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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 많이 뜨니 좋긴하지만…조마조마한 이 마음, 어찌하오리까

입력 2022/07/13 17:04
수정 2022/07/14 12:33
"30개월 순환휴직 끝이 보인다"
공항 돌아온 조종사·승무원들
◆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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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조종간을 처음 잡고 나서 1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안 했던 생각을 최근 2년간 수십 번은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다 조종사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요."

대한항공 부기장으로 근무했던 A씨가 저비용항공사(LCC) 기장으로 이직한 건 코로나 발생 직전 해인 2019년, 당시 그의 나이 30대 후반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그는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첫해엔 무급휴직 기간이 2개월이었지만, 작년엔 4개월, 올해 들어서도 8월 말까지 4개월을 쉴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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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유지지원금만으로 버티기엔 예전 씀씀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쉬는 동안 틈틈이 인테리어필름 시공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A씨는 "열심히 일하면 하루에 10만~15만원, 한 달에 200만~300만원 정도 수익을 올렸다"며 "조종사 시절 월급의 20~30% 수준이지만,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다시 에어버스320 조종간을 잡고 도쿄 나리타공항을 다녀왔는데, 처음 단독 비행을 했을 때만큼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대유행으로 수많은 직장인의 삶이 바뀌었지만 항공사 중에서도 LCC 직원들은 특히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선의 경우 여객 점유율이 60%에 이를 정도로 'LCC 전성시대'가 코로나 직전까지 이어졌던지라 비행 중단의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텼다. A씨처럼 인테리어 아르바이트를 한 기장이 있는가 하면, 바리스타·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승무원도 있다. 굴착기 등을 모는 건설기계 자격증을 따거나 공인중개사로 변신한 직원도 있었다.

이제 다시 LCC들이 날아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2년 반 만에 돌아온 국제선 현장은 낯설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실수와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LCC 항공업계 직원들을 직접 만나 2년 반 생존기와 복귀 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잠깐일 줄 알았던 순환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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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전염성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2015년 메르스 때처럼 금방 지나갈 줄 알았습니다. 처음 휴직에 들어가면서도 '이번 기회에 잠깐 쉬다 오자'는 생각이었죠."

2020년 초 LCC 객실승무원 근무 10년 차였던 B씨는 코로나 발생 직후 휴직에 들어가던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비행기가 쉴 새 없이 뜨고 내렸던 2019년만 해도 A씨는 스케줄이 빡빡한 날에는 중국·일본 등 단거리 국제노선은 하루 두 차례, 김포~제주 국내노선은 하루 5번 오가야 했다. "순환휴직을 거듭할수록 바쁘게 일했던 지난날이 그리워졌습니다."

코로나19의 공식 명칭이 정해지기도 전인 2020년 1월, LCC업계의 매출 원천인 중국 노선 운항이 중단되기 시작했다. 한 달 뒤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휴직을 받는 항공사가 하나둘 생겼다. 주요 LCC 6곳은 정부에 조건 없는 긴급 금융지원을 건의했다. 2020년 3월 정부는 항공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고, 고용유지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꿈꾸던 항공업계에 취업한 지 2년째였던 LCC 객실승무원 C씨에게도 가혹한 시간이었다. 승무원 업무에 적응하기 시작하려던 때 순환휴직을 맞았다. 근무하는 동안에도 운항 횟수가 크게 줄어 월급은 절반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계좌에 입금되는 월급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김포공항과 가까운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반전세로 작은 오피스텔을 구했던 C씨는 월세를 내야 할 날이 되면 숨이 턱턱 막혔다.

"항공사에 취업한 건 2019년이었어요. 정말 원해서 온 직장이라 힘든 줄 모르고 일했어요. 월급이 당장 눈에 띄게 줄어들다 보니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어요. 그래도 이 일을 그만두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버텼어요."

아시아나항공에서 부기장으로 근무하다 기장 승급에 필요한 비행시간을 빨리 채우기 위해 LCC로 이직한 D씨는 지난날의 선택을 후회한다. 단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LCC에서 최대한 많은 비행시간과 이착륙 경험을 쌓으려 했지만 운항 기회 자체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D씨는 "군대에서 조종사로 근무하던 지인들 중에는 항공업계로 옮겨가기 위해 전역 신청서를 냈다가 낭패를 본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 돌아온 일터에선 좌충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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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정부는 국제선 조기 정상화 계획을 발표하며 2020년 4월부터 시행 중인 인천국제공항의 시간당 항공기 도착편(슬롯·slot) 제한을 해제하고,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설정된 비행금지시간(커퓨·curfew)을 풀었다.


이에 따라 항공사별로 2년여 만에 운항을 재개하는 국제노선이 하나둘 늘었다. LCC업계 종사자들은 긴 암흑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안도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항공업계 종사자에게 코로나는 강력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들은 "코로나에 이어 또 다른 전염병이 창궐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입을 모은다. LCC 기장 E씨는 "고용유지지원금이 지급되는 8월이 마지막 휴직기간인데, 그 전에 다른 자격증을 따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며 "더 이상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게 된 만큼 재테크 공부를 열심히 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선 운항이 늘어나면서 업무 강도는 덩달아 세지고 있다. 동남아시아 휴양지 노선의 경우 과거에는 LCC마다 하루에도 몇 편씩 운항했지만 지금은 주 7회 이하 운항 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운항·객실승무원들이 현지 도착 시간에 따라 하룻밤 묵기도 했지만, 지금은 도착 즉시 회항하는 '퀵턴(quick turn)' 형태로 근무하고 있다. 다음날 이들을 데려올 비행편이 없어 현지 체류 비용이 과거보다 많이 지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괌·사이판 등 휴양지 노선에선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LCC 객실승무원 F씨는 "국제선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격월 단위로 휴직을 다녀온 승무원들 입장에선 아무래도 삐걱거리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며 "장기간 휴직 후 돌아온 승무원은 상황별 대처 방법을 숙지하며 현장에 적응하고 있다. 계속근무자와 복귀자가 적절히 섞여 근무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 '다시 이륙' 활기 도는 LCC


항공사별로 운항을 재개하는 노선이 늘어나면서 LCC업계 종사자들도 활력을 되찾는 중이다. 직원을 채용하는 LCC도 생겼다.

해외 '레이오버(현지 체류)' 스케줄이 늘어나면서 승무원들은 과거의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승객처럼 승무원들도 국제선에서 근무하는 날이면 똑같이 설렌다고 F씨는 말한다. "예전에는 해외로 나가는 게 당연했고, 객실에 손님이 가득한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손님 한 분 한 분이 다 소중합니다."

국제선 운항 편수가 늘어나면서 기장·부기장 등 운항승무원들의 근무 스케줄도 점점 빠듯해지고 있다. LCC 기장 G씨는 "우리 회사는 그동안 두 달씩 번갈아가며 순환근무를 했다. 최근에는 회사에서 '이번 달은 쉴 차례인데 사람이 모자란다. 한 달 더 일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일이 바빠지면서 마음이 들뜨기는 운항승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에 나서는 손님들이 걱정 없이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안전 운항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들의 소망은 한 가지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문광민 기자 /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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