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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in Biz] 美中 사이 낀 한국…'핵심기반기술' 경쟁력 키워야만 산다

입력 2021/10/14 04:03
수정 2021/10/14 07:37
여러 산업과 긴밀히 연계된
반도체·AI 등 핵심기술 놓고
지정학적 갈등 갈수록 심화

한국, 패권경쟁서 살아남으려면
에너지·바이오 등 집중 육성
美 주도 기술체인 적극 참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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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에서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4일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취임 초기부터 과학기술을 국정 전면으로 내세웠다. 그는 경제안보 담당 장관직을 신설해 우주 과학기술 장관이 겸직을 맡도록 했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기업들과 경제안보를 논의할 협의체를 설립하기로 하고, 주요 대기업들에도 경제안보 담당 임원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과학기술을 국정 최우선으로 내세운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취임하면서 과학이 언제나 행정부 정책의 전면에 서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초과학에 대해 향후 5년 동안 100조원의 투자를 제안하는 법안 '끝없는 프런티어법(Endless Frontier Act)'을 지난 4월 제정했다. 특히 미국은 호주, 인도,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 쿼드(Quad)를 조직해 기술안보 차원에서 대중국 반도체 공급 포위망을 구축 중이다.

세계는 기술지정학적 갈등과 안보 위기로 치닫고 있다. 특히 미·중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경쟁과 갈등이 기존 무역갈등을 넘어서,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심화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과학기술 패권을 둘러싼 분쟁이 국제정치와 통상을 넘어서 국가안보를 결정하는 국가전략의 핵심 요소가 됐다. 미국과 중국은 경제 성장의 목표보다 국가안보를 내세운 기술지정학적 목표를 먼저 내세우기 시작했다. 한때 세계를 휩쓸었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Globalization)는 후순위가 되고, 국가안보와 과학기술, 산업이 통합된 '신국가주의(new nationalism)'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지금의 기술지정학적 갈등은 모든 산업과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의 갈등은 반도체, 인공지능, 배터리 등 광범위한 산업 및 신흥 산업 기반이 되는 핵심기술인 '범용기반기술(GPT·General Purpose Technology)'을 중심으로 한 패권경쟁이 핵심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달리 쿼드협력 분야를 범용기반기술 중심의 신기술개발, 기후변화대응, 백신개발과 보급으로 새롭게 제시한 바이든의 제안도 바로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GPT는 내연기관, 전기, 컴퓨터 등과 같이 광범위한 산업에 기반기술로 활용되면서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기술이며,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과 막대한 부가가치를 가져올 수 있는 핵심기술이다.

1900년대 전후, 2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범용기반기술인 가솔린 내연기관은 독일의 다임러와 마이바흐가 처음 개발하여 주도권을 잡았다. 이는 독일이 자동차 중심의 산업국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3차 산업혁명으로 일컫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주도한 미국은 여전히 세계 경제의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도 바로 이러한 GPT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1970년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전략적으로 선정하고 정부와 기업이 함께 육성한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은 모두 GPT 특성을 가진 전략 산업들이다.


다행히 1980~1990년대에는 30억명에 가까운 저임금 노동인력이 글로벌 시장에 갑자기 진입하게 되는 중국의 개방으로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들이 GPT의 전략적인 중요성보다는 저비용과 생산효율 중심의 한 글로벌 가치사슬(밸류체인)과 세계화에 한눈을 팔게 된다. 1980년대 과학기술의 안보전략적 가치가 저평가되는 세계화 시기에 진입을 하게 됐고, 한국은 이 틈을 타 반도체, 철강 등 전략적인 GPT 산업에서 기술적 역량을 키워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었다.

중국도 한국의 전략을 좇아 이들 GPT 분야에서 경쟁우위를 추구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중국제조 2025, 반도체 굴기 등을 내세우며 산업적 패권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에 한국처럼 조용히 넘어갈 수 없을 정도가 아닌 거대한 국가이고, 한국과 같이 지정학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GPT 헤게모니에 대놓고 도전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요컨대, 현시점의 기술지정학적 갈등의 핵심은 앞으로 중요하게 떠오르는 GPT에 대한 패권이라는 것이고 한국의 전략은 갈등 해결을 기다리거나, 미·중 선택의 문제이기 이전에 범용목적기술을 중심으로 한 기술적 경쟁우위를 얼마나 가져갈 수 있느냐인 것이다. 반도체나 배터리 외에도 탄소중립과 ESG의 글로벌 패러다임 아래에서 수소에너지, 에너지 클라우드와 같은 핵심 에너지기술, 유전자 조작 바이오기술, 인공지능 반도체 등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중차대한 GPT다.

GPT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들 기술과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는 산업들과의 혁신 생태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GPT와 관련된 기술선두그룹의 글로벌 혁신 생태계인 글로벌 과학기술체인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 도태될 수 있다. 현재 중국은 아직 GPT 분야에서 선도할 수준이 부족하고 미국은 글로벌 과학기술체인에서 중국을 제외하고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되는 글로벌 과학기술체인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GPT 중심의 새로운 글로벌 패권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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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준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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