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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in Biz] '위드 플라스틱 시대' 인정해야 정책이 보인다

입력 2022/04/28 04:03
'악의 축 낙인' 플라스틱 없이는
반도체·자동차·디지털도 없어

카페 등 일회용컵 사용 금지가
정부 정책의 전부인지 의구심

생산·배출·재활용 단계로 나눠
과학적인 관리 해법 도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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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나무의 지방'이란 뜻인 단어 '수지'에는 조물주가 만든 천연수지와 인간이 만든 합성수지가 있다. 1950년대 미국에서 합성수지가 자동차 생산에 처음 투입되면서 '플라스틱'이란 명칭으로 사용됐고, 일반인들에게는 이 단어가 더 친숙하다.

1907년, 리오 베이클랜드에 의해 개발된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인 페놀 수지는 1914년 총의 부속품과 군수 물품 등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쟁 후에는 목재로 된 라디오와 전화기를 대체했고 1920년대에는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과 웨스팅하우스가 일으킨 '부엌 혁명'으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반영구 가전제품(토스터, 커피포트, 전기냉장고, 식기세척기, 다리미 등)이 우리의 일상생활로 들어왔다.


1933년, 영국 ICI사에 의해 상업화된 폴리에틸렌(PE) 수지는 2차 세계대전(1939~1945년) 중에는 레이더용 전자회로의 절연재와 같은 전략 물자로 활약했다. 전후에는 폭락한 유가와 대규모 생산으로 가격이 하락한 PE를 활용해 스웨덴의 발명가인 스텐 구스타프 툴린이 1959년 처음으로 '비닐봉지(Plastic Bag)'를 고안했다.

이전까지 잘 찢어지는 종이나 무거운 천 가방을 사용하던 것에 비해 비닐봉지는 포장의 역사에 있어서 '혁명'이었다. 당시에는 위생적이고, 종이봉투와 같이 나무를 쓰지 않아 친환경적인 제품으로 인식됐고 생산비용도 매당 1센트 정도로 매우 싼 가격이었다.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PE는 천연소재를 빠르게 대체했고 이때 축적된 기술을 기반으로 제품별 시장이 점차 커졌으며 상업적 가치가 뛰어난 제품들을 중심으로 대부분 양산체제를 갖추게 됐다. 현대에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PE는 당시에는 반경질 병 재료로도 인기가 좋았지만, 특히 포장용 필름으로 각광받게 되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비닐의 시대'와 '일회용품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195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 맥도널드의 첫 정식 프랜차이즈 매장이 문을 열면서 시작된 패스트푸드와 테이크아웃 문화 역시 플라스틱 소재 기반의 일회용품 전성기를 더 강력하게 이끌었다. 또한 즉석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 산업의 발전도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의 확대에 일조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바쁜 세상'이라는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반영된 결과다. 가볍고 투명하기도 하며 값싼 포장에는 플라스틱이 재료로서 주역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이 애호했던 커피는 국내에서 1999년 스타벅스의 한국 상륙을 거치며 오늘날 한국 성인들이 1인당 1년에 353잔의 커피를 마시는 데 이르렀다. 아마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카페에서 그리고 테이크아웃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할 텐데 이 또한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아닌가?

위드 코로나 시대를 전 세계가 인정하는 요즘 코로나19 백신은 폴리프로필렌(PP)으로 만든 일회용 플라스틱 주사기를 통해 모든 인류가 맞는다. 전 국민이 PP 부직포 필터가 들어간 일회용 마스크를 사용하고, 고급 식당에서도 일부러 페트병에 든 물을 마시며, 비대면의 여파로 플라스틱 배달용기를 하루가 멀다하고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 거리 두기에 필요한 투명 가림막, 접촉을 막기 위한 비닐장갑도 역시 플라스틱이다. 한 번만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사용이 증가하는 것이 유례없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4월 1일부터 전국의 식품접객업 매장에서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다시 시작됐다. 코로나로 인해 완화했던 일회용품 규제를 2년 만에 부활시킨 것인데 쉽게 말해서 전국의 카페 등 식음료 판매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 접시, 용기의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것으로 종이컵은 허용하고 위반 과태료는 업주가 부담하는 것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지는 의문이 든다. 플라스틱 폐기물이 제대로 처리·관리되지 못해 지구 생태계에 위협이 되는 것은 인정하지만 카페에서의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금지 규제와 같은 소비자의 플라스틱 사용 감축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의 전부인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뾰족하지 않다면 우회로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

2020년 12월부터 기존 플라스틱 재활용에 더해 투명 PET를 분리배출하는 것에는 지지를 표한다. 우리나라는 표면적으로는 분리수거 선진국이지만 이면에서는 재활용 PET의 원료를 수입하는 수입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분리수거 이후의 과정에 있어서도 재활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가 동반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코에 빨대가 박혀서 괴로워하던 바다거북이의 영상 이후로 플라스틱은 그야말로 환경을 파괴하는 악의 축으로 낙인찍힌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우리는 플라스틱 없는 세상을 살 수는 없게 됐다. 플라스틱 없이는 자동차도, 반도체도, IT도, 디지털도 없다. 플라스틱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보다는 '위드 플라스틱'의 시대를 인정하고 정부가 플라스틱 문제를 생산단계, 배출단계 및 재활용단계로 나눠 효율적인 과학적 정책을 내놓아서 범세계적 우려인 플라스틱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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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 / 라병호 '배진영 교수' 유튜브 채널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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