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20년전 이건희의 일갈 "5년·10년후 먹거리? 내일 일도 모르는데…결국 사람이다, 사람" [사람과 현장]

입력 2022/03/15 17:11
수정 2022/03/15 21:53
2002년 삼성 사장단 워크숍
"아무리 생각하고 또 고민해봐도
좋은 사람을 삼고초려로 모셔와
그 사람에 우리 조직을 맞춰야"

나가려는 인재 붙잡은 빌게이츠
"실패보다 실패의 경험이 더 중요"
한국계 에드워드 정 사직서 반려
MS오피스 초대박으로 이어져

기업도 국가도 결국 '사람 먼저'
경영학의 대가 짐 콜린스도
"버스에 일단 사람부터 태워라"
'무엇'을 보다 '누가'에 방점
◆ 매경 포커스 / 손현덕 주필의 사람과 현장 ◆

239288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2년 6월 5일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열린 `인재전략 사장단 워크숍`에서 핵심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매경DB]

20년 전 일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으로 계열사 사장들을 불렀다. 녹음이 짙게 우거진 6월 초였다. 창조관 304호실에 총 52명의 핵심인력이 모였다. ㄷ자(字) 형으로 배치된 앞줄 상석엔 모두 5명이 앉았다. 가운데는 이 회장, 왼쪽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오른쪽엔 이학수 비서실장이었다. 그 앞엔 4열 종대로 책상이 배치됐고 한 줄에 12명의 사장급 최고경영자(CEO)들이 옆을 보면서 자리를 했다.

오래전부터 이 회장이 내준 숙제가 있다. "5년, 10년 후 우리는 무엇을 먹고사느냐"였다. 사실 2002년은 삼성으로선 결실의 해였다.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하기 직전 해인 1992년에 비해 시가총액은 3조6000억원에서 75조원대로 20배나 증가했다. 세전이익은 무려 66배나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상장기업이 거둔 이익의 61%가 삼성에서 나왔다. 10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장이고 도약이었다.

그런데도 이 회장은 만족하지 않았다. 늘 위기를 말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디지털 시대엔 일류기업이라도 현실에 안주하다간 언제든 망할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도 삼성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을 '바로 이것'이랄 수 있는 사업은 없었다. 회의에 참석한 당시 에버랜드 허태학 사장은 "미래를 보장할 아이템을 찾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과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이날 모임에서 각 계열사 사장들은 미래 성장엔진에 대한 발표를 해야 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한마디 토도 안 달고 전 계열사의 발표를 다 듣고 난 이 회장이 마지막 강평을 했다.

강평은 짧았다. 황영기 당시 삼성증권 사장의 증언. "짧은 만큼 강렬했습니다. 이런 메시지였습니다. 내일 일도 모르는데 10년 후를 어찌 알겠는가. 사람이다. 사람. 아직까지도 생생하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239288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삼성그룹 사내 방송팀이 보도한 영상에 일부 대목이 남아있다. 옅은 파란색 재킷에 그보다 약간 진한 같은 파란색 계열의 와이셔츠 차림의 이 회장은 아주 천천히, 꾹꾹 눌러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리 고민해 봐도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좋은 사람 데려와야 한다. 모셔와야 하는 거지. 데려오는 게 아니라. 삼고초려해서라도 모셔와서 그 사람이 우리 회사에 맞추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사람한테 맞춰야 한다."

그러고는 사장들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내 지금까지 경험상으론 여러분들 그런 인재 대여섯 명 금방 데려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한 사람이라도 모셔 오면 큰일 하는 거다. 그럼 내가 박수를 쳐줄 것"이라고.

이날 모임의 명칭은 'S급 핵심인력 확보, 양성 관련 사장단 워크숍'이었다. 삼성은 이후 사장단 평가에 인재 확보와 관련한 평점을 크게 반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워크숍에 참여한 손욱 삼성종합기술원장은 "이병철 선대 회장부터 인재를 중시하는 삼성그룹의 문화가 자리 잡은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날 워크숍은 삼성의 인재경영에 분수령이 됐다"고 회고한다. 황영기 사장은 "앞으로의 경영은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대처하고 미래를 이끌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그건 아이템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핵심인재를 끌어들이는 게 답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설명한다.

김용관 인력개발원 부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 계열사 사장들이 '앞으로 이런 사업을 한번 해볼까 합니다. 미래에 먹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하면 이 회장은 '사람은 있고?'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지금부터 구해보겠습니다'고 대답하면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사람도 없이 사업은 무슨 사업'이냐고 말이죠."

아이템보단 사람이 먼저라는 개념은 세계적인 경영학자인 짐 콜린스가 이 회장의 용인 발언 1년 전인 2001년 출간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처음 소개했다. 그 유명한 '버스 태우기'다. 그는 "버스에 인재를 먼저 태운 다음 그들로 하여금 어디로 갈지를 생각하게 한 기업들이 위대한 기업이 됐다"고 말한다. 무엇을(what) 할 것인가 보다 누가(who)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그렇게 인재를 고르기로 유명한 경영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다. 그가 스카우트한 인재 중 한국계로 에드워드 정(한국명 정구영)이 있다. 14세 때 예일대에 입학해 화학공학을 전공한 수재인 그는 대학교 때 해킹을 하다 연방수사국(FBI) 수사를 받고 결국 퇴학조치를 당하는 등 파란만장한 청년 시절을 보내다가 특허 관련 비즈니스 창업을 한 인물. MS에서 그를 스카우트하려고 면접을 봤다.

몇 차례 면접을 진행하면서 그의 진가를 알아본 MS 인사담당자는 빌 게이츠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빌 게이츠가 직접 나섰다. 그는 에드워드 정을 집으로 초대했다. 저녁 식사를 같이하면서 그의 가치와 능력을 가늠해본 뒤 "나와 같이 일해보자"며 붙잡았다. 빌 게이츠는 에드워드 정을 일단 버스에 태운 것이다.

7년 전쯤 중국 선전 투자위원회 자문역을 맡아 중국을 들렀다가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워낙 시간이 없어 인천공항 도착 후 바로 식당에서 식사 겸 미팅을 했다. 일요일 저녁이었다. 당시 에드워드 정은 빌 게이츠와의 일화를 들려줬다. "MS에 들어가긴 했는데 일을 주지 않는 겁니다. 일 안 할 거면 내가 여기 있을 필요는 없다며 따졌죠. 빌이 뭐 그렇게 조바심을 내느냐, 정 그러면 제안서를 한번 써와보라고 하더군요. 한 달 동안 연구해 제출했습니다. 빌이 그 아이디어를 보더니 전격적으로 채택을 하고 팀원과 예산을 배정해줬습니다. 4조~5조원의 예산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아이디어가 실패로 귀결됐습니다. 내가 더 이상 이곳에서 근무할 염치가 없어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실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의 교훈이니 그 교훈으로 좀 더 일해보라고 저를 붙잡았습니다."

그 후 에드워드 정은 결국 MS오피스 시리즈를 만들어낸다. 그동안 MS에 손실을 입힌 것에 비해 족히 10배의 이익은 돌려줬다. 2004년 그가 MS를 나와 특허와 발명에 관한 오픈이노베이션 회사를 창업하기까지 빌 게이츠는 늘 에드워드 정을 챙겼다. 그가 인텔렉추얼 벤처를 창업한다고 했을 때도 돈을 대겠다고 나섰다. 에드워드 정은 나중에 족쇄가 될 것 같아 정중히 거절했지만 결국에는 일부 지분투자를 했다.

239288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삼성그룹의 인재사관학교로 불리는 인력개발원. 1982년 이병철 선대 회장이 지은 호암관과 고 이건희 회장이 1991년 세운 창조관으로 구성돼 있다. 호암관은 차세대 경영자의 리더십을 키우는 곳, 창조관은 삼성의 역사와 철학을 교육하는 곳이다. [이승환 기자]

빌 게이츠의 이런 인재관을 넷플릭스의 설립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본인의 저서 '규칙 없음(No Rules Rules)'에서 언급한다. 베스트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와 평범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의 격차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빌 게이츠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빌 게이츠를 만난 헤이스팅스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전까지는 몰랐는데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초일류와 평범한 프로그래머의 차이가 10배 이상 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을 채용할 때 S급 인재 1명을 할지, 평범한 사람 10명 이상을 할지를 모르겠다"고. 이 말을 들은 빌 게이츠는 빙긋이 웃으며 "10배가 아니라 100배는 될걸"이라는 답을 돌려줬다. 헤이스팅스는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록스타의 원칙(Rockstar Principle)'이라고 책에다가 썼다. 이런 록스타를 뽑아보자는 게 이 회장의 2002년 발언의 골자. 삼성그룹은 그전에도 꽤나 많은 거물급 핵심인재를 모시기는 했다. 미국 IBM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진대제 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은 IBM의 회유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1985년 고국으로 돌아와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이병철 선대 회장과 이 회장이 진 사장을 직접 면접했고 이 회장은 주변에 진 사장을 '600만불의 사나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삼성전자와는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이긴 하나 황창규 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도 그런 케이스다. 1988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황 사장은 당시 IBM, TI, 스탠퍼드대 교수직 제안까지 받았으나 삼성의 끈질긴 설득이 주효했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도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85년 삼성에 입사한다. 1983년 이병철 회장의 '도쿄선언'으로 반도체 사업을 본격화한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영입한 S급 인재일 것이다. 권 회장은 1990년대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을 주도하는 등 '초격차 전략'을 바탕으로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대학 졸업 후 삼성에 입사한 삼성맨이나 근무한 지 20년 정도 지나 VTR 사업 부진의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난다. 그 뒤 네덜란드 필립스와 현대전자 등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나 이 회장이 그를 다시 찾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삼성이 영입한 S급 인재의 이탈은 아쉬운 대목이다.

2020년 정기 임원인사에는 30대 외국인 임원 두 명이 이름을 올렸는데 그중 한 명이 증강현실의 '천재'로 유명한 프라나브 미스트리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 싱크탱크팀장(전무급)이다. MIT 미디어랩에 있던 2009년 TED 강연에서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여 공간을 제어하는 '식스 센스'를 선보여 이목을 끌었던 인물. 2012년에 삼성에 들어와 갤럭시 기어의 새 모델을 제안하는 등 공로를 인정받았으나 작년에 창업을 한다고 삼성을 떠났다.

AI(인공지능) 음성비서 '빅스비' 개발을 주도했던 래리 헥 전무도 작년 5월 삼성을 나갔다. 근무기간이 채 4년이 안 된다. 2009년 MS에 입사해 음성인식 개인비서 '코타나' 개발에 관여했고 2014년엔 구글로 이직해 '어시스턴트'를 만든 자연어(음성·문자 언어) 처리 분야의 권위자인데 모교인 미국 조지아대 공대 교수로 돌아가게 됐다.

삼성에선 외부인에겐 공개를 안 하는 인력개발원. 아이로니컬한 일이지만 이곳에 원장은 없다. 부원장이 최고위직이다. 원장이 있었던 시절이 딱 세 번 있었는데 1982년 2월 개원 이후 딱 3명. 각각 1년 정도. 그룹 내에 인력개발원장은 사실상 회장이라는 내부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인재는 오너가 직접 챙긴다는 인식이 공유돼 있다. 2002년 워크숍이 열렸던 304호는 지금 인재홀로 명칭이 바뀌었다. 회의실 내부도 개조했다. 연단을 두고 오르막으로 자리를 배치하는 극장식으로 꾸몄다. 이 홀 입구에 미국 출신의 팝아티스트인 로버트 인디애나의 <The One>이라는 조형물이 놓여있다. 삼성 관계자는 "회사 이념에 부합한 작품을 골랐다"고 말한다. <1>은 모든 사람이 각자 고유한 역량과 잠재력을 가진 우수한 인재를 상징한다는 설명이 달려있다.

우리가 어떤 미래를 가질 것인가? 그건 기업이나 국가나 마찬가지. 결국은 사람이 만든다.

239288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손현덕 주필]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