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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원들고 떠난 신격호의 도전정신…눈앞 돈보다 꿈 찾고싶어"

입력 2022/01/18 17:17
수정 2022/01/19 08:49
롯데 MZ세대 직원들 "1호 한상 신격호 회장 배우자" 열기

"롯데타워 대신 돈되는 아파트
이런 생각한 내가 부끄러워"

회고록 초도물량 2만3000부
두달 만에 완판…2천부 증쇄

롯데, 2주기맞아 '조용한 추모'
신동빈 회장 등 3인만 참석
◆ 신격호 롯데 창업주 2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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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8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진행된 신격호 명예회장 2주기 추도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롯데그룹]

"단돈 83원을 들고 일본으로 떠났던 창업주의 도전 정신이 인상적이었다. 현실에 안주해 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껌으로 시작해 현재의 롯데를 일궜다. 뭔가 대단한 아이템만 찾던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나남출판사)가 출간된 지 2개월여 만에 초도물량 2만3000부가 완판되면서 2000부 추가 증쇄에 들어간다. 신 명예회장 탄생 100주기인 지난해 11월 3일 출간된 이 책은 한국의 1호 한상(韓商)이자,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등과 함께 스타트업 1세대로 꼽히는 그의 일대기와 생전 베일에 가려 있던 인간적 면모를 알 수 있는 일화가 가득해 화제를 모았다.


한국 기업인 회고록으론 이례적으로 증쇄에 들어간 데 대해 방순영 나남출판사 이사는 "일반적으로 회고록은 본인 업적이나 치적을 자랑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게 마련인데, 이 회고록은 저자의 내면을 고백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롯데그룹 내에선 그룹의 미래로 불리는 MZ세대 직원들이 사내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고 자발적으로 후기를 남기면서 임원·간부급 선배 직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 책이 2030 직원들의 도전의식을 고취하면서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롯데가 초심으로 돌아가 창업 정신을 살려야 한다" "사내 벤처로 새 먹거리를 찾아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자산 규모 121조5000억원(2019년 말 기준)에 달하는 롯데그룹은 모태인 식품 부문을 비롯해 유통·화학·건설·관광·서비스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재계 5위 그룹이다.


신 명예회장의 창업 정신이 그룹 경영 DNA로 뿌리내리며 새로 진출한 사업마다 성공을 거듭했지만, 창사 70년을 넘어가면서 관료화와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각 사업 부문 수장으로 연이어 외부 인사를 수혈해 그룹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매일경제가 18일 만난 롯데 2030세대 직원들은 창업주 회고록을 읽으며 상당한 자극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지현 롯데물산 사원(28)은 "창업주의 시대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분명 다르지만 열정과 도전의식, 고객과 파트너사를 대하는 자세는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며 "주식, 코인, 부동산 투자 등 재테크만 좇지 말고 내가 이루고 싶은 꿈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 명예회장이 1987년 잠실에 땅을 매입한 뒤 2017년 준공할 때까지 롯데월드타워 건설을 둘러싼 수많은 난관을 극복한 과정도 젊은 직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이정훈 롯데건설 토목사업본부 대리(32)는 "롯데월드타워 디자인 안이 20여 년에 걸쳐 수정을 거듭해 왔다는 대목을 읽으며 목표 달성을 위한 창업주의 집념을 느낄 수 있었다"며 " '저곳에 아파트를 지었으면 고생하지 않고 수익도 많이 남길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전했다.

롯데그룹이 껌 사업에서 태동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 직원도 있었다. 이선경 롯데월드 경영전략팀 대리(32)는 "창업주는 우연히 건네받은 껌 하나에서 영감을 받아 제과업을 시작해 현재의 롯데를 일궜다"며 "새 업무 아이디어를 고민하면서 크고 대단한 것만 찾던 나에게 발상의 전환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2030 직원의 이 같은 후기는 신동빈 회장이 추진하는 혁신과도 맥을 같이한다. 실제 신 회장은 신 명예회장 2주기를 하루 앞둔 18일 오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1층에서 진행된 추도식에 참석한 뒤 "남다른 열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던 창업주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우리도 이어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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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고향인 울산시 울주군에 자리한 묘역 묘비에는 신 명예회장이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거기 가봤나?`가 새겨져 있다. [사진 제공 = 롯데그룹]

이날 열린 추도식은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신 회장과 송용덕·이동우 롯데지주 부회장만 참여해 창업주 흉상 앞에서 묵념하고 헌화하는 방식으로 간략하게 치러졌다. 임직원은 18~19일 자율적으로 헌화 등으로 추모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신 회장은 지난 15일 울산 울주군 선영을 찾아 참배했다. 이곳 신 명예회장 묘비에는 '거기 가봤나?'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신 명예회장이 생전 직원들에게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정주영 현대 회장의 '이봐, 해봤어?'와 맥을 같이하는 말이다. 신 회장은 참배할 때마다 창업주의 현장주의 정신을 되새기게 된다며 묘비명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고 한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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