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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시 합격 1년뒤 학원강사 이직…2030 세종 관가 탈출 줄잇는다

입력 2022/01/12 17:07
수정 2022/01/13 10:47
고생 끝에 행시 합격했는데
인사적체에 과도한 업무 '불만'
◆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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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소속 A사무관은 지난해 10월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로 이직했다. 경력을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2020년 6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지 1년여 만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근무하던 B사무관은 2019년 62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1년여 만인 2020년 말 공무원시험 학원 강사로 전직했다.

◆ MZ세대 사무관 줄줄이 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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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에 합격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직을 박차고 나오는 '탈(脫)공무원' 사례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특히 정부부처가 모여 있는 세종시에서 20·30대 젊은 사무관을 중심으로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는 분위기다.


서울 등 수도권과 물리적 거리감은 물론 '하명식 정책'에 따른 과도한 업무량, 대기업에 비해 여전히 낮은 임금 등으로 MZ(밀레니얼+Z)세대의 공무원 선호도가 줄어들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관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민간을 택하는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 수년 새 전국 주요 도시 집값이 크게 오른 점도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정부부처의 꽃이라 불리던 기재부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정치권 입김에 따른 각종 정책 탓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하명식 정책 지시 등으로 무력감까지 느낀다는 게 젊은 사무관들의 얘기다. 이 때문에 기재부에서는 1년에도 몇 차례씩 임용된 지 5년 미만인 젊은 사무관이 이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재부 공무원은 "수도권을 벗어나 세종에서 격무에 시달린다는 젊은 사무관들의 호소가 많다"며 "해마다 인사과에는 서울로 파견 근무를 보내달라는 사무관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2020년 5급 공채 수습 사무관들의 최종 부서 배치 결과를 보면 기재부는 25명을 모집했으나 이 중 1지망으로 기재부를 택한 인원은 한 자릿수로 알려졌다. 기재부 전체 지원자는 55명으로 경쟁률은 2.2대1에 머물렀다.

◆ 공무원 조직문화와 충돌


달라진 가치관도 '탈공무원'이 심화되는 이유로 지목된다.


사명감보다는 적절한 금전 보상이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을 중시하는 MZ세대 특성이 공무원 조직문화와 충돌하고 있다는 것.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무원을 대상으로 지난해 발표한 '2020년 공직생활 실태조사'에서도 젊은 공무원들의 달라진 가치관이 드러난다. 조사에 따르면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가 중요하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50대가 71.5%로 가장 높았다. 40대 57.7%, 30대 44.3%, 20대 42.3% 순으로 집계됐다.

조직 목표에 대한 인식 정도 역시 세대별 차이가 확연했다. 1~5점을 기준으로 50대가 3.58점으로 가장 높았고 40대 3.43점, 30대 3.23점, 20대 3.11점 순이었다. 이직 의향을 묻는 조사에서는 20대가 3.15점으로 가장 점수가 높았다. 30대 3.08점, 40대 2.95점, 50대 2.63점 순으로 조사됐다. 최대 이직 사유에 대해 재직기간이 5년 이하인 공무원은 44.1%가 '낮은 보수'를 꼽았다. 6년 이상~10년 이하(35.3%)와 11년 이상~15년 이하(34.0%)도 낮은 보수를 최대 이직 사유로 답했다. 반면 21년 이상~25년 이하는 이직 사유로 '동료와의 관계'를 꼽았다.

지난해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세종시 이전 기관 공무원에 대한 아파트 특별공급 제도를 폐지한 점도 MZ세대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한 30대 사무관은 "서울뿐 아니라 세종에서도 자력으로 아파트를 마련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다 보니 (특공 제도가 폐지돼) 많이들 허탈해하고 있다"며 "신입 사무관 앞에서 '특공' '분양'이라는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주택자인 사무관 사이에서는 '앞으로 (세종보다 아파트 가격이 낮은) 충남 공주에서 출퇴근해야 한다'는 자조적인 농담까지 나온다"고 덧붙였다.


◆ 과장급 간부도 민간으로


최근에는 과장급 이상 중간 간부도 민간으로 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산업부에서만 과장 3명이 민간으로 이직했다. C과장은 SK그룹 계열사로, D과장은 GS그룹 계열사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E과장도 중견기업 계열사 임원 자리로 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F과장과 방송통신위원회 G서기관도 지난해 네이버로 이직했다. 이 밖에 최근 몇 년 새 여러 주요 부처 중간 간부들이 대기업이나 로펌 등으로 이동했다. 최근에는 스타트업에서도 수억 원대 연봉을 제안해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행정고시에 합격해 입직한 지 15년 정도 지나면 웬만한 부처에서는 과장을 맡지만 기재부나 산업부처럼 인사 적체가 심한 부처에서는 과장 달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무작정 승진을 기다리기보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기회가 될 때 민간으로 이직하자는 생각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 인사 적체 없는 부처 '인기'


고생해도 승진이 쉽지 않은 현실은 부처 선호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입 사무관 사이에서는 승진이 빠른 부처가 각광받고 있다. 같은 해 행정고시에 합격해 임용된 동기 사이일지라도 부처에 따라 직급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승진이 상대적으로 빠른 처·청의 인기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올해로 6년 차인 한 사무관은 "처·청으로 간 동기 중 일부는 서기관을 달 차례"라며 "과거에는 영향력이 큰 부처를 선호했다면 최근에는 인사 적체가 덜한 처·청을 원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처·청에서는 다른 부처 동기보다 빠르게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과도한 인사 적체에 일부에서는 신설 부처 이동을 희망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공약으로 내건 기후에너지부가 대표적이다. 관련 부처인 산업부와 환경부 등에서는 기후에너지부로 이동하길 원하는 젊은 공무원이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워라밸 중시 현상도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일례로 국토교통부 직원들이 지난해 말 환경부로 무더기 전출을 신청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국토부는 하천 기능 이관을 앞두고 지난해 11월까지 전출 신청을 받았다. 하천과 유관한 부서뿐 아니라 무관한 부서에서도 전출을 희망한 공무원이 수십 명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청소년·청년 직업 선호도 1위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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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1위를 차지해온 직업 선호도 또한 공무원은 대기업에 밀렸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1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13~34세 청년·청소년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은 대기업(21.6%)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다음 공기업(21.5%) 국가기관(공무원·21.0%) 자영업(13.5%) 전문직 기업(6.8%) 외국계 기업(4.7%) 등이 뒤를 이었다. 직전 조사인 2019년 국가기관이 22.8%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송광섭 기자 /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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