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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지하철서 "1억" 중얼중얼…국내 10명도 안되는 이 직업

입력 2022/01/26 17:02
수정 2022/01/27 10:52
케이옥션 미술품 경매사 3인방
◆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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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옥션 강남사옥 전시장에서 경매사 손이천 이사, 곽종우 대리, 양승아 과장(왼쪽부터)이 활짝 웃고 있다. 양 과장이 들고 있는 게 낙찰을 알리는 경매봉이다. [한주형 기자]

한국을 통틀어 10명도 되지 않는 희귀한 직업이 있다.

수십억 원에 낙찰되는 김환기·이우환의 대작을 비롯해 간송미술관에서 출품한 국보·보물의 호가를 부르는 미술품 경매의 마에스트로, 경매사다.

국내 양대 옥션인 케이옥션의 경매사 3명을 한자리에서 만나 이 직업의 세계를 이모저모 물어봤다.

손이천 이사(45), 양승아 과장(37), 곽종우 대리(34)의 열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지난 10여 년의 미술시장이 환하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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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사는 '해머를 쥐는 사람'이다. 소더비나 크리스티에서 쓰는 나무망치와는 달리 케이옥션의 경매봉은 손에 숨길 수 있을 만큼 작고 손잡이가 없다. 손 이사는 "소리가 경쾌하게 나는 게 중요해 짧은 경매봉을 쓰는데 한국만 이런 특별한 이유는 없다.


미국에선 '쨍' 소리에 가깝다면 우린 '쾅' 소리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17년째 오동나무로 특수 제작한 경매판을 쓴다. 갈라진 틈이 보일 만큼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경매봉은 분실을 대비해 2개가 있고, 판은 하나뿐이다.

곽 대리는 "막내가 보관하는데 경매를 보통 마지막에 진행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고 했다. 수백 명이 운집한 경매장과 전화·서면으로 입찰하는 숱한 컬렉터(수집가)의 심중을 읽으며 경매를 진행하는 일에 지휘자처럼 화려한 손짓도 필수다. 양 과장은 "봉을 왼손으로 쥐는 이유는 오른손으로 손짓을 하기 위해서다. 손짓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마지막 응찰자의 지목이다. '당신이 최고가십니다'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실제 진행에서 가장 어려운 건 응찰자와 작품 호가를 틀리지 않는 것. 곽 대리는 "지하철에서도 혼자 200번, 261번, 1억, 1억200… 중얼중얼한다. 짝수 호가를 쓰는 건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다"면서 "평소 작품 공부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 중요한 작품과 가격을 머릿속에 인지하고 진행해야 호가를 크게 주고 경합을 시키는 등 경매의 흐름을 이끌 수 있다"고 했다.

손 이사는 전 직원의 협동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손 이사는 "좋은 경매는 협동이다. 영업판매직과 호흡이 중요하다. 눈빛만 봐도 응찰할지 포기할지 안다. 시간을 오래 끌면 눈치를 주기도 한다. 경매 당일에는 보이지 않는 온라인 방송과 현장 진행까지 많은 인력이 노력한다. 공연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있지만, 경매사는 없다. 이유는 직원들의 호흡이 필요해서다. 곽 대리는 "2~3시간의 경매를 앞두고 프리뷰 2주 동안 어떤 작품을 누가 보고 갔고 어떤 작품이 인기가 많은지 가격선도 예측해야지 경매를 진행할 수 있다. 낙찰가에 대한 계획도 다 있어야 매끄럽게 진행된다"고 말했다.

연간 10여 회 열리는 경매사는 전업이 아니다. 평소에 손 이사는 홍보 업무를 총괄하고, 양 과장은 작품 세일즈를 하고, 곽 대리는 아카이브팀에서 작품 정보 수집과 감정을 한다. 경매일이 되면 '전투복'을 입고, 실탄이 빗발치는 '전쟁터'로 뛰어든다.

공채가 없는 직업 경매사는 어떻게 될까. 특별한 준비 방법은 없다. 라이선스가 있는 프랑스 같은 나라도 있지만, 나머지 국가는 도제식 교육이 보편적이다. 손 이사는 입사 당시 김순응 대표가 수석경매사를 직접 했는데, '목소리가 우렁차다'는 이유로 발탁돼 고된 훈련을 거쳤다. 현재 케이옥션은 사내 공모를 한다. 양 과장은 사내 공모를 거쳐 두 달 만에 데뷔했는데 "첫 경매는 머릿속이 하얗고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다. 곽 대리는 "3차례 넘는 시험을 거쳐 뽑혔다. '슈퍼스타K'인 줄 알았다. 훈련을 1년 넘게 받아 작년 3월에 데뷔했다. 실제 응찰을 많이 하는 임원들이 실전처럼 모의경매를 하는데 당황하도록 변수를 많이 만든다"고 설명했다. 정식 데뷔 전에 거치는 자리도 있다. 경매사의 양옆을 지키는 보조경매사다. 곽 대리는 데뷔 전 1년 동안 이 과정을 거쳤다.

손 이사는 "마지막으로 패들 번호와 최고가 등을 메모해주는 보조경매사와 손발이 맞는 게 중요하다.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눈치왕'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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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사의 첫째 덕목은 흥분하지 않는 것. 손 이사는 "당황할 상황이 많이 생긴다.


본인이 상황에 같이 휩쓸려서 흥분하면 아수라장이 된다. 어떤 경우든 경매사는 침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더비의 근현대미술을 담당하는 올리버 바커(Oliver Barker)와 같은 세계적인 스타 경매사도 있다. 사내 책임자로 있는 동시에 중요한 경매를 책임지면서 회사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이들도 비슷한 책임감을 느낀다. 손 이사는 "경매사는 무슨 직업일까 하는 호기심이 시장에 관심을 갖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했고, 양 과장은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무원처럼 일한다. 그래서 환상을 깨트리려고 한다. 청바지에 안경을 쓰고 있으면 고객이 못 알아보시기도 한다"며 웃었다. 막내가 제일 솔직했다. "50억원짜리 김환기 작품을 팔아도 실상은 샐러리맨이다. 월급쟁이인데 영화에 나오는 멋진 라이프로 보인다. 늘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억에 남는 경매로 손 이사는 첫 보물 경매였던 2012년 9월 서화첩 '퇴우이선생진적첩'을 꼽았다. 열띤 경합 끝에 34억원에 낙찰됐고, 사전에도 준비를 힘들게 했다. 곽 대리는 데뷔 경매 때 첫 1억원을 돌파한 백석 시인의 '사슴' 초판본을 꼽았다. 그는 "27일 간송미술관의 국보 불상 경매가 내게 제일 큰 시험이다. 앞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작품을 잘 낙찰받는 방법으로 양 과장은 "이성을 지킬 수 있게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 이것도 마음에 들고 저것도 마음에 들어도, 최선호 작품과 가격 상한을 짜놓아야 흥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승부사들이 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2명이 현장에서 서로를 보면서 응찰할 때는 조마조마하다. 꼭 사겠다면서 패들을 내리지 않는 분도 있다. 꼭 남성분이다(웃음). 본인이 그런 성향의 사람이면 전화 응찰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곽 대리는 "미술시장도 주식처럼 호황과 불황이 있다. 호황일수록 마음이 급하다. 그러나 늘 말씀드리는 게 미술시장은 도망가지 않는다는 거다. 길게 지켜보면 내 인연인 작품을 만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술시장을 향한 관심이 유례없이 뜨겁다. 시장을 매일 지켜보는 경매사들이 좋은 작품을 고르는 방법을 알려줬다. 곽 대리는 "작품을 사기 전에 좋은 전시를 꼭 봐야 한다. 옷을 살 때도 루이비통, 샤넬을 많이 봐야 잘 고르는 것처럼 좋은 작품을 많이 봐야 본인만의 안목이 생긴다"고 말했다

손 이사는 "절대로 귀로 듣고 사면 안 된다. 내가 이 회사의 동업자로 같이 성장할 회사의 주식을 사듯이, 이 작품을 사는 건 이 작가의 성장과 투자를 함께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후원하고 평생을 반려하는 거다. 좋은 주식과 좋은 그림을 사는 방법은 그래서 똑같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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