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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소주 귀엽다며 드실 뻔" 굿즈 마케팅 선 넘었다

입력 2021/05/22 18:00
수정 2021/05/22 21:29
"우유야, 보디워시야? 소주야, 디퓨저야?"
서울우유 바디워시, 진로 소주 디퓨저, 딱붙 캔디 등

먹어도 되는 제품인지 아닌지 오인 혼동 야기해
네티즌, 유아·치매노인 등 안전사고 우려 지적
식약처, 화장품법·식품표시광고법 동시 개정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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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소주병(오른쪽)과 디자인은 똑같고 크기만 다른 진로 소주병 디퓨저(왼쪽). 패키지 안에 소주잔까지 함께 들어가 있어 소주로 오인해 음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효혜 기자의 생생유통] 유통업계에서는 최근 상품에 재미를 더한 '펀슈머' 마케팅이 대세다. 펀슈머란 '재미(Fun)'와 '소비자(Consumer)'를 합친 신조어로 소비를 통해 색다른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상품을 말한다. 주로 MZ세대가 타깃이다.

이를 위해 유통업체들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독특한 컬래버레이션(협업) 등을 활용한 '굿즈(GOODS)'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통 한정판으로 제작되는 굿즈들은 제품에 대한 MZ세대의 관심을 환기하고 구매 욕구와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제는 이 굿즈들이 재미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안전과 같은 기본 원칙을 소홀히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출시된 '서울우유 바디워시'가 대표적이다.


우유팩과 거의 동일한 디자인으로 제작된 보디워시 제품 패키지가 유아, 지적장애인, 치매 노인에게 실제 식품과 유해물질에 대한 혼동을 줘 자칫 안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앞서 지난 12일 홈플러스는 LG생활건강·서울우유와 협업해 '온더바디 서울우유 콜라보 바디워시'를 출시했다.

해당 제품은 출시 직후 서울우유 팩 모양과 크기가 비슷한 점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지난 15일 이 제품이 홈플러스 일부 매장에서 우유 옆에 진열된 모습이 온라인에서 퍼지면서 소비자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네티즌은 트위터 등에서 해당 사진을 공유하며 "보디워시인 걸 모르고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말 위험해 보인다. 노인분들은 쉽게 헷갈리실 것 같다" "샤워용품 코너가 아니라 우유용품 코너에 있으니 더욱 구분하기 어렵다" 등의 반응이 이어진 것이다.

이에 홈플러스 관계자는 "점포 직원이 잘해보려고 '연관 진열'을 했다가 지적을 받고 바로잡았다"며 "실제 제품 앞뒤 면에는 우유와 헷갈리지 않도록 관련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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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매장 우유코너에 우유와 함께 비치된 바디워시 사진.트위터에 공개돼 네티즌들로부터 "우유인 줄 알고 먹을 수도 있겠다"며 우려 섞인 비난을 받았다. /사진 출처=트위터

서울우유 바디워시뿐만이 아니다.


하이트진로가 지난 3월 내놓은 특별 한정판 굿즈 '진로 소주병 디퓨저'도 최근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여전히 온라인·오프라인에서 판매 중인 해당 디퓨저는 소주병을 그대로 축소해놓은 디퓨저 병 디자인 때문에 소주로 오인하고 음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해당 대퓨저에 대해서도 네티즌은 "나도 이거 샀는데 아버지가 요즘 소주 귀엽게 나온다며 드실 뻔해서 말렸다" "지나가다 보고는 당연히 미니 소주병인 줄 알았다" "심지어 소주잔까지 같이 있는데 저걸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 등등 우려 섞인 지적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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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이 딱풀 모양·디자인과 유사하게 내놓은 딱붙캔디.

이 밖에 문구용품 딱풀 디자인을 본뜬 사탕 '딱붙캔디', 바둑알 모양 초콜릿 '바둑 초콜릿', 모나미 매직잉크 디자인을 적용한 음료 '유어스모나미매직스파클링' 등도 "선을 넘은 컬래버 굿즈"의 예시로 꼽히고 있다.

5세 자녀를 둔 주부 이 모씨(36·서울)는 "재미도 좋지만 소비자들 안전이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며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유아, 지적장애인, 치매 노인은 구두약이 초콜릿인 줄 알거나 딱풀이 사탕인 줄 알고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은 채 먹을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주부 역시 "아이들이 매직 잉크를 빨아 먹으면 어쩔 건가. 구두약을 열어 초콜릿인 줄 알고 퍼먹으면 어쩌려고 하느냐"고 되물은 뒤 "(이런 유의 경우) 식품 허가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유아가 문구류나 부품 등을 입에 넣는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한국소비자원의 어린이 안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어린이가 이물질을 삼키는 사고는 2017년 1498건에서 2018년 1548건, 2019년 1915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특히 완구·문구 등 학용품이 가장 많은 사고를 일으켰다.

문제는 이처럼 먹거리가 아닌 것을 먹거리로 오인하게 만들어 안전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마케팅에 사용된 디자인을 제재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대목이다. 현행법은 식품에 올바른 표시·광고만 하도록 권고할 뿐 명시적 기준이 없다. 현실적으로 이 같은 펀슈머 상품을 제재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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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25가 모나미와 협업해 내놓은 음료 `유어스모나미매직스파클링`(이하 모나미매직스파클링) 2종.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식품표시광고법)과 '화장품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식약처는 식품 디자인을 본뜬 생활화학 제품은 물론 생활화학 제품을 본뜬 식품 모두를 규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쪽으로 관련법 개정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 관계자는 "안전 관리를 위해 생활화학 제품이나 화장품을 식품으로 오인·혼동해 섭취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과도한 컬래버를 규제할 수 있도록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유통업계 관계자는 "업계 내부에서도 자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흥미 유발만을 위해 도가 지나치지 않도록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효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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