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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Outlook] 아프리카서 노숙하며 현지인 마음 열어…'소통 잘한다' 착각 깨는 게 소통 첫걸음

이축복 기자
입력 2022/04/28 04:03
'32년 삼성맨' 윤성혁 삼성전자 고문
'위기인가? 삼성하라!' 책 펴내


미국 16년·아프리카 4년
해외시장 개척한 영업맨

매순간 국가대표 자세로
美中日제품과 치열 경쟁

수많은 경쟁업체 제치고
IBM에 LCD 모니터 공급
유통 베스트바이와 제휴
삼성TV 미국 1위 이끌어

법인장으로 남아공 인연
'삼성하라!' 영어판 인세
넬슨 만델라 재단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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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우 기자]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전 세계 골프팬들에게 '죽기 전에 꼭 한번 봐야 하는 대회'로 꼽힌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가 주관하는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이자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그린 재킷'은 최고의 영예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런 '꿈의 대회'에 초청을 받고도 참가를 거절한 월급쟁이 직장인이 있다. 대회 공식 스폰서이자 업무 파트너인 미국 통신기업 AT&T의 초대였는데도 말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윤성혁 삼성전자 고문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위치에서 미국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인 애플과 경쟁한다는 마음이 본인을 마스터스 대회 갤러리석이 아닌 업무 회의실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는 "갤럭시 S3 출시를 앞뒀는데 부족한 부분이 계속 보이다 보니 통신사업자 미팅을 이어가게 됐다"며 "마스터스 대회를 보지 못한 것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MK비즈니스스토리는 최근 삼성전자에서 32년간 근무했던 경험을 담은 책 '위기인가? 삼성하라!'를 출간한 윤성혁 고문을 만났다. 그는 2시간가량 진행한 인터뷰 내내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이는 그가 마스터스 대회 직관을 포기하더라도 업무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내겠다는 마음가짐의 발화로 보였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시간이 마치 월드컵 국가대표로 뛰는 선수생활 같았다고 회고했다. 국가 대항전이라고 생각하니 업무 의욕도 샘솟았다. 그는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미국·중국·일본 일류 브랜드를 이길 수 있겠다는 긴장감이 생기니 일하는 게 재밌었다"고 떠올렸다.

윤 고문은 업무를 진정으로 대하는 마음이 일을 피하지 않게 만드는 근성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기간 수출 대금을 내지 않는 러시아 소재 업체를 찾아가 타협안을 제시해 성사시킨 일화다. 당시에는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 다가와 일주일 내 협상을 끝내거나 협상을 포기하고 귀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당시 '진정성 있는 호소'에 기대며 원하는 결과를 모두 손에 거머쥐었다.


그는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밀린 수출 대금에 대한 대책 없이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며 "출산이 임박했음을 터놓고 호소하자 바로 상대방의 서명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윤 고문은 16년간 세 차례 미국 주재원을 맡고 4년간 아프리카에 파견을 나가 해외 시장을 개척한 영업맨이다. 그에게 영어는 필요한 의사소통 수단이었지만 완벽하게 정복한 도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업무에 진정성을 갖고 임하는 그에게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영어를 쓰는 미국인들조차도 스코틀랜드 억양에 언어장벽을 느낀다"며 "일단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IBM과 위탁생산(OEM) 비즈니스 협력을 이끌며 삼성 LCD(액정표시장치) 모니터를 제1공급자로 만들어냈다. 수많은 위탁생산자를 제치고 IBM으로부터 믿을 만한 '영업맨'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북미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와 파트너십을 구축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도 했다. 실제 판매 데이터를 기초로 향후 판매·물량 운영 계획을 함께 짤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는 "이런 파트너십이 2006년 삼성을 미국 TV 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올려놓은 비결"이라고 말했다. 윤 고문은 삼성 아프리카 총괄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법인장을 겸임하면서 사회 문제 해결에도 힘썼다.


남아공은 흑인·여성에게 공평한 고용의 기회를 주는지, 흑인 기업에 얼마나 투자를 하는지에 따라 기업에 점수와 등급을 매긴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일수록 동료·부하 직원에게도 본인과 동일한 수준의 업무 의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마스터스 대회 참관까지 포기하고 일에 인생을 건 윤 고문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그는 "회사 내 모든 사람이 나 같다면 그 회사는 잘 안 굴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대방에게 윽박지르지 않고 전체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업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격의 없이 다가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유형의 리더였다. 아프리카 현지 제품 공개 행사에서 힙합가수 '캐스퍼 니오베스트'와 함께 무대에서 춤을 추는가 하면, 만델라 정신을 배우기 위해 직접 노숙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열린 마음가짐에 반응한 현지인들은 그에게 먼저 다가와 행사를 제안하는가 하면 남아공 럭비 선수들이 그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기성세대와 MZ세대 간 소통 문제와 관련해서는 인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인정받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그는 "성장 배경이 다른 상대방과 소통하는 것은 원래 어려운 것"이라며 "소통의 첫걸음은 본인이 소통을 잘하고 있다는 착각을 깨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프리카 현지 법인에서 타운홀미팅 도중 사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은 일화를 소개했다. 타운홀미팅은 사내 경영진과 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경영 계획·애로사항을 공유하는 자리다. 그는 타운홀미팅에 참석하면 특정 직원이 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을 제지하거나 무시하기보다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시간이 흐르자 불평을 늘어놓던 직원이 어느 날 타운홀미팅에서 손을 들고 "CEO를 위해 박수를 보내주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책 '위기인가? 삼성하라'는 올 8월께 영어로 번역해 해외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인세는 모두 남아공 넬슨만델라재단에 기부한다.

[이축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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