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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매장 'VIP리스트'가 뭐길래...강남 백화점에 들이닥친 경찰 [방영덕의 디테일]

입력 2021/10/23 19:01
수정 2021/10/2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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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방영덕의 디테일] 웬만해선 백화점에 경찰이 출동하지 않습니다. 백화점에서 달리 부를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경찰이 와야 할 일도 백화점 자체적으로 우선 해결하려고 하지요. 보안요원이나 매장 직원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러는 이유는 단 하나, 백화점이 가지고 있는 고급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섭니다. 연간 수 천만 원씩을 쓰는 VIP(우수) 고객들이 쇼핑하는 그곳에 제복을 입은 경찰이 출동, 수색하는 장면은 백화점 입장에선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런 백화점에, 그것도 강남 한복판 고급 백화점에 지난 12일, 14일 두 차례나 경찰이 들이닥쳤습니다.

명품 매장 압수수색은 물론 직원의 휴대전화와 매장 폐쇄회로(CC)TV 및 컴퓨터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흔치 않은 풍경에 백화점과 명품 업계는 발칵 뒤집혔죠.

경찰이 출동한 이유는 해당 매장 직원 A씨가 10년 동안 VIP 고객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정리한 다이어리를 같은 매장 직원인 B씨가 촬영, 단체 카카오톡방 등에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어섭니다.

VIP 고객의 개인정보가 담긴 이른바 'VIP 리스트'의 외부 유출 여부가 관건으로 떠올랐습니다.

VIP 리스트 외부 유출이 사실이라면 '큰손'인 VIP가 브랜드 손절은 물론, 관련 책임을 물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죠. 명품 및 백화점 업계에서 경찰 수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입니다.

주요 백화점들과 명품 브랜드에서는 통상 VIP 고객들을 관리해 오고 있습니다. 퍼스널 쇼퍼 등을 붙여 쇼핑이 보다 편리하도록 돕고 신상품 및 가격 인상 정보 등을 누구보다 빠르게 전달합니다. 이같은 세세한 관리가 곧 매출 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불가피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한 백화점에서 상위 3%의 VIP 고객이 백화점에서 지출한 돈은 전체 매출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라고 합니다.

이들의 백화점 방문 일수 역시 일반 고객의 약 7배에 이르러 그만큼 '구매력'이 월등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다보니 VIP 리스트 외부 유출은 정말로 큰일입니다.

해당 브랜드에서는 즉각 반박에 나섰습니다. "VIP 리스트를 본 적이 없고, 임직원 누구도 A씨에게 요청한 사실이 없다"는 게 요지입니다. 오히려 A씨가 동료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내용으로 직원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VIP 리스트 자체가 없으니 외부 유출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해당 백화점 또한 펄쩍 뜁니다. 명품 브랜드의 직원들 관리 책임은 해당 브랜드에 있다는 논리를 폅니다. 이번 경찰 수사 내용도 나중에서야 명품 브랜드로부터 들었다는 겁니다.

경찰 수사를 더 지켜봐야 하므로 조심스러울 순 있습니다. 사과를 하는 순간, 자칫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어 어느 한 곳에서도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발뺌하기 바빠 보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화려한 백화점과 잘나가는 명품 브랜드의 민낯을 본 것 같아 씁쓸합니다. 보이고 싶지 않은 내부 문제가 고스란히 외부에 드러났을 때, 그와 같은 위기에 대응하는 부분이 정말 명품스러울 순 없을까요.

국내 백화점에서 해외명품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백화점 매출 중 명품 비중은 2017년 14.5%에서 올해 35.4%로 크게 늘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보복 소비'까지 맞물리며 해외명품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매출이 늘어난 만큼 해외명품의 직원 관리나 백화점의 입점 브랜드 관리 측면에서 더욱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일이 필요해 보입니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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