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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in Biz] 아무도 못 막은 '엉터리 제품'의 탄생…가습기 살균제가 들춰낸 과학의 허점

입력 2022/05/12 04:01
안전한 살균제 만들겠다는
무모함에서 비롯된 화학 사고
기술표준원이 세정제로 인정
산업부는 '창의적 제품' 찬사
환경부 피해사실 확인 과정도
과학적 인과성 매달린게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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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또 숨을 거뒀다. 지난 11년 동안 두 차례의 폐 이식까지 받으며 안간힘을 쓰면서 버텼던 배구 선수 출신의 피해자였다. 피해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 중 1774번째 사망자가 돼버렸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세균을 죽이는 살균제를 어린아이에게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젊은 개발자의 무모함 때문에 발생한 참혹한 화학 사고였다. 18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소비자 894만명 중 95만명이 피해를 입었고, 그중 2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6·25전쟁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끔찍한 재난이었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를 세척해주는 세척력도 없고, 물때를 제거해주는 살균력도 없는 엉터리 제품이었다.


그런데 제조사가 살균·세정제에 대해 깨끗하게 헹궈내는 상식적인 사용법 대신 가습기를 작동시키는 살인적인 사용법을 요구했다. 밀폐된 실내에 분무된 소량의 살균 성분이 호흡기로 흡입돼 만성 중독 증상을 일으키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제조사는 엉터리 제품과 살인적인 사용법에 대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엉터리 제품의 개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기술표준원이 1994년 화학적으로 아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엉터리 제품을 '세정제'로 인증해줬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세계 최초의 창의적 제품'이라는 찬사와 함께 KC마크까지 달아줬다. 소비자가 엉터리 제품과 살인적인 사용법을 신뢰하도록 만든 도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참사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도 실망스러웠다. 지난 11년 동안 정부는 공정한 심판이나 중재자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자신들의 책임은 부정하고, 제조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에만 급급했다. 행정 편의적인 피해등급 판정도 설득력이 없었다.

제조사의 '살인적 사용법'도 규제하지 못했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살균력을 가진 화학 성분을 밀폐된 실내에 지속적으로 분무시키도록 요구하는 사용법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초음파 가습기에는 수돗물도 사용하지 말도록 권고하고 있다.


수돗물에 남아 있는 광물질과 염소 소독제 성분의 흡입이 호흡기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해결에 대해 업무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고, 전문성도 부족하고, 정치력도 갖추지 못한 환경부 입장이 난처한 것은 사실이다. 환경부가 전문성·윤리성이 모두 의심스러운 '전문가'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작 가습기 살균제의 개발·성공에 도움을 주었던 산업부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버렸다.

환경부가 피해 사실에 대한 '과학적 인과성'에 매달렸던 것은 패착이었다. 질병관리청이 백신 부작용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에게 내밀었던 것과 똑같은 과학적 인과성이다. 밀폐된 실내에 낮은 농도로 분무시켜놓은 살균 성분에 의한 만성 독성을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 결국 동물실험에서 독성을 확인하지 못한 CMIT·MIT에 면죄부를 줘버리고 말았다.

전문가들도 피해자 구제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사람에게 나타난 피해 사실을 동물실험을 통한 독성학 실험으로 확인하겠다는 시도는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억지였다. 그런 논리라면 의사의 환자에 대한 '진단'은 의미가 없어지고, 병원은 동물실험으로 대체한 진단에 따라 질병을 치료하는 곳으로 전락해버린다. 사람은 쥐가 아니라는 명백한 진실을 무시한 어처구니없는 억지였다.


자칫하면 독성학 전문가들이 정부 용역에 눈이 멀어버렸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198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석면 파동에서는 동물실험을 요구했던 전문가가 없었다.

환경부가 무능한 관료들이 궁할 때마다 들고나오는 '전수조사'를 제시한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었다. 살생물질(biocide)의 독성과 사용 실태를 직접 확인하고 관리를 일원화하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용량(用量)이 독을 만든다'는 독성학의 아버지 파라셀수스의 교훈도 무시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었다. 독(毒)과 약(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독도 잘 쓰면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당연히 살생물질 소동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피해자들을 서로 분열시켜 극심한 갈등을 부추긴 것은 환경부의 꼼수였다. 지난 5년 동안 피해자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제는 피해자 단체가 무려 30여 개나 된다. 똘똘 뭉쳐 힘을 합쳐도 거대 공룡과 같은 기업을 이겨내기 힘든 현실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사회적참사특별보상위원회 역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전문성·행정력·설득력이 없었다. 피해자들이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조직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피해자보다 제조사 입장에 더 많이 신경 쓴다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제조사에만 무한 책임을 요구하면서 낭비할 시간이 없다. 10년이 넘도록 사과·보상도 받지 못하면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곤혹스러운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새 정부가 피해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의 도덕적·행정적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에도 적극 나서는 것이 원만한 해결의 출발이 될 수 있다. 피해 사실의 인과성에 대한 논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피해 보상에 대한 제조사들 사이의 합리적 분담과 '종국성(終局性)' 보장에 대한 기업의 요구는 절대 지나친 것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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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케이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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