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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 BUSINESS STORY] '캐시미어를 두른 늑대'…우리가 욕망하는 모든 것, 그의 손에 지배된다

입력 2022/05/25 21:02
수정 2022/06/30 14:17
[Cover Story] 380조원 명품제국 일군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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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스로를) 프랑스 전통과 문화를 대변하는 대사(ambassador)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단지 결과에 불과하죠. 저는 항상 팀원들에게 수익성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맡은 일을 잘 한다면 수익성은 저절로 따라오니까요."

"직원들에게 우리가 아직 스타트업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무실로 출근하기보다 현장에서 고객이나 작업 중인 디자이너들을 만나야 하죠. 저는 매주 매장을 방문해 점장을 만납니다. 그들이 사무실에서 서류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제게 이렇게 많은 브랜드들을 인수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얘기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저는 성공했죠. 그리고 지난 10년간 경쟁자들은 저를 모방하려 노력했습니다.


"

1984년, 35세의 한 청년이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을 인수한다. 당시 디올은 경영난에 빠져 허덕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38년이 흐른 2022년. 야심 차게 디올을 인수했던 그 청년은 80여 개 브랜드와 자회사를 거느린 세계 최대 규모 명품그룹 회장으로 패션업계를 주름잡고 있다. 시가총액 380조원대의 명품 제국을 이끄는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73) 이야기다.

최근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가 발표한 '2022 세계 억만장자 명단'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에 이어 3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순자산은 1580억달러(약 195조원)다. 전체 순위는 3위지만 패션업계 1위와 유럽 부호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명품업계에서 아르노 회장의 영원한 맞수로 거론되는 프랑수아 피노 케링그룹 회장과 일가(404억달러·32위)도 큰 차이로 따돌렸다. 이런 분위기 속 LVMH는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CEO의 정년을 75세에서 80세로 연장하는 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칠순을 넘긴 명품제국 수장 아르노 회장의 집권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의미다.

◆ 건설기업 오너의 아들, 명품사업에 눈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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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명품제국을 이끄는 아르노 회장은 패션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1949년 프랑스 북부 소도시 루베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 최고의 공과대학인 에콜 폴리니테크를 졸업하고 고위 공무원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왔다. 아르노 회장은 아버지가 설립한 회사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경영 감각을 키웠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아르노 회장은 입사 5년 만에 부친을 설득해 일부 사업부를 4000만프랑에 매각하고 부동산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세웠다. 1981년 부친에게 회사를 물려받아 대표직에 오른 아르노 회장은 돌연 미국행을 택하게 된다. 1981년 프랑스 대선에서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당 대선후보인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테랑 정부가 주 39시간 노동제, 국유화 정책 등을 펼치자 아르노 회장은 이 같은 분위기에 반발해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뉴욕을 처음 방문한 아르노 회장은 택시기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프랑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대통령 이름은 모르겠고, '디올'은 압니다."

프랑스 대통령 이름은 모르지만 유명 패션기업인 '디올'을 안다는 택시기사의 답변에 아르노 회장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전 세계 누구나, 심지어 택시기사조차도 알고 있는 명품의 힘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 아르노 회장의 마음 한편에 명품사업 구상이 싹트기 시작했다.

1981년부터 3년간 부동산개발업에 매진했던 아르노 회장은 1984년 귀국길에 올랐다.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표방하던 미테랑 정부가 경제 상황이 좋아지지 않자 정책을 보수적으로 바꿨기 때문이었다.


소위 '뉴욕 충격'을 받고 귀국한 아르노 회장은 명품 위주로 사업을 재편하면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을 했고, 크리스찬 디올의 모기업 부삭그룹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1984년 부삭그룹을 손에 넣은 아르노 회장은 그룹 내 부진한 사업부들을 대거 수술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부삭그룹 인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직물, 기저귀 사업부 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9000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해고됐다. 아르노 회장은 이로 인해 '종결자(Terminator)'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구조조정으로 2년 만에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

◆ '캐시미어를 두른 늑대'…공격적 M&A의 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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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미어를 두른 늑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앞세워 이름난 명품 브랜드들을 줄줄이 인수한 아르노 회장에게 붙은 별명이다. 부삭그룹 인수는 M&A의 귀재로 불린 아르노 회장의 '공격적 M&A'의 서막이었다. 그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다음 타깃은 LVMH였다. LVMH는 그 이름처럼 주류업체인 모에헤네시와 패션기업인 루이비통이 합병돼 1987년 설립됐다. 당시 모에헤네시 출신의 알랭 슈발리에 회장과 루이비통 출신인 앙리 라카미에 부회장은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아르노 회장은 라카미에 부회장과 손잡고 LVMH의 지분 24%를 사들여 슈발리에 회장을 밀어냈다. 슈발리에 회장이 물러난 뒤 아르노 회장은 라카미에 부회장과 경영권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라카미에 부회장까지 몰아내고 1989년 40세의 나이에 LVMH 그룹 회장에 올랐다.

당시 명품시장은 유서 깊은 가족회사가 운영하는 소규모 명품 브랜드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형태였다. 아르노 회장은 이 같은 명품업계 판도를 바꾸고 싶었다. 명품 브랜드들이 하나의 큰 기치 아래 단일대오로 움직인다면 시너지가 날 것이고, 여기에 적절한 마케팅을 가미하면 시장을 제대로 키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식 경영을 내건 아르노 회장은 본격적인 LVMH그룹 외연 확장에 시동을 걸었다. 아르노 회장은 셀린느·로에베(1996년), 마크 제이콥스·세포라(1997년), 태그호이어(1999년), 펜디(2001년), 불가리(2011년), 리모와(2016년) 등 대중적인 명품 브랜드들을 대거 인수했고, 2019년 158억달러(약 17조원)를 들여 티파니까지 손에 넣었다.

"루이비통 입는 순간 귀족"…정곡 찌른 욕망 마케팅


◆ 욕망 마케팅과 인재경영이 빛을 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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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2021 봄·여름 여성 컬렉션과 2022 가을·겨울 여성 컬렉션 오프닝을 장식한 루이비통 하우스 글로벌 앰버서더 정호연.

아르노 회장은 LVMH의 경영 목표로 '삶의 예술(Art de Vivre)'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 명품이 이를 채워줄 수 있다면 소비자들은 앞다퉈 명품을 사려 할 것이고, 누구나 명품을 찾게 된다면 자연스레 명품이 대중화될 것이란 판단이었다. 아르노 회장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 덕에 한때 귀족과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명품은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퍼지게 된다. 명품을 사고, 입는 그 순간만큼은 나도 부유층과 귀족이 될 수 있었다. 신분 상승 욕구라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망'을 건드린 것이 통한 셈이다.

패션기업을 운영해 본 적이 없는 아르노 회장이 LVMH를 세계 최대 명품기업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데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기용하는 '인재 중심' 경영도 크게 작용했다. 아르노 회장이 발탁한 인재들은 명품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신선함을 주는 신상품들을 선보였고, 이 역시 명품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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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회장은 평소 "LVMH 같은 그룹을 운영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탈집중화'"라고 밝힌 바 있다. LVMH 산하 수많은 브랜드에 회장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아르노 회장은 브랜드를 이끌 유능한 디자이너들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밀어주며 그들이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서서 적극 도왔다.

'펜디' 카를 라거펠트, '지방시' 알렉산더 매퀸, '루이비통' 마크 제이콥스, '디올' 존 갈리아노, '셀린느' 마이클 코어스 등이 아르노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일례로 갈리아노가 한 패션쇼에서 신문지로 만든 드레스를 선보였는데, 일각에선 다소 충격적인 소재와 디자인으로 인해 혹평이 쏟아졌다. 이에 아르노 회장은 "창조성은 충격적인 것에서 나온다"며 갈리아노를 적극 두둔했다.

아르노 회장은 지난해 7월 스트리트 브랜드 오프화이트를 인수하며 창업자인 '패션 천재' 버질 아블로를 루이비통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전격 발탁했다. 아블로는 루이비통에 스트리트 감성을 접목한 파격적인 디자인을 공개했다. 일각에선 전통을 파괴한다며 비판적인 의견이 제기됐지만 아르노 회장은 항상 그래왔듯 아블로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며 그의 작품활동을 지원했다.

그 결과 제이콥스의 손을 거치며 '엄마들이 드는 가방'이란 이미지를 탈피한 루이비통은 아블로의 손을 거치며 MZ세대가 열광하는 브랜드로 다시 한번 변신과 도약을 하게 된다. 지난해 아블로가 암 투병 끝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아르노 회장은 "(아블로는) 천재적이고 선견지명 있는 디자이너였다"며 그를 추모하기도 했다.

◆ 세기의 맞수 프랑수아 피노 케링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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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LVMH 본사. [사진 제공 = LVMH]

유수의 명품 브랜드를 인수하고 대중화하며 성공가도만을 달린 것 같지만 아르노 회장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뼈아픈 과거가 있다.

1999년 인수·합병(M&A) 대상을 물색하던 아르노 회장의 눈에 들어온 기업이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였다. 구찌를 손에 넣고 싶었던 아르노 회장은 은밀히 구찌 주식 34.4%를 매입했다. 아르노 회장에게 구찌를 넘기고 싶지 않았던 도메니코 데 솔레 구찌 최고경영자(CEO)는 프랑수아 피노 피노프랭탕르두트그룹(PPR·현 케링그룹) 회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구찌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피노 회장은 경영권 인수에 나섰고, 1999년 3월 19일 인수를 공식 발표한다.

발표 당일은 아르노 회장이 고위 경영진 회의를 주재한 날이었다. 아르노 회장은 회의가 끝나면 솔레 CEO를 만나 구찌 인수를 담판지을 계획이었다. 빈틈없이 준비했지만 결국 피노 회장에게 허를 찔린 아르노 회장은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구찌를 두고 양보 없이 경쟁했지만 둘은 부부 동반 모임을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아르노 회장은 "PPR가 LVMH를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고 일침을 가했지만 구찌는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뒤였다.

구찌 이후에도 명품 브랜드 인수를 둘러싼 아르노와 피노 회장의 대결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입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부셰론, 발렌시아가 등 유명 브랜드들이 줄줄이 피노 회장의 품에 안겼다. PPR는 LVMH와 자웅을 겨룰 거대 명품그룹으로 성장했다. 구찌를 놓치고 피노 회장에 대한 앙금이 남았던 탓인지 2003년 아르노 회장은 "LVMH의 진정한 경쟁자는 샤넬과 에르메스"라며 의도적으로 구찌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2003년 그룹 경영권을 아들에게 넘긴 피노 회장은 미술계로 눈을 돌려 컬렉터로 활동한다. 2007년 영국 미술잡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세계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 1위에 오른 피노 명예회장은 파블로 피카소, 제프 쿤스, 피에 몬드리안 등의 작품을 2000점 이상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르노 회장도 이에 질세라 2014년 프랑스 파리에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퐁다시옹 루이비통'의 문을 열며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 명소 '퐁다시옹 루이비통'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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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다시옹 루이비통.

"LVMH그룹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을 시민에게 조금이나마 돌려주고 싶었다."

2014년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퐁다시옹 루이비통'의 개관식에서 아르노 회장은 미술관을 개관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연면적 1만1700㎡로 11개 전시실을 갖춘 미술관엔 아르노 회장이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한 앤디 워홀, 장미셸 바스키아, 백남준 등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은 2014년 개관한 이래 전 세계에서 연간 100만명, 누적 7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프랑스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아르노 회장의 컬렉션엔 피카소, 이브 클랭, 앤디 워홀과 헨리 무어 등의 작품을 포함해 올라푸르 엘리아손, 쿠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등 현대미술 작가들도 포함돼 있다.

예술과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정부에서 미술관 터를 불하받은 뒤 어떤 미술관을 지을지 고민했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매료된 아르노 회장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를 직접 찾았고 돛단배 형태의 '퐁다시옹 루이비통'이 탄생했다. 아르노 회장은 미술관 개관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지를 묻는 언론의 질문에 "꿈에 가격을 매기려고 들지 말라"며 답변을 거부해 또 한 번 유명세를 탔다.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창조를 위한 루이비통재단'이다. 명품 패션을 이끄는 아르노 회장이 '창조(성)'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르노 회장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 "경영자가 안 됐다면 피아니스트가 됐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르노 회장이 피아니스트인 아내 헬렌 메르시에에게 구애하기 위해 쇼팽 등 클래식 작곡가들의 곡을 피아노로 직접 연주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 아르노家 사람들…명품제국의 후계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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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회장에겐 다섯 자녀가 있다. 최근 LVMH 주주총회에서 CEO인 아르노 회장의 임기가 연장되면서 당분간 아르노 회장이 명품제국을 이끌 예정이지만 향후 LVMH제국을 이끌 후계자가 누가 될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장녀 델핀 아르노 루이비통 부사장 겸 LVMH그룹 이사(46)는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면서 경영전략을 익혔다.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와 일하며 패션산업에 대해 경험을 쌓기도 한 그는 2001년부터 2013년까지 크리스찬 디올에 몸담아 가죽제품, 액세서리,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담당하며 디올을 크게 성장시켰다. 루이비통 부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그는 신예 패션디자이너들을 후원하는 프로젝트인 'LVMH 프라이즈'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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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앙투안 아르노(44)는 로로피아나 회장, 벨루티의 CEO이며 LVMH에서 커뮤니케이션&이미지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벨루티를 이끌며 럭셔리 신발 제조 브랜드를 남성복 브랜드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루이비통의 커뮤니케이션 부서 책임자도 역임했는데, 앙투안 아르노는 당시 무하마드 알리, 앤젤리나 졸리,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이 등장한 '핵심 가치'라는 광고 캠페인을 진행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대외적으로 비치는 LVMH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차남 알렉상드르 아르노(30)는 29세에 티파니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디지털 분야에서의 경험은 LVMH가 전자상거래 플랫폼 24 세브레스를 론칭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알려져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알렉상드르 아르노는 40%의 분석과 60%의 직감을 바탕으로 일을 성사시킨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수 제이지와 비욘세 부부가 등장한 티파니의 '어바웃 러브' 캠페인도 그의 작품이다. 삼남 프레데리크 아르노 태그호이어 CEO(27)는 25세에 태그호이어 CEO 자리에 오르며 형인 알렉상드르 아르노에 이어 아르노가(家)에서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CEO가 됐다. 프레데리크 아르노는 CEO에 오른 뒤 포르쉐와 파트너십 체결, 배우 라이언 고슬링과의 협업을 이끌어내 주목받았다.

막내 장 아르노(23)는 루이비통 시계 마케팅 및 개발담당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임피리얼칼리지런던에서 기계공학 석사를, MIT에서 금융수학 석사를 취득했다. 경영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대외적으로 알려진 활동은 많지 않다.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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