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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그가 외쳤다 "내가 닭이로소이다"…이젠 누구나 안다 "닭고기 하면? 하림" [사람과 현장]

입력 2022/02/03 17:09
수정 2022/03/17 09:05
25년만에 다시 찾은 익산의 하림…김홍국을 만나다
◆ 매경 포커스 / 손현덕 주필의 사람과 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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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에 위치한 하림 공장 생산라인에서 김홍국 회장이 가스 질식 후 털을 뽑은 닭들이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이충우 기자]

25년 만에 다시 찾은 익산의 하림은 천지개벽이었다. 1997년 1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 정도였다. 그때는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눈길을 줄 곳이 없는 허허벌판이었는데 지금은 곡선형으로 미적 감각을 살린 공장 건물 여러 개가 위용을 자랑한다.

왼 팔꿈치로 목계(木鷄)를 괴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았던 핑크색 남방의 40세 청년은 정장 양복에 넥타이를 맨 말쑥한 노신사로 바뀌어 있었다. 25년 전 익산에선 제법 토실하게 보이는 닭들이 일렬 횡대로 도열해 모이를 먹고 있었다. 날갯짓에 깃털이 날려 주위는 지저분했고 나는 익숙하지 않은 닭똥 냄새에 티를 낼 수는 없어 자주 손가락을 코밑에 갖다 댔다. 25년 만에 찾은 익산엔 하림이란 왕국이 건설돼 있었다.


13만5000㎡에 달하는 최첨단 닭 가공 공장이 들어섰다. 거기서 차로 15분 거리에 거의 비슷한 규모의 식품공장 2곳이 가동 중이며 한복판에 물류센터 부지를 마련해 놓았다. 얼마 전 착공에 들어갔다. 25년 전 닭똥 냄새는 없었다.

자산 14조5000억원, 매출 9조3000억원의 하림그룹. 어렸을 적 외할머니에게 선물 받은 병아리를 기르는 재미에 푹 빠져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양계장 주인이 된 김홍국. 그는 이제 국내외를 합쳐 93개의 계열사에 1만63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남부러울 게 없는 재벌 총수로 변신했다. 25년 전 인터뷰 기사를 다시 찾아봤다. 그러다가 이게 과연 김홍국 회장이 25년 전 한 말이 맞는가라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소름이 돋으려고 한다. 고등학교(이리농고)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가 40의 나이에 이런 통찰력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크게 두 군데 대목에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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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삼장학(三場學). 농장, 공장, 시장의 3장이다. 양계장은 농축산업에 속한다. 닭을 기르는 농장이 양계장이다. 이른바 1차산업. 그러나 여기서 머물면 안 된다고 했다. 닭을 공장에서 가공하는 2차산업, 그리고 그걸 시장에 유통하는 3차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그래서 농업은 1차산업이 아닌 '1+2+3' 또는 '1×2×3'의 6차산업이라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이걸 말로만 하지 않고 몸소 실천했다. 그래서 익산에서 농장을 시작한 그는 거기서 공장을 만들었고, 그걸 확대해 시장을 일궜다.

대학은 포기했지만 사업 초기 그는 닭 장사에서만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4년 만에 좌절을 맛본다. 닭값 폭락으로 알거지가 됐다. 삼장학은 이런 시련을 거쳐 깨달은 그의 비즈니스 철학이었다. 닭만 잘 키울 줄 알았지, 양계사업을 잘 할 줄은 몰랐다. 사고의 대전환이 이뤄진다. "닭은 기계가 키우고 사람은 기계를 관리한다." 그는 스스로를 단련했고 더 강해졌다.

25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돼지고기 파동은 있어도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 파동은 없지 않습니까. 닭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1차산업이 2차산업, 그리고 3차산업으로 전환하기 때문입니다."

하림의 닭 공장은 시설 면에서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도계. 아주 오래전 닭 잡는 데 칼을 썼겠지만 지금은 전기 충격으로 닭을 실신시킨다. 잔인하긴 마찬가지이나 닭 입장에서도 그렇게 죽는 게 조금은 편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닭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대단하다. 닭을 잡아 털을 뽑고 내장을 발라내 보면 안다. 몸 안에 잔혈이 남아 있다. 그만큼 닭은 고통 속에 죽은 것이고 그 바람에 육질도 부드럽지 않다. 하림은 도계의 방법을 바꿨다. 이른바 가스실신.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는 것이다. 연탄가스 중독 같은 것이다. 체내에 잔혈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를 보면 닭의 고통을 알 수 있다. 잔혈이 없다.

이렇게 잡은 닭은 급속하게 냉동해야 한다. 그래야 신선육이 된다. 모든 조류동물이 그렇듯이 닭의 체온도 포유류인 인간보다 높다. 대략 41도 정도. 도계를 하면 체온은 20도 언저리로 떨어진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제거해 무균의 닭고기로 만들려면 2도까지 떨어뜨려야 한다. 급속히 온도를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대부분은 물냉각을 한다. 물속에 닭을 넣고 약 50분 동안 헹구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할 경우 닭은 물을 먹게 된다. 닭 무게의 7~8%의 수분을 함유하게 된다. 겉으로 보면 피부가 팽팽하고 뽀야나 결국은 물 먹인 소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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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의 공장은 이걸 공기냉각 방식으로 바꿨다. 공중에 매달고 찬 공기를 쐬면서 약 200분 돌린다. 이렇게 되면 닭은 물을 먹지 않게 된다. 그 대신 피부는 쭈글쭈글해진다. 모양은 사납지만 이게 훨씬 좋은 닭이다. 정호석 하림 기획조정실장은 "이런 설비에 무려 2600억원을 투자했다"며 "이렇게 하면 닭 한 마리당 원가가 100원 이상 더 든다"고 말한다. 물로 냉각하면 닭 한 마리당 원가는 15~20원, 공기냉각은 100~150원이다.

이런 삼장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게 소위 '부엌의 가출'이다. 이 부분이 두 번째 놀라움이다. 사실 인터뷰 때 콕 집어 이렇게 말한 건 아니었다. 개념만 말했다. 부엌의 가출이란 워딩은 인터뷰를 한 뒤 8년 지나 그가 매일경제신문에 '매경춘추'라는 칼럼을 쓰면서 언급했다. 그는 인터뷰 때 2차산업, 3차산업으로의 확장을 말하면서 종국에는 닭을 가공한 식품, 그리고 그 식품을 가정에까지 유통하는 게 하림의 종착지라고 했다.

닭 가공 공장에서 9㎞ 떨어진 식품공장을 둘러봤다. 이곳이 이름하여 '첫 번째 부엌(First Kitchen)'. 네이티브가 아닌 나는 간혹 영어로 하면 치킨과 키친이 헷갈릴 때가 있는데 이곳에 오니 더더욱 그렇다.


첫 번째 둘러본 곳이 치킨공장. 여기는 키친공장.

김 회장은 2005년 매일경제에 칼럼을 쓸 때 17년 뒤를 내다보고 이미 공장의 이름을 첫 번째 부엌이라고 정해놓았던 것 같다. 당시 그의 기고문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산업이 발전하고 개개인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부엌의 면적은 줄어든다. 이러한 상황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식품산업 미래가 보인다. 옛날 전통가옥에서 부엌은 주택면적 가운데 30% 이상을 차지했다. 부엌의 연장공간인 장독대와 광 등을 포함하면 전체 주거공간에 대한 부엌 면적비율은 50%를 상회했을 것이다. 오늘날 아파트 주방면적은 전체 면적 가운데 10%가 채 안 된다. 아파트 주방은 그나마 리빙키친 개념이어서 식당과 부엌을 겸한 공간이다. 과거 부엌은 식품 원자재를 저장하고 1차 가공한 뒤 조리(취사)하는 공간이었다. 현대의 주방은 저장과 가공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 그러니 면적이 줄어들 수밖에. 그럼 과거의 부엌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주택에서 가출(?)해 식품 가공 공장으로 갔다. 맷돌, 절구, 쌀독, 장독 등과 그것들을 다루던 주부 노동력과 손맛까지도 모두 공장으로 집결한다. 우리나라 부엌의 마지막 자존심인 밥과 김치도 이제 공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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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위 밀키트(Meal Kit·반조리식품) 시장이 폭풍 성장할 거라는 예상을 이미 오래전에 한 것이다. 김 회장은 "소비자들은 집밥보다는 가공식품을 원하고 그렇다고 식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부엌의 고유 임무는 방기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래서 식품 가공 공장이라는 새로운 주방 비즈니스에 착수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하림이 퍼스트 키친을 맡고 가정집 부엌이 세컨드 키친이 되는 세상을 꿈꿨다.

이 비즈니스가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6모어(more)'로 설명한다. 가공식품이 집에서 만드는 음식보다 좋은 6가지. 그는 이렇게 해야만 소비자를 잡을 수 있고 업(業)의 가치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6more'란 ①더 신선하게 ②더 맛있게 ③더 위생적이게 ④더 건강하게 ⑤더 경제적이게 ⑥더 편리하게이다.

김 회장은 "하림의 식품공장은 이 6가지 미션을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자신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신선도. 이 부분은 어떤 경우라도 양보가 없다. 직원들에게 거의 매일같이 주기도문 외우듯 입력시킨다. "자연에서 온 것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고 맛이 없으면 나갈 수 없다." 김 회장의 명언이 되다시피 했다. 그는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무엇이 됐든 원재료는 자연으로부터 얻는다. 그래서 만들어낸 식품. 간혹 맛이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면 안 팔면 그만이다. 김 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아주 단순하지 않으냐"며 씩 웃는다.

늦둥이 막내딸 지영이가 라면을 좋아했다. 그러나 라면을 먹으면 입술이 부어오르고 붉게 변하는 증상이 발생하는 특이체질이었다. 그래서 MSG(MonoSodium Glutamate·글루탐산소듐염)를 쓰지 않는 라면 제조에 도전했다. 스프를 천연재료로 만들어 보면 안 될까? 사골, 닭뼈 등을 고아서 육수를 만들고 그걸 농축시킨 스프를 개발했다. 다른 식품회사의 분말스프에 비해선 원가가 몇 배는 더 들었다. 먹어보니 맛이 있었다. 그래서 시중에 나온 제품이 오징어게임의 이정재가 '감히 라면 주제에~'라면서 광고하는 장인라면이다. 하림은 즉석밥도 만든다. 쌀 100%다. 통상 대부분의 즉석밥은 변질을 막기 위해 쌀 99%에 첨가제 1% 정도는 들어간다. 이런 부문에서도 김 회장은 타협이 없다.

25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닭"이라고 말했다. "닭에 관해서라면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까지 했다. 40의 나이에 천하제일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카리스마가 하늘을 찔렀다. 근로자들은 모두 군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사장의 말 한마디에 바짝 군기 든 표정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당시 우리 매일경제 취재진은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너무 권위적이고 건방져 보인다"며 "저런 기업이 얼마나 오래갈까"라는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고백하자면 그가 한 말이라 어쩔 수 없이 기사로 쓰면서도 속으로는 "그래 10년, 20년 후 한번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인터뷰 때 김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많이 안다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예견력이 중요하다. 앞일을 예측하고 사전에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 사장이 미래를 보는 눈이 있어야 직원들이 따라오고 신뢰가 두터워진다"고.

이 발언을 할 당시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은 김 회장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김 회장은 속으론 아마 이런 생각이었을 거다. "당신들 표정을 보니 내 말 잘 못 믿나 본데 10년, 20년 후에 한번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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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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