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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신뢰는 기본, 조직장악·인맥까지…'2인자'의 자격

입력 2021/03/07 16:36
수정 2021/03/08 10:27
의사결정 주도 실세형
SK 조대식·LG 권영수
주요계열사 등기임원도 맡아
한화 금춘수, 승계과정 조율

조용한 활약 그림자형
GS 홍순기·신세계 권혁구
외부활동보다 안살림 챙겨
LS 이광우, 14년째 지주사 대표

2인자 두지 않는 곳도
현대차, 정의선 회장 직접 총괄
롯데, 2인자 없이 회장 직할
CJ, 지주사 출신 CEO들 포진
◆ SPECIAL REPORT : 대기업 그룹 이끄는 2인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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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성(삼성), 김용환(현대차), 김창근(SK), 하현회(LG), 황각규(롯데)'. 한때 그룹을 좌지우지했던 2인자들이다. 총수 일가를 제외하고 '일인지하 만인지상' 위치에 올랐던 그들은 지배 구조 개편과 인사 등에 큰 힘을 발휘했다. 회장 부재 시 대리인 역할도 했다. 회장-2인자-계열사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그래서 재계에서는 이들을 '2인자'로 불렀다. 이들은 총수의 신뢰와 조직 장악 능력, 거미줄 인맥 등을 갖췄다. 하지만 요즘에는 예전처럼 막강한 파워를 가진 2인자는 찾기 힘들다. 2인자 말 한마디에 의사 결정이 실행되는 회사는 없다. 그룹 규모가 커진 데다 계열사 자율 경영 체제가 안착되고, 이사회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2인자는 존재한다. '넘버투'는 원활한 그룹 지배권 승계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등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등기임원 자격으로 계열사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최근 계열사와의 관계에서는 지시보다 지원과 조정 업무가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그룹마다 사정이 다른 만큼 2인자 유형도 다양하다.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진 실세형부터 조용한 그림자형도 존재한다. 2인자가 없는 그룹도 있다.

2인자가 속한 조직 형태도 다양하다. LG, GS, 한진, LS는 지주회사 대표이사며 한화는 사실상 지주사 대표다. SK는 그룹 최고의사협의기구 의장이다. 신세계는 그룹 전략실장, 포스코는 철강부문 사장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예전 2인자는 총수 대리인 역할을 하면서 권력을 행사했다"며 "하지만 최근 2·3세로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지주사나 주요 계열사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린 전문경영인형 2인자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2인자들은 환경·책임·투명경영(ESG)을 통한 미래 경쟁력 확보 등에도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카리스마형 2인자…SK·LG·한화


SK그룹 2인자는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겸 전략위원장이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주),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 그룹 계열사 17곳의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최고의사협의기구다. 의장은 협의회 최고 자리다. 조 의장은 2016년 12월에 선임됐으며, 지난해 3연임에 성공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삼성에서 직접 그를 영입했을 정도로 강한 신뢰 관계가 형성돼 있다. 특히 조 의장은 최 회장이 추구하는 ESG 경영과 파이낸셜 스토리(Financial Story) 강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조 의장은 올해 첫 SK수펙스추구협의회 회의에서 파이낸셜 스토리를 강조했다. 파이낸셜 스토리는 고객과 시장 등 파이낸셜 소사이어티(Financial Society)에 SK 미래 등을 제시해 총체적 가치를 높여 나가자는 경영전략이다. 또 그는 신사업과 인수·합병(M&A) 등 그룹 신성장 동력 발굴과 조직 혁신에도 힘쓰고 있다.


조 의장은 최근 최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까지 맡게 되면서, 그룹 내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조 의장은 그룹 지주사 SK(주)를 비롯해 SK텔레콤, SK네트웍스, SK실트론, SK차이나, SK동남아투자회사 등기임원도 맡고 있다. 조 의장은 삼성물산 상사부문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으로 2007년 SK에 영입됐다. SK(주) 재무팀장과 대표, SK바이오팜 대표 등을 역임했다.

권영수 (주)LG 부회장 역할은 구광모 회장을 보좌해 4세 경영 체제를 안착시키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것이다. 권 부회장은 2018년 구광모 회장 체제가 시작되면서 지주사 각자 대표를 맡게 됐다. 그는 (주)LG 대표이사 최고운영책임자(COO)며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등 4개사 이사회 의장이다. 권 부회장은 구본준 LG 고문 계열 LG신설지주의 원만한 분할이 이뤄지도록 조율 역할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4년 LG에서 GS가 분리됐을 당시 강유식 부회장이 했던 일이다. LG신설지주는 오는 5월 출범한다. 4세 경영 체제 구축의 마무리다.

권 부회장은 구 회장을 도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주력 사업 육성과 전기차 부품, 배터리 등을 중심으로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지원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LG전자는 올 7월 글로벌 전기차 부품 업체 마그나와 합작회사를 세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하반기에 상장될 예정이다. 권 부회장은 LG를 대표해 대한상의 부회장을 맡는 등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재계에서는 권 부회장을 카리스마가 강한 2인자로 평가하고 있다.

금춘수 (주)한화 부회장은 오는 29일 (주)한화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에 재선임될 예정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여전히 그에게 신뢰를 보이고 있다. 최근 김 회장은 취업제한이 종료되면서 (주)한화, 한화솔루션, 한화건설 미등기 임원을 맡았다.

금 부회장은 김 회장 보좌와 더불어 승계에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세 아들은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 김동선 한화에너지 상무다. 승계 과정에서 지분 변화나 사업 조정 등이 예상된다. (주)한화 최대 주주는 김 회장(22.65%)이다. 김동관 대표는 4.44%를 보유했으며, 김동원 전무와 김동선 상무 지분은 각각 1.67%에 불과하다.

금 부회장은 김 회장보다 한 살 아래로, 김 회장과 20대부터 인연을 맺어 왔다. 한화그룹 초대 경영기획실장을 맡았으며, 2014년 경영기획실장에 다시 복귀했다. 2014년은 김 회장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7개 계열사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해다.


금 부회장은 2018년 경영기획실 해체 후 사실상 지주회사 격인 (주)한화 지원부문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2인자는 없다…현대차·롯데·CJ


4년 전까지 삼성은 미래전략실장이 회장을 보좌해 그룹을 이끌었다. 고 이건희 회장 시절에는 소병해, 이수환, 이수빈, 현명관, 이학수, 김순택, 최지성 등 7명의 실세형 실장이 2인자로 불렸다. 그런데 2017년 미래전략실이 해체됐다. 계열사들은 자율 경영 체제로 전환됐다. 예전과 같은 2인자는 없다. 오너를 제외한 유일한 부회장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정현호 삼성전자 사장은 '미니 컨트롤타워'인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를 이끈다. 사업지원TF는 전자 계열사 지원 조직이다. 정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 최측근으로 꼽힌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CEO형 오너 경영인이다. 2인자를 내세우는 대신 직접 현장을 누빈다. 정몽구 회장 시절 김용환 전 부회장 같은 2인자는 없다. 실세로 꼽히는 사장은 김걸 현대차 기획조정실장 사장과 장재훈 사장, 공영운 전략기획담당 사장 등이다. 김 사장은 정 회장을 보좌해 계열사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지배 구조 개편도 김 사장 몫이다.

장 사장은 오는 24일 현대차 주총에서 대표에 선임된다. 현대차 측은 "장 사장은 제네시스 GV80부터 GV70까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을 성공적으로 공개했으며 자율 복장 도입, 직급 체계 간소화, 최고경영층 타운홀 미팅 등도 주도했다"고 장 사장에 대한 사내이사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공 사장은 전략기획과 국내 법무를 담당하고 있다.

롯데그룹도 2인자가 없다. 신동빈 회장 친정 체제다. 신 회장은 롯데지주 대표며, 송용덕 부회장과 이동우 사장이 회장을 보좌해 그룹을 이끈다. 송 부회장은 2019년 12월, 이 사장은 지난해 8월 롯데지주 대표가 됐다. 둘은 강한 카리스마를 가졌던 황각규 전 부회장과는 달리 CEO형 지주사 대표다.

그룹 2인자로 불렸던 황 전 부회장은 지난해 8월 물러났다. 그는 신 회장이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상무로 입사했을 때부터 신 회장을 보좌했다. 이후 그룹 정책본부 국제실장, 운영실장, 경영혁신실장을 역임했다. 2017년 롯데지주 초대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2018년 신 회장이 구속됐을 때는 롯데 비상경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신 회장의 빈자리를 채웠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에서 2인자는 금기어"라고 전했다.

CJ는 지주사 출신 CEO들이 이재현 회장을 보좌해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룹 주요 CEO는 최은석 CJ제일제당 대표, 강호성 CJ ENM 대표,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 등이다.

소리 없는 보좌형…GS·신세계·한진·LS


GS는 조용한 2인자 스타일이다. 2인자 보직은 (주)GS 대표이사다. 외부 활동보다는 안살림을 챙긴다. 그래서 CFO 출신들이 이 자리를 맡는다. (주)GS 대표는 서경석 전 부회장, 정택근 전 부회장을 거쳐 2020년부터 홍순기 사장이 맡고 있다. 2020년은 허창수 회장에서 허태수 회장으로 GS 총수가 바뀐 해다. 홍 사장도 재무전문가로, 10년 넘게 (주)GS 재무팀장을 지냈다. 홍 사장은 허태수 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그룹 친환경협의체 의장도 맡고 있다.

권혁구 사장은 8년째 신세계그룹 전략실을 이끌고 있다. 이마트와 (주)신세계 사내이사도 맡고 있다. 전략실은 예전 경영지원실, 경영전략실로, 계열사 지원·관리 조직이다. 권 사장은 이마트, 신세계 등 계열사 경영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조율 역할도 맡고 있다. 권 사장은 1987년 신세계 공채 출신 기획전문가다. 전략실에서만 20년 가까이 근무했다.

한진그룹은 석태수 사장이 조원태 회장과 함께 그룹 지주사 한진칼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2019년 조 회장 취임과 함께 지주사 대표에 올랐다. 석 사장은 조 회장 체제 안착과 지주사 대표로서 그룹 지배구조 안정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석 사장은 대한항공과 (주)한진 등 주요 계열사 대표도 지냈다.

이광우 (주)LS 부회장은 2008년 지주사 체제 전환 이후 지금까지 (주)LS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LS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후원군은 구자열 LS그룹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의 신임이다. 재계 관계자는 "남매나 사촌들이 공동 경영하는 그룹에선 2인자에게 조정자 역할이 요구된다"고 전했다.

오너가 없는 회사인 포스코그룹 내 회장 다음 자리는 포스코 철강부문장이다. 철강부문장은 김학동 사장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전문경영인 회장 체제다. 그룹 지주사 현대중공업지주 대주주는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며, 대표는 권오갑 회장이다. 권 회장은 대주주 신뢰를 바탕으로 회사를 조선·에너지 전문그룹으로 키워나가고 있다. 조선부문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 대표는 가삼현 사장이다. 금융그룹에선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대표 수석부회장이 2인자다. 최 수석부회장은 미래에셋금융그룹 부회장 5명 중 유일하게 수석 타이틀이 있다. 부회장 중 가장 선임이라는 의미다. 그는 박현주 회장과 더불어 미래에셋 창업 멤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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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환 재계·한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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