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IT

[Industry Review] 조직문화 세대교체…"기 센 임원도 Z세대 신입 눈치 봅니다"

입력 2022/06/30 04:03
90년대 말 : 야생적 맹수 문화
폭력적 상사와 수긍하는 부하
상명하복 방식 버틸 수밖에

2010년대 : 쉬지않는 꿀벌 문화
일 중심으로 기계처럼 움직여
모든 결과는 숫자로 증명해야

2022년 : 영리한 까치 문화
Z세대 젊은 직원 목소리 커져
불만 얘기하고 조건 따라 이직
571711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는 대략 3단계를 거치면서 변화해왔다. 제1단계는 '맹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칠고 직선적이며 사나운 맹수의 습성과 유사하다. 먹잇감이 보이면 "알아서" 결과를 만들어 낸다. 한번 들어본 적도 없는 사업이라도 돈이 된다고 하면 "맨땅에 헤딩하면서"(이 표현은 다른 나라 말로 번역도 안 된다) 쟁취해 낸다. 맹수 문화에서 상사의 말은 곧 법이다. 그에 거역하든가 토를 다는 사람에게는 언어적·신체적 폭력이 가해지기도 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까라면 까고, 회식에서 '원샷'을 명하면 내일 아침 병원에 실려 가는 한이 있더라도 잔을 털어내야 한다. 초원의 하이에나, 사바나의 표범, 늪을 지배하는 악어의 습성을 닮았다.

약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국내 대기업 A사 K부사장은 야생적 인물로 유명했다.


거구에 괄괄하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평소에는 말이 별로 없다가 한번 심사가 틀어지면 온갖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점심 식사 때 폭탄주 몇 잔은 마셔야 오후에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애주가이기도 했다.

어느 해 늦은 가을, K부사장은 임원들과 함께 속초로 워크숍을 갔다. 전날 오후 늦게 도착한 그는 연수 담당 J과장에게 울산바위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를 물었다. J과장은 얼떨결에 한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고 답했다. K부사장은 그 말만 믿고 산에 올랐다.

그런데 웬걸, 잰걸음으로 걸었는데도 가는 데만 2시간, 왕복으로 4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밤이 돼서 겨우 숙소로 돌아온 K부사장은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J과장을 불렀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그의 안면을 가격했다. J과장은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호텔 직원들이 급히 119를 불러 응급실로 데려갔다. 얼마 후 제정신이 든 J과장은 몸을 추스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남은 일정을 소화했다. 마치 맹수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듯이 말이다. 이후엔 아무 일도 없었다.

그해 말, 차장 승진 대상자 명단이 K부사장에게 올라왔다.


리스트에서 열심히 누군가를 찾던 그는 자기가 찾는 이름이 없는 것을 보고, 빨간 펜으로 이름 하나를 승진자 리스트에 슬며시 적어 넣었다. J과장의 이름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A사의 임원 L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A사는 일사불란한 일 중심의 집단이 돼 있었다. 이번에는 제2단계로 볼 수 있는 '꿀벌 문화'가 자리 잡았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여왕벌 같은 베테랑 중간보스들이 구성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한다.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나는 하루, 출퇴근 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밤낮으로 '꿀' 따는 작업에만 집착한다. 회사 전체가 마치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인다. 성과를 측정하는 모든 지표가 우상향이다. 지표에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면, 곧바로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전 직원 비상근무에 들어간다.

그때 L임원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저는 일주일에 6.5일 일합니다. 반나절(0.5일)은 옷가지를 가지러 집에 잠깐 다녀오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경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집착, 집념,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없으면 안 됩니다. 임원, 팀장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구성원들이 바로 나태해집니다. 부하 300명 각자에게 일일 보고를 시킵니다. 그날의 일과를 총점검하는 거죠." 그의 말에서는 무서운 결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숫자가 곧 인격 아닌가요?"

그리고 다시 10년이 흘러, 최근 A사의 그 L임원을 또 만났다. A사의 조직문화는 다시 한번 대변신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3단계로 '까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까치는 잡식성이며 소집단을 이뤄 살면서 다른 집단에 공격적이다. 울음소리가 크고, 영리하다. 1·2단계 조직문화에서는 직원이 회사 대표나 회장에게 직접 불만을 이야기하는 예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까치 문화'에서 이는 흔한 일이 됐다. 사장 직속으로 불만 즉시 처리 부서를 따로 두고 있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6.5일식 근무는 사라졌고, Z세대의 등장으로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관행이 도전받고 있다. 회사·개인 간 계약관계가 중요시돼, 연봉·처우·근무조건에 따른 회사 이동이 잦아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인주의가 강화되고, 원격근무가 활성화됐다.

L임원은 이렇게 탄식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위에서는 성과를 더 내라고 다그치고, 아랫사람들은 '땡퇴'하고, 동료 임원들은 빨간 날마다 골프 예약 잡기에 바쁘고, 외국 회사에 다니던 대학 동기는 이직으로 엄청난 연봉을 받는데 나는 헐값이고. 저성과 구성원과 면담하면서 '답답하다'고 한마디 했더니 사장실에서 바로 '경고' 전화 오고. 이러면 꿀은 누가 땁니까?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네요, 흐흐."

기업에 '까치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조직의 상층이 새로운 현실에 당황해 하고 있다. 열심히 밥은 같이 먹지만 해결은 안 된다. 어떻게 L임원을 구할 수 있을까?

571711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백기복 국민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