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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iz] 수소혁명, 눈앞으로 성큼…'산유국' 아닌 '산수국'의 시대

입력 2022/04/21 04:03
The Hydrogen Revolution / 마르코 알베라

수소에너지 단가에 미래 달려
10년만에 6분의1로 가격하락
美·EU 등 각국 정부·기업 나서
5년내 1㎏당 2~3弗로 떨어질듯

소규모 기술혁신 기업들 모여
수소혁명 이끌 인재 늘어나면
수소경제 몇년 앞당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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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수소에너지가 미래'라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수소혁명'이란 단어조차 시큰둥하게 들릴 때가 있었다. 수소에너지란 마치 잘 꾸며진 모델하우스처럼 실제 들어가 살 수는 없지만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 같기도 했다. 한국에서 수소차가 상용화되고 수소충전소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크게 실감하긴 어려웠기 때문일까. 현재 국내 수소차 등록대수는 2만대 남짓. 전체 자동차 등록 규모가 2500만대를 넘어선 것을 감안하면 0.08%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언제쯤이면 수소에너지가 상용화되는 것인가. 아니 수소를 차량용 외에 가정용이나 공업용 에너지로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하는 것인가.

의심 가득한 질문에 확신을 갖고 대답하는 이가 마르코 알베라다.


유럽 최대 가스 인프라 기업 SNAM의 최고경영자(CEO)인 알베라는 에너지 업계의 이단아다. 보통 에너지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CEO들은 원유·가스를 탐사·시추·생산하는 업스트림계열과 저장·운송·보관하는 미드스트림계열, 가공·판매하는 다운스트림계열 등 3종류로 나뉜다. 알베라는 셋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골드만삭스에서 인터넷·기술 관련 스타트업 사모투자, 인수·합병(M&A) 등 투자은행 업무를 하다가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회사인 에넬(Enel), 이탈리아 최대 원유·가스업체인 에니(Eni)를 거쳐 2016년부터는 가스 인프라회사 SNAM의 CEO가 된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업스트림, 다운스트림을 모두 거쳐 미드스트림에 정착한 것인데, SNAM에서 그가 미래 먹거리로 투자를 시작한 게 수소에너지다. 알베라 CEO의 수소에너지 투자 철학을 담은 책이 'The Hydrogen Revoluti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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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수소의 미래가치에 대해 비관주의자에 가까웠다.


이탈리아 국적의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 회사 에넬에서 태양력·수력 등 각종 재생에너지를 다뤄보고 독일 아우디와 전기차 합작 사업까지 뛰어들었지만, 수소의 생산 단가가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는 것.

저자는 2010년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을 만났을 때 경험을 이야기한다. 도요타 최초의 수소차 미라이, 차값이 얼마나 하냐고 묻자 도요다 사장은 정부보조금 등을 합치면 대당 2만달러 정도라고 답한다. 값싼 전기차가 보급되기도 전이라 알베라 CEO는 그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이어 도요다 사장이 하는 말이 "그런데 연료값은 20만달러 정도 한다오." 차량 한 대를 주유하는 데 그 정도가 든다는 게 아니라 수소에너지의 생산 단가가 그렇게나 비싸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수소의 생산 단가가 뚝 떨어졌다. 기술 발전과 함께 찾아온 '그린수소' 덕분이다. 수소 경제 초기에 화석연료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분리해 생산하는 '브라운수소'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문제였고, 화석연료를 활용하지만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을 활용한 저탄소 수소 '블루수소'는 가격이 문제였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을 통해 물을 산소와 수소로 전기분해해 만드는 '그린수소'로 옮겨오면서 단가도 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다는 것.

저자는 그린수소의 ㎏당 생산 단가가 5달러에서 2달러까지 떨어질 경우 수소혁명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2010년만 해도 ㎏당 수소 단가는 24달러(메가와트시(MWh)당 600달러)였는데, 이 책이 출간된 2021년 현재 ㎏당 수소 단가는 4~5.5달러 선(MWh당 100~140달러). 5년 후에는 2~3달러(MWh당 45~70달러)로 떨어지고 10년 후엔 1.5~2달러(MWh당 35~55)로 내려오는데, 양산이 가능하다면 1달러(MWh당 22~28달러) 밑으로도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된다. 이런 가격 하락 곡선은 태양광 및 풍력발전 단가 하락을 기반으로 계산된 것이다. 10년 전에 비해 태양광패널 가격이 뚝 떨어지면서 이미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생산된 태양광은 MWh당 10.40달러에 거래됐다. 석탄 및 천연가스로 생산된 전기 가격의 전 세계 평균이 40달러 선임을 감안하면 4분의 1 가격으로 떨어진 셈이다.

이렇게 싼 에너지에 대한 수요는 무궁무진하고, 공급마저 다양해지고 있다. 노르웨이의 수소에너지 생산기업 넬(Nel)은 이미 2025년까지 수소 생산 단가를 ㎏당 1.5달러로 낮추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미국 에너지국은 지난해 '에너지 어스샷'이라는 인프라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2030년까지 수소 생산 단가를 ㎏당 1달러로 끌어내리겠다고 밝혔다. 호주는 일본에 수소를 수출하겠다고 했고, 유럽은 북아프리카 태양열과 북해 풍력 에너지를 수소 형태로 수입하려고 한다. 저자가 CEO로 있는 이탈리아 회사 SNAM도 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와 손잡고 수소 가격을 2026년까지 ㎏당 2달러 선으로 낮추는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수요와 공급, 여기에 자본까지 더해졌으니 '수소혁명'이 곧 눈앞에 온 것일까. 저자는 그러나 수소에너지 업계에도'실리콘밸리식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산업화된 대량생산을 하기에 앞서 소규모 기술혁신을 하는 기업들이 필요하고, 또 이런 혁신기업에 뛰어들 수소 인재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술과 인재가 더해진다면 수소혁신을 몇 년은 앞당길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땅만 파면 기름이 나온다는 '산유국'이 세계 경제를 지배하던 시대를 떠나 어디서든 값싼 수소를 생산하는 '산수국'의 시대가 머지않았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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