고 있고, 이 때문에 새로운 주택에 대한 수요가 억제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면서 그는 10~20년 정도의 장기적 가격상승을 노리는 투자를 한다면 보스턴, 피닉스, 오스틴, 내슈빌, 애틀랜타 등의 도시들을 한번 깊게 공부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언을 덧붙였다. 이 도시들은 모두 주거비용과 물가가 싼 곳들이지만 고용창출로 인구유입이 이뤄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실리콘밸리보다 아직 개발이 완전히 되지 않은 젊은 땅과 도시에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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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갖춰져 있던 실리콘밸리

지난 수십 년 동안 실리콘밸리는 IT 산업의 대명사였다. 뛰어난 IT 관련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죄다 실리콘밸리로 모여 들었고, 실리콘밸리는 그 자체가 IT 산업이었다. 현지 신문사인 산호세머큐리는 “실리콘밸리의 최대 수출품은 1위 구글, 2위 애플, 3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생”이라고 보도했다. 구글 애플 모두 이곳에서 하드웨어를 제조하지는 않는다. 수출품은 모두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지식재산들이다. 결국 ‘사람’이 실리콘밸리의 최대 자산이자, 동시에 수출품인 셈이다.


이처럼 사람이 모여들게 된 이유는 이 지역이 사람 살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기후조건에 수영 스키 낚시 골프 캠핑 요트 등 대부분의 레저 환경이 1시간 이내에 가능하다. 여기에 자유롭고 너그러운 분위기 덕분에 동성애자나 성소수자, 다양한 인종 등의 활동을 포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다른 곳에서는 사회생활하는 데 불편함을 느낄 사람들도 이 지역에서는 거리낌 없는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똑똑한 사람들의 인구밀도가 높아졌다.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똑똑한 인재들로 모여 있는 회사는 똑똑한 인재들을 부른다”고 했는데, 실리콘밸리 자체가 딱 그 공식에 들어맞는 경우다. 자본이나 단순 노동력이 아니라 창의력이 기업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자산이 된 지금, 똑똑한 사람들의 인구밀도가 높다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다. 스탠퍼드 대학교, UC버클리와 같은 명문대학들은 끊임없이 인재들을 배출해 내고 있다.


여기에 스타트업들을 키워줄 수 있는 수많은 엔젤투자자들과 벤처투자자들의 자금은 똑똑한 사람들로 하여금 큰돈을 벌게 해주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여기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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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산불. 무더위에 강풍까지 겹치면서 피해가 더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에 무시무시한 산불까지

단,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면서 실리콘밸리를 둘러싼 천혜의 환경들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에 상당히 많은 확진자들이 발생했고, 실리콘밸리 지역에도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외출의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8월 말 현재 미국에서 바이러스 감염자가 가장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뉴욕, 조지아 등의 순서다. 학교들은 문을 닫았고 인재들의 이동은 중단됐다. 수영 스키 캠핑 등과 같은 레저 활동들도 상당부분 제약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우려 때문에 캠핑장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엄격하게 지키며 개장했다.


최근에는 산불까지 겹치면서 나무가 불탄 재들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과 섞이면서 샛노란 오렌지색 공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화성에서 자고 일어난 것 같다’ ‘반지의 제왕 속에 나오는 악마의 땅 모르도르 같다’ 등의 푸념을 털어 놓았다. 제주도 면적의 4배가 넘는 200에이커 정도의 땅에 심어져 있던 나무들이 불에 탔지만 진화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산불먼지’를 뒤집어쓰고 살아야 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샌프란시스코 주재기자인 헤더 켈리는 “캘리포니아는 날이 갈수록 더워지고 있고, 산불에 시달리고 있다”며 “사람들은 쾌적한 날씨와 깨끗한 공기가 영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인터뷰한 교육스타트업 대표 모니카 메타는 이곳에 거주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실리콘밸리를 떠나 본거지를 옮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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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랄스톤 와이컴비네이터 회장

▶원격혁명이 앞당긴 글로벌 인재들의 연결시대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컴비네이터(Y-Combi nator)는 지난 8월 24~25일 자신들이 육성하고 있는 스타트업들 200개를 모아 데모데이를 개최했다. 특히 이번에 발표되는 스타트업들은 모두 코로나19 사태 이후 모집이 이뤄져서 원격으로 모든 교육과 네트워킹이 진행됐다.


놀라운 것은 그 중 미국에 본거지를 두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원격으로 참가한 기업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제프 랄스톤 와이컴비네이터 회장은 지난 8월 현지 언론 테크크런치 라이브 방송에서 “점점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이곳에서 최신 비즈니스 공략집(Playbook)을 습득한 다음 자국으로 돌아가 그 이론들을 실제로 적용해 나가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스타트업 육성 또한 원격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국경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제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은 실리콘밸리 현지에 구지 오지 않아도 자국에서 제품개발과 네트워킹이 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인건비가 비싸다

뛰어난 스타트업들이 굳이 실리콘밸리에 물리적으로 있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실리콘밸리의 물가, 특히 인건비가 살인적으로 비싸다는 데 있다.


스타트업을 창업하기 위해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인재들을 채용하려면 아무리 하위권 대학을 나온 이들이라고 해도 10만달러(약 1억1600만원) 이상은 최소한이다.

캘리포니아 주 전체의 소득 중간값이 7만5000달러(약 8800만원) 정도인데,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한 실리콘밸리 지역의 중위소득값은 11만8400달러(약 1억4000만원)에 이른다.

지난 4년간 실리콘밸리의 고소득자들의 연봉이 35%가량 상승했다는 통계도 있다. 실리콘밸리에 모여 있는 회사들이 인재를 서로 스카우트해 가려고 몸값을 올리는 현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기업들의 일손은 더 필요해지고 있는데, 공급되는 인재들은 제한적이다. 경제적 위기가 올까봐 사람들을 대량 해고했던 IT 기업들은 최근 다시 사람들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사람 구하기란 실리콘밸리에서 하늘의 별따기처럼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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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서 덴버로 이전해 간 회사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의 CEO 알렉스 카프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팔란티어

지난 8월 27일 미국 증시에 상장을 결정한 팔란티어테크놀로지(Palantir Techno logies)는 본사를 실리콘밸리에 있는 도시 ‘팔로알토’에서 콜로라도주 덴버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유는 ‘문화적 차이’ 때문. 이 회사는 뉴욕증권거래소에 보낸 회사 주식사용설명서(S-1)를 통해 “실리콘밸리의 기술 엘리트들은 사회가 어떻게 조직돼야 하는지, 정의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지 못한다”며 “기술 부문의 가치와 정의에서도 실리콘밸리의 이질적인 스타트업 문화와는 공유할 것이 점점 더 없어진다”고 밝혔다.

팔란티어를 창업한 실리콘밸리의 거물 ‘피터 틸’은 비록 서독에서 태어났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이 지역에서 나온 토박이.

페이팔과 팔란티어 모두 이곳에서 창업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그가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직원들이 갖고 있는 다소 느슨한 문화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떠난 것이다. 피터 틸은 평소에도 다양한 강연기회를 통해 “우리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주류들에 의해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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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내에서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7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논란들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는 영원히 실리콘밸리라는 주장들도 현지에서는 만만치 않다. 마치 한국의 강남처럼 ‘상징적’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논리다.


이미 2016년과 2018년에도 실리콘밸리에는 비슷한 논란들이 있었다. 2016년 잘나가는 스타트업 ‘위블리’가 피닉스로 이전해 가면서 우버 옐프 등의 큰 회사들도 피닉스로 제2사무실을 만들어 나가기도 했다.

2018년에는 실리콘밸리 리더십그룹이라는 곳에서 “집값 급등과 교통난으로 실리콘밸리가 기술 선도자로 지위를 버티기 어려워졌다”는 보고서를 냈다. 실리콘밸리 리더십 그룹의 칼 가디노 회장은 이 보고서를 통해 지금의 주택·교통난이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실리콘밸리 엑소더스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국내외 언론들은 이를 통해 실리콘밸리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보도들을 쏟아냈다.


현지에 거주하는 엔지니어 박 모 씨는 “실리콘밸리의 위상이 추락한다는 이야기는 거의 매년 반복되는 레퍼토리”라고 했다. 현지 기업에서 수석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김동욱 씨는 “1~2년 뒤에 코로나19 사태가 끝난다고 가정한다면 실리콘밸리의 일자리는 더 늘어날 것이며 사람들은 다시 모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라며 “물론 팬데믹 이전보다는 원격으로 일하는 비중이 높겠지만, 그렇다고 원격이 완전히 대세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가 “우리는 모두 인피니티 루프(애플의 본사 내에 위치한 도로명)에서 마주치며 일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결국 근거리에서 부딪히며 일하는 것이 생산적일 수밖에 없고, 그를 위해서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지역에 똑똑한 사람들이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실리콘밸리를 떠나겠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뒤 며칠 후, 현지에 머무르는 한 노련한 개인투자자 C와 저녁을 같이했다. 평소 시장 보는 눈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난 C는 이런 나의 생각을 차분히 듣고 나더니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을 했다.


“저는 아닌 것 같아요. 두고 보세요. 실리콘밸리는 다시 주목받을 거예요. 코로나19 바이러스 끝나면 사람들은 다시 여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동안 로빈후드를 통해 주식 투자해서 푼돈을 모았던 밀레니얼 세대들이 이제는 돈 좀 벌었다며 부동산으로 들어올 겁니다. 주식은 이미 너무 많이 올랐거든요. 실리콘밸리를 보세요. 새로운 회사들이 계속 탄생하고 있고, 인구는 유입될 수밖에 없어요.” 과연 10년 뒤에도 실리콘밸리는 지금과 같은 위상을 유지하고 있을까.

[신현규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1호 (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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