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Industry Review] ESG가 사기라고?…소비자·종업원 동참하면 투자수익률 '쑥'

입력 2022/06/16 04:01
김종대 교수의 사회적 가치 이야기

일각서 불거지는 'ESG 무용론'
사회적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수익률 관점의 근시안적 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통해
공유가치의 창출이 이어지면
기업 투자수익률 높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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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기업가치평가(valuation)의 대가인 애스워드 다모다란 뉴욕대 교수는 일련의 기고를 통해 재무이론 관점에서 ESG 투자가 전통적인 투자전략에 비해 초과수익률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본질적으로 ESG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서 컨설팅회사, 평가서비스회사, 펀드매니저만 배불리는 금융사기로서 기업과 사회에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ESG 투자 세계에 선한 의지가 사회적 명분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 쓸모 있는 바보들과 그들을 이용하는 무책임한 악당들만 남게 될 것이라 비난한다.

역사적으로 소비자, 시민단체, 종업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인 자원 고갈, 환경 파괴, 소득 불평등 등에 각기 다른 방법으로 기업과 갈등을 빚으며 동시에 상생을 추구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이해관계자의 동향에 전향적이며 전략적으로 대응해 온 위대한 경영자들의 주도로 지속가능한 사회와 기업의 창조를 위한 노력이 가속화돼 왔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 과정에 투자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위험과 수익률(risk-return)만을 생각하는 단순한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투자자와 재무관리 이론가들에게 환경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려는 1970년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처럼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적 책임(이익 극대화)을 다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런 투자자 세계에서 블랙록의 래리 핑크가 ESG 투자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강조하고 나선 것에 대해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우며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 비난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속가능성과 투자수익률 간의 관계에 우려를 자아내는 최근의 동향이 또 있다. ESG 투자가 붐을 이루고 있는 시기에 맞춰 회계기준 제정기구인 IFRS(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기존의 성과측정 및 보고 기준과 계획(initiatives)을 통합하거나 전략적 협력관계를 형성해 ISSB(세계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사건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ESG 투자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성과가 아닌 환경과 사회적 성과에 대한 고려를 보수적인 투자 세계가 받아들이며 그를 위한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 기준의 목적이 투자자들을 위한 정보 제공이라고 천명함으로써 반 세기 이상 논의되어 온 지속가능성과 새로운 경제 및 사회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탐색이라는 사회 전체적인 논의가 경제적 가치 극대화라는 기존의 의사결정 구조에 병합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목적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수단으로서 환경 및 사회적 성과에 대한 고려를 명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셋째,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기존 논의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 논란의 영역으로 밀어 넣을 가능성이 있다. GRI, ISO26000 등의 자발적 기준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긴 논의 과정을 거쳐서 자발적으로 도출해냈으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채택 여부를 결정하면서 시민사회와 시장의 평가를 받으며 진화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 왔다. 이제 어떤 형태로든 법제도의 영역으로 편입되면 환경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려와 논의가 정치적 논의로 변질되고 정치적인 영향력에 좌우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지속가능성 성과 측정과 보고가 투자와 회계보고의 영역으로 편입되면 재무와 금융시장에서 ESG 투자의 본질과 사회적 합법성(legitimacy)에 대한 논의가 저해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커진다.


다모다란 교수의 주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미 재무관리 영역에서 ESG 투자의 무용론이나 심지어 ESG 투자가 사회적 가치를 해치는 투자 철학 내지는 전략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새로운 환경 및 사회적 이슈와 이해관계자의 인식 및 행동 변화와 그 의미를 인지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투자자 관점에서 파생된 ESG 개념의 명백한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투자수익률이 유일한 목표 함수이며 나머지 모든 가치는 수단 또는 제약요인(constraints)이란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기업의 궁극적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이해관계자, 예를 들면 기존의 가치 및 사고체계와 행동방식을 수정할 의지가 강한 소비자와 종업원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를 비롯한 중요한 이해관계자의 달라진 효용함수가 시장의 가치체계를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허용한계를 넘어선 기후변화 위협과 불확실성이 극대화되어 가고 있는 세계 경제, 지나친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변화 요구 등이 새로운 경제와 사회 체제로의 이행을 촉진할 수도 있다.

투자자가 변한다고 소비자와 종업원이 변하지는 않지만 소비자와 종업원이 변하면 투자자는 그 이행 과정에서 초과수익률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은 없더라도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이해관계자의 움직임에 동참하여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있을 수 있다. 래리 핑크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지는 않더라도 금융사기꾼이 아니라 건전한 수익률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투자자라고 믿고 싶다.

이 논의가 우리 기업들에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즉, ESG는 투자자들의 논쟁의 장이지 기업 경영전략에 있어서 절대적 목표라 할 수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통해 가치사슬에서 공유가치를 창출하고 이해관계자의 니즈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것이 기업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지속가능경영의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이 우리가 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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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인하대학교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지속가능경영연구소 ESG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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