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직급표기 삭제 40대 사장 발탁…삼성 실리콘밸리식 조직 탈바꿈

입력 2021/11/29 17:46
수정 2021/11/30 13:09
이재용의 '뉴삼성' 인사혁신

직급 대신 전문성으로만 평가
능력 있으면 빠르게 발탁 승진
전무 없애고 부사장으로 통합

제조업식 연공서열 문화 없애
유연·수평적인 기업문화 구축

다른부서 이동 '사내FA'로
다양한 직무경험 기회 제공
◆ 삼성 인사제도 혁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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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뉴 삼성'을 선언한 뒤 처음으로 단행된 이번 삼성전자 인사제도 개편은 연공서열을 없애고 수평적이고 유연한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삼성전자가 제조업에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에 만들어진 기업문화를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 맞게 새롭게 개편하는 것이다. 이번 인사제도 혁신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삼성형 패스트트랙이다. 부사장·전무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합해 임원 직급 단계를 축소하고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이나 근무 연한을 없앤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젊고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고 능력 있는 경영자를 조기에 배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지난 9월 말 기준 삼성전자 임원은 모두 1080명이다.


이 가운데 부사장은 67명, 전무는 129명이다. 부사장·전무 직급을 통합하면 삼성전자에는 200여 명에 가까운 차기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이 생기게 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전무나 부사장 등 특정 직급과 연봉에 국한하지 않고 파격적으로 외부 인사를 스카우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며 "인재 영입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직급별 근무 연한을 폐지하는 대신 '승격 세션'을 도입해 젊은 임원 탄생 가능성도 높였다. 삼성전자 직급 제도는 CL(Career Level) 4단계로 이뤄져 있고 한 단계씩 올라가려면 8~10년이 걸린다. 앞으로 직급 연한이 사라지면 30대 임원이나 40대 CEO 배출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에서 임원뿐 아니라 일반 직원 평가체제도 바꿨다. 그동안 실시됐던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기로 했다.


절대평가를 원칙으로 하지만 5개 평가등급 가운데 최상위 등급인 EM을 줄 수 있는 한도는 10%로 제한하기로 했다. 절대평가에 따라 과거와 달리 정해진 상위 고과를 획득하기 위한 부서 내 과당경쟁은 줄어들고 협력은 늘어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또 부서장 1인이 평가하는 체제를 보완해 경쟁보다는 임직원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동료 평가인 '피어리뷰'를 도입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삼성은 직원 간에는 존댓말을 사용하기로 했다. 또 직급을 알 수 없도록 내부 직급 표기를 삭제해 서열화를 탈피하고 전문성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게 했다.

삼성전자는 직원들의 승진 허들뿐 아니라 부서 간 이동을 자유롭게 하면서 근무 환경 울타리도 없애기로 했다. 이번 개편을 통해 도입되는 '사내 FA(Free Agent) 제도'는 같은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직원에게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한 분야에서만 경력을 쌓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직무 경험 기회를 줄 수 있다.

해외와 국내법인 간 인력 교류도 자유로워진다.


'STEP(Samsung Talent Exchange Program)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고 국내와 해외법인의 젊고 우수한 인력을 선발해 교환 근무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교수는 "최근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이 스톡옵션과 같은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해 대기업에서 이탈하는 젊은 인재가 많았다"며 "이번 개편으로 빠르게 내부 승진이 가능해지고 업무 간 장벽도 허물 수 있게 되면서 인재 유출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개편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근무 환경 개선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정년이 지난 숙련 근무자도 계속 회사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정년 외에 '시니어 트랙'을 별도로 만든다. 현재 삼성은 직군별로 이르면 55세부터 임금을 일부 삭감하고 60세를 정년으로 은퇴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임원이 아니더라도 60세 이상이 시니어 트랙을 이용해 근무할 수 있게 된다.

이 밖에 직원들이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주요 거점에 공유오피스를 설치하고 사내 자율근무존을 마련한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제도 혁신안 도출을 위해 임직원 온라인 대토론회와 계층별 의견을 청취해왔다. 임원 직급 통합은 삼성그룹 내 다른 관계사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종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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