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투명경영 법조인 출신 CEO 몸값 올라간다는데 [스페셜 리포트]

입력 2021/01/31 17:01
수정 2021/03/03 11:17
테크산업 발전 따라
기업 규제 복잡해지고

준법경영 확산으로
내부 감시체계 중요해져
법조인 출신 기업인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 법무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CEO),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전략책임자(CSO) 등 C레벨 임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내 변호사에 머물지 않고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기업 규제가 늘고 투명경영 추세가 일반화되면서 법조인 출신에 대한 기업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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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출신 쿠팡 CEO, 배민 CRO

31일 재계에 따르면 쿠팡은 올해부터 4인 대표에서 강한승, 박대준 2인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강 대표는 지난해 말 쿠팡에 영입된 김앤장 변호사 출신이다. 강 대표는 회사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법무뿐만 아니라 경영관리까지 담당한다.


그는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서울고등법원 판사, 국회 파견 판사, 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정부대표, 헤이그 국제사법회의 정부대표 등을 지내며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김앤장에서는 쿠팡 등 기술혁신 기업에 대한 법률 조언을 맡아 왔다. 그는 2018년 "쿠팡이 운영하는 로켓배송 서비스는 국토교통부의 허가가 필요한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강 대표는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쿠팡이 고객과 한국 사회에 더욱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함윤식 우아한형제들 부사장은 고객중심경영부문장(CRO·Chief Relationship Officer)이다. CRO는 함 부사장 영입과 함께 신설된 직책이다. 대관, 법무, 홍보, 사회공헌, 고객관리 등 대외업무를 총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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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말 함윤식 전 김앤장 변호사를 영입했다. 그는 사법연수원 교수와 서울고법 판사도 지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회사는 사회에 대한 역할을 늘 고민해 왔으며, 이런 고민이 외부 인사 영입의 필요성으로 이어졌다"며 "법관 출신 중견 법조인을 영입함으로써 균형과 정의를 추구하면서 회사가 사회와 함께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민족' 등 배달 플랫폼 서비스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고객사 수수료와 라이더 처우, 인수·합병(M&A) 등 회사를 둘러싼 이슈가 늘어나면서 대외협력의 중요성이 커지게 됐다고 한다.

카카오에서는 강성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수석부사장이 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이 회사 최고대외관계책임자(CRO)다. 강 수석부사장은 김앤장과 법무법인 지평지성을 거쳐 2016년 카카오에 합류했다. 카카오 법무총괄부사장과 등기임원을 지냈으며, 2019년 12월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수석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밖에 정진수 엔씨소프트 수석부사장(COO), 김성한 골프존 경영지원실장, 이두식 메디톡스 윤리경영본부 부사장 등도 변호사이자 C레벨 경영자다.


이준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그간 변호사들은 법무담당을 주로 해왔는데, 법무는 문제 발생 이후 사후적 해결·관리 기능"이라며 "그런데 최근엔 사전적 리스크 관리와 운영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쿠팡 등 플랫폼 산업이 급성장하자 이 산업을 둘러싼 정부 규제와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기술 발전에 따른 법 해석이 이슈가 되면서 법률가들의 테크기업행은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회사의 경영전략이 실행될 수 있도록 리스크 관리와 전략 수립, 외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춘 법조인이 CEO 등 C레벨 임원에 중용된다는 게 이 변호사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현대카드 법무실장과 쿠팡 핀테크담당 부사장을 지냈다.

◆ 변호사 자격 가진 대기업 C레벨 경영자

대기업에서도 변호사 스펙을 가진 경영자들을 찾아볼 수 있다. 김상헌 (주)LG 사외이사는 변호사 출신 경영자의 효시로 꼽힌다. 그는 약 3년간 판사 경력을 쌓은 후 1996년 LG행을 택했다. LG 구조조정본부 법률고문실 팀장과 법무팀 부사장을 거쳐 네이버 대표이사를 지냈다.

SK그룹은 최근 수펙스추구협의회에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하며 윤진원 사장을 위원장에 임명했다. 거버넌스위원회는 지배구조 투명성 확대와 더불어 관계사의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직이다.

윤 사장은 검찰 출신이다. 2008년 SK에 영입돼 SK(주) 비서실장, SK(주) 윤리경영부문장, 수펙스추구협의회 자율·책임경영지원단장 겸 법무지원팀장을 맡았다.

김준호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 경영자문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이 회사 대표를 지냈다. 앞서 SK하이닉스에선 경영지원부문장(사장)을 지냈다. 그는 약 20년의 검사생활을 마치고 2004년 SK에 영입됐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말 박은재 율촌 변호사를 롯데지주 준법경영실장(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박 부사장은 컴플라이언스·법률 조직 최고책임자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과 대검 미래기획단 단장 등을 지냈으며, 진에어 사외이사를 맡은 경험도 있다. 준법경영실은 법적 측면의 리스크 관리와 컴플라이언스 시스템 구축, 지배구조 정책 수립 등을 담당한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컴플라이언스는 기업경영이 법령, 규정, 윤리 또는 사회통념에 맞도록 하는 내부 통제장치"라며 "경영활동이 법 테두리 안에서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전 점검은 변호사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GS그룹에선 임병용 GS건설 대표이사 부회장과 조재호 GS건설 도시정비사업그룹장(전무)이 검사 경력을 갖고 있다.


임 부회장은 1992년 수원지검 검사직에서 퇴직한 후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에 입사했다. 당시 직책은 법률고문실 상임변호사였다. 이후 LG텔레콤 상무와 GS홀딩스 사업지원팀장, (주)GS 경영지원팀장 등을 거치며 경영인으로 성장했다. 조 전무는 2008년 검찰에 사표를 내고 GS건설에 입사해 법무실, 주택영업1팀 등을 거쳤다.

강호성 CJ ENM 대표도 검사 출신이다. 강 대표는 오는 3월 CJ ENM 주주총회에서 등기임원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그는 2013년 CJ에 입사해 CJ E&M 전략추진실장, CJ(주) 법무실장, CJ(주) 경영지원총괄 등을 지냈다.

신현식 DL케미칼(옛 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도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다. 그는 2001년부터 2018년까지 법무법인 세종에서 근무했다.

마크 리 OCI CSO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 법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OCI는 별도 재무제표기준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1.3%인 만큼 경영자의 글로벌 법률과 전략적 판단 역량이 중요하다. 허만 전 OCI 경영지원실 사장은 법무법인 세종 출신이다.

유동호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기업 목표가 이윤뿐만 아니라 사회통합·공정성을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성 모색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기업을 외부에서 자문·관찰하면서 사업구조를 이해하고, 기업이 수용해야 하는 새로운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법률가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준법경영이 중시되면서 변호사의 경영 참여도 커지고 있다"며 "법률가 출신 C레벨 임원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유 변호사는 LG전자에 근무한 경험이 있다.


"로펌 아닌 기업행…기획통 사내변호사 될래요"

초년생 변호사도 기업으로

1000명대 합격 사시 33회부터
사내변호사 선택 꾸준히 증가

대관·입법조사로 전문성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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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변호사는 법조인이 아니라 경영인입니다. 법무뿐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식은 기본이고, 창의력은 필수입니다. 또한 회사 전반을 이해하는 능력도 갖춰야 합니다."

이완근 한국사내변호사회 회장은 "사내 변호사들은 법무뿐 아니라 재무, 기획, 리스크 관리 등에 참여하며 경영자로 성장하고 있다"면서 "특히 요즘 위험 사전관리가 중요해지면서 사업 기획 단계부터 법률가 출신이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앞으로 사내변호사들에게 더욱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며 "사내변호사들은 조직의 일원으로서 회사에 기여한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법연수원 33기인 이 회장은 법무법인 율촌과 아주대 로스쿨 교수, KCC를 거쳐 오픈소스 전문기업 오에스비씨 상무로 재직 중이다. 한국사내변호사회에 따르면 변호사들의 기업행은 연수원 33기부터 두드러졌다. 33기는 2002년 사법시험 합격 기수로, 당시 합격자는 1000명대에 달했다. 사법연수원 졸업생이 1000명을 넘어서면서 기업으로 눈을 돌린 법률가가 늘어났다.

33기는 이 회장을 비롯해 양종윤 CJ 부사장, 최준우 현대모비스 준법·지식재산실장, 채주엽 SK바이오팜 지속경영본부장, 신윤철 미래에셋대우 컴플라이언스본부장, 이강혁 미래에셋대우 법무실 본부장, 최혁준 DL이앤씨(옛 대림산업) 법무담당 임원, 신우철 삼정KPMG 상무, 오영표 신영증권 패밀리헤리티지본부장 등이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양종윤 부사장, 최준우 실장, 신윤철 본부장은 2004년 사법연수원 졸업 후 한 회사에서 사내변호사 한우물만 판 사례다.

이 회장은 "사내변호사 업무 범위는 법무뿐 아니라 대관, 입법조사,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며 "기업에서 커리어를 쌓아 C레벨 임원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변호사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사내변호사로서 성공하려면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며 "지식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킹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내변호사들은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로도 불린다. 법률 지식을 바탕으로 현업 부서와 로펌, 입법기관 등과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경청과 신뢰는 기본이다. 이 회장은 "사내변호사는 파트너에 대한 신뢰를 기본으로 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며 "회사 현업 부서와 외부 기관을 연결하는 소통 플랫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사내변호사가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사내변호사회 등록 변호사는 2019년 2000명을 돌파했으며, 올해 1월 기준 2235명에 달한다. 전체 사내변호사는 4000여 명대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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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환 재계·한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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