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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김승연…M&A로 40년간 자산 288배 키웠다

입력 2021/07/29 17:36
수정 2021/07/30 08:06
내달 1일 회장 취임 40주년

1981년 29세에 지휘봉 잡아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이끌어
계열사 4배 증가해 83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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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다음달 1일 그룹 회장 취임 40주년을 맞는다.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결정적인 순간마다 선제적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으로 재계 서열 7위의 한화그룹을 이끌어왔다.

김 회장은 1981년 8월 창업주인 고(故) 김종희 회장의 급작스러운 별세로 29세 젊은 나이에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한화그룹은 선친이 이끌던 시절인 1979년 재계 서열(총자산 기준) 9위였다. 올해 서열은 7위다. 1979년 한화보다 위에 있던 그룹 중 아직도 한화보다 서열이 높은 곳은 삼성, 현대차, LG 등 단 3개에 불과하다. 부침이 심했던 국내 산업계에서 그룹을 탄탄히 유지한 비결은 쉼 없는 신사업 발굴과 선제적 구조조정이 꼽힌다.


취임 직후인 1982년과 1985년에는 각각 한양화학·한국다우케미칼(현 한화솔루션), 정아그룹(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을 인수해 석유화학과 서비스·레저 사업의 초석을 다졌다. 그룹 관계자는 "세계적인 석화 공룡 다우케미칼이 한국 사업을 철수하자 향후 전망이 비관적이라며 주변에서 인수 반대가 심했다"며 "하지만 김 회장은 좋은 매물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해 인수 결단을 내렸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적자기업이었던 한국다우케미칼은 인수 뒤 불과 1년 만에 흑자전환했고 현재 그룹 '캐시카우'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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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이뤄진 삼성그룹 방산·화학 계열사 인수 역시 '신의 한 수'였다. 비주력 사업부문을 매각해 전자·헬스케어 등 주력 사업 강화에 나선 삼성그룹의 니즈를 파악해 이를 일괄 인수하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시스템·종합화학·토탈 등 계열사를 단숨에 추가했다. 화학 계열사들도 한화그룹의 캐시카우로 자리 잡았으며 방산 계열사들은 한화의 미래 먹거리인 우주항공 사업 진출을 위한 첨병이 됐다. 1995년 3월 선제적으로 발표한 계열사 구조조정 발표는 한화그룹이 IMF 사태라는 시련을 무난히 넘길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1998년을 목표로 한화에너지 정유부문 등 계열사를 매각 또는 통폐합하겠다는 청사진을 미리 마련해둔 까닭에 IMF 사태 직후인 1999년 매각과 외자 유치 등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당시 구조조정에 나선 김 회장은 "사람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며 "죽을 각오를 하면 살아남고 어설프게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점을 진리로 받아들여 가슴에 새겨나가자"고 말했다.

당시 비축해둔 체력을 바탕으로 2002년에는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을 인수해 생보·손보·증권·운용·저축은행 등 금융사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연쇄 M&A를 통해 한화그룹 총자산은 김 회장 취임 당시인 1981년 7500억원에서 2020년 217조원으로 288배나 늘어났다. 계열사는 19곳에서 83곳으로 늘어났으며 단순히 '화약 만드는 그룹'을 벗어나 제조·방산·우주항공·석유화학·에너지·금융·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을 영위하는 그룹으로 도약했다.

김 회장은 평소 보여준 화끈한 리더십으로도 유명하다. 2010년 더플라자호텔이 6개월간 개·보수에 들어가며 영업을 중단했을 때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장기 유급휴가를 준 사례는 아직도 업계에서 회자된다. 2014년 내전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이라크에서 이뤄진 '광어회' 회식도 유명한 일화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현장 직원들이 "회장님, 사막에서 광어회가 먹고 싶습니다"고 건의했고 직접 현장을 방문한 김 회장은 광어회 600인분을 공수해 만찬을 했다. 2000년 시작한 사회공헌사업인 서울세계불꽃축제에는 그룹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국민에게 즐거운 추억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는 것이 김 회장 지론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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