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Industry Review] '규제와 보복'은 거두고…기업을 국정운영 동반자로

입력 2022/04/28 04:01
韓 기업 세계서 뛰어노는데
뒤처진 정치권, 규제 권한으로
기업에 '탐욕' 이미지 덧씌워

美 기업인, 정치색 드러내도
보복당할 거란 두려움 없어
한국도 정치권-기업 균형 필요
일자리와 산업 분야뿐 아니라
각종 현안서 기업 역할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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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제 세계 일류가 되었지만, 한국 정치는 등외(等外)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기업은 우주·에너지·의학 등 모든 분야에서 인류(人類)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경주하는데, 정치는 자기들끼리 '오징어 게임'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가치 창출'을 업(業)으로 한다면, 한국 정치는 '갈등생산업'에 속한다. 정부·국회·정당·지자체 등 정치권을 다 합쳐도 기업이 가진 세계 변화를 읽는 전문성과 정보력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따라갈 수 없다. 기업은 세계적 관점에서 경쟁하는데, 정치권은 당파적 관점에 매몰되어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대한민국 국회 연설 때 보여준 의원들의 무관심한 태도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는 뒤처진 정치권이 앞서가는 기업을 이끄는 '규제 권한'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규제 권한이란, 국가와 사회의 효율적 작동에 불가피하게 필요한 하나의 역할에 불과하다. 하지만 남을 규제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일종의 우월감을 갖게 한다. 즉 '내가 너보다 우월하므로 너를 규제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생기게 된다. 이에 근거하여 정치권이 기업과 기업인을 막 대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기업인에 대한 고압적 태도, 막무가내식 규제, 나랏일 헌신 압박, 은밀한 지원 요청, '기업=탐욕'의 나쁜 이미지 덧칠,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에 대한 각종 보복 등 한국 정치권의 기업에 대한 흑역사에는 끝이 없다.

한때 정치권이 기업을 현금인출기인 ATM 기계처럼 여겼던 적이 있다. 때마다 '정치헌금'을 뽑아갔다. 대통령이 직접 헌금을 걷기도 했다. 헌금을 내지 않는 기업은 보복을 당하기 일쑤였다. 버티다가 파산한 기업도 있었다. 참여정부 이후 이 관행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업을 범죄집단처럼 여기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 돈만 좇는 사악한 존재로 기업을 낙인찍었다. 여기에도 정치권의 공로가 크다. 불법 로비, 총수 갑질, 편법 상속 등 일부 자극적인 사례를 내세워 기업 이미지에 온통 검은색을 칠했다.


기업 사냥 정치인들은 "기업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못된 기업인을 단죄하는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경영은 곧 사람이라는 '경인(經人)일치'의 원리로 볼 때 기업인에게 검은색을 입히면 기업도 검은색으로 물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정치가 기업에 색칠함으로써 국민도 기업을 색안경을 끼고 보도록 오도했다.

정치권은 기업과의 균형 잡힌 관계를 회복할 때가 되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탈, 그리고 코로나19 극복 사례에서 보듯이 기업은 국가의 중요한 자산이며, 위기 때 국가와 국민이 의지할 수 있는 출구이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대놓고 "아주 오래된 리더십"이라며 "장로정치(gerontocracy)"의 폐해를 들어 공격해도 머스크나 테슬라가 그 때문에 세무조사나 신상 털기 등의 보복을 당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미국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는 노골적으로 민주당을 편들고 기부금도 민주당에만 냈지만, 그 때문에 공화당 정권에서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다.

하버드 법대 연구(2019)에 따르면, 미국 S&P 1500대 기업 CEO 중에서 58%가 공화당에 기부금을 내고 18%는 민주당원이지만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기업이나 기업인이 불이익이나 보복을 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와 기업의 건설적 균형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제는 우리 정치권도 기업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식하여 다양한 국가적 현안 해결을 위해서 긴밀히 협업할 때가 되었다. 단순히 일자리나 미래 먹거리 문제뿐 아니라 교육, 국방, 인구, 인력, 복지, 빈부격차, 주거, 환경, 자원 등의 문제 해결에 기업이 동참하면 해법이 다양해지고 가용 자원도 풍부해질 것이다. 기업인들은 생각이 유연하여 아이디어가 많고, 곳곳에 풀뿌리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며, 특히 실행력이 뛰어나 정치권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정치권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각각이 국가적 과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한국 기업을 이익만을 좇는 탐욕스러운 존재로 봐서는 안 된다. 기업이 농업·축산업·상거래를 대신하여 사회의 부(富) 창출을 책임지게 된 것은 약 5000년 인류 역사 중 400여 년이다. 한국에서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종사자였던 농경시대를 벗어나 기업 시대가 열린 것은 불과 60~70여 년에 불과하다. 이 짧은 기간에 우리 기업들은 세계 일류로 도약했다.

초기에 정경유착·환경오염·노동착취, 부정부패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문제들을 상당 부분 극복하고 있다. 반도체, 전기·수소차, 배터리, 메타버스 등 떠오르는 산업 어디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경영방식도 세계적 기업들과 비교하여 부족함이 없을 만큼 약진했다. 한국 기업은 창의적 아이디어 생산과 흡수가 빠르고, 혁신이 과감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반성 후 새 출발을 잘한다. 사회와 인류의 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경영철학도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정경협업의 시대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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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복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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