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Interview]차이코프스키 국제 바이올린 경연대회 바이올린 제작 부문 대상 수상 홍성희 | 연주자와 음악적 소통을 꿈꾼다

입력 2014/11/19 14:39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악기 제작 부문이 있다는 말을 생전 처음 들어보았다.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홍성희 씨가 얼마 전 열린 그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고 잠시 한국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수상 얘기도 뿌듯했지만 무대 전면에 서는 기악가들의 뒤에 이런 장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들으면 세상은 참으로 섬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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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모나를 향한 첫걸음

홍성희. 그녀는 크레모나에 사는 35세의 바이올린 제작자로 요즘 바이올린 공방 오픈을 위한 준비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이올린 활을 처음 잡아 본 게 열 한 살 때의 일이니, 무려 24년만의 성과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던 홍성희는 비올라를 전공하는 셋째 언니의 권유로 바이올린으로 옮겨탔다.


언니들과 부모님은 당연히 막내딸이 바이올린 연주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홍성희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았다.

언니는 바이올린을 시작한 막내 동생을 유난히 챙겼다. 공연장, 악기점, 악기수리 공방 등 바이올린과 관련된 곳으로 외출할 때는 반드시 동생을 데리고 다녔다. 그 중 홍성희의 눈동자를 반짝이게 한 곳은 공방이었다. 그녀는 나무를 깎아 악기를 만들거나 최고의 소리를 잡아주기 위해 악기를 조율하는 과정을 보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보는 게 즐거우면 직접 하고 싶어지는 법. 홍성희는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제작 공부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3 때는 부모님께 ‘졸업 후 크레모나로 제작 유학을 떠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냥 연주해라, 제작은 괴롭다’며 반대했다. 일단 부모님 뜻을 따르기로 했지만 이미 홍성희는 크레모나를 향해 첫발자욱을 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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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제작에 콩쿠르가 필요한 이유

흔한 일은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간헐적으로 악기 제작 콩쿠르가 열린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이탈리아의 ‘크레모나 콩쿠르’를 비롯, 독일, 프랑스, 러시아, 미국, 중국, 멕시코 등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콩쿠르에서의 수상은 전 세계 모든 악기 제조가들의 꿈이다. 수상의 의미는 세 가지이다. 우선, 작가 자신의 악기가 좋은 재료와 디자인으로 입혀진 사실을 공인받는다. 좋은 악기를 통해 연주자가 최고의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큰 보람이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 공급한 악기가 팔고 사는 행위에서 끝나지 않고 더 좋은 소리 창조를 위한 꾸준한 관리를 통해 제작자와 사용자 간의 ‘음악 관련 지식의 공유’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제작자 개인으로서는 전 세계 콩쿠르에서 몇 차례 수상함으로써 명장의 권위를 얻게 되면 제작에 탄력을 받게 되고 제작한 악기가 작품으로 대접받고 그에 준하는 프리미엄 대접을 받게 된다. 악기 제작 콩쿠르는 또한 악기 제작자들의 능력을 높이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대회에 나가려면 한 두 가지의 악기를 제작하게 되는데, 목표가 뚜렷한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탈락자의 악기들마저 수준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악기 제작자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새로운 콩쿠르에 도전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축하합니다.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는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닐텐데, 기분이 어때요?

고맙습니다. 대상 소식을 들은 게 시상식 바로 며칠 전이었어요. 마침 바쁜 일도 있고 해서 비행기를 늦게 타는 바람에 시상식 다음날에야 모스크바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참 재미있어요. 그냥 상패와 인증서 정도만 주시면 될텐데, ‘대상 수상자를 그렇게 보낼 수 없다’며 파티를 열어주시더라고요. 예술하는 맛이 이런 거로구나, 생각했습니다. 모두에게 고맙지요. 가족, 선생님, 친구들…저 자신한테도요!

차이코프스키 현악기 제작 콩쿠르가 뭐죠?

정식 명칭은 ‘2014년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국립음악원 주최 국제 바이올린 경연대회 ‘violin:soul and shape’입니다. 제작자들로부터 주목받는 콩쿠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더욱 영광이고요. 모스크바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 도시 가운데 한 곳이예요. 그곳의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게 큰 기쁨입니다. 이번 콩쿠르는 7년만에 열렸는데, 그만큼 작정하고 도전한 분들이 많았지요. 100여 분이 참여했고 거기서 저를 대상으로 뽑아주셨으니 고마울 뿐입니다.

시상 기준은 무언인가요?

많은 콩쿠르가 있지만 대부분이 100점 만점에 제작 부문 50점, 소리 부분 50점, 이렇게 나눠 채점합니다. 제작 부분은 소재, 디자인, 완성도 등을 보는 것이고, 실제로 연주해 보았을 때 어떤 소리가 나느냐를 보는 소리 부분 심사를 통해 좋은 작품과 덜 좋은 작품을 가늠하는 것이지요.

그간 어떤 콩쿠르에 왜 도전하셨나요?

악기 제작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유학생도 많지요. 졸업하고 귀국하는 사람도 많지만 크레모나에 남아 공방을 차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인데, 실력을 키우고 인정받는 제작자가 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콩쿠르에서의 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처음 나갔던 대회가 2008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였습니다. 운이 좋아 은메달을 땄지요.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입상 작품들 가운데 가장 아름 다운 소리’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답니다, 호호. 그리고 2014년 독일 미텐발트(Mittenwald) 국 제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에서 준결승 토탈 10등을 했지요.

바이올린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요?

바이올린은 크게 고전 바이올린과 현대 바이올린으로 나뉩니다.


저는 현대 바이올린 전공이고요. 제작 과정은 ‘구상 – 나무 선택 – 디자인 – 재단 – 판 붙이기 – 헤드 붙이기 – 다듬기 – 칠 - 말리기 – 세팅’ 순이예요. 나무 선택은 어느나라에 서식하는 어떤 나무로 한다는 계획을 제가 직접 세웁니다. 선택의 기준은 여러가지예요. 나이테가 촘촘한 게 좋다는 분, 널찍해야 한다는 분 모두 나름대로의 원칙과 기준에 입각한 주장입니다. 다듬는 도구도 누구는 사포를 이용하고 또 누구는 칼날로 합니다. 서로 자기 방식이 ‘소리에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옳고 그른 건 없습니다. 그것을 최선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모든 과정을 끝내려면 두 달은 잡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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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여섯째 언니는 활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4위에 입상했다.(아래)최근 사사중인 루카 프리몬 선생님 크레모나 학교(국제현악기수공전문학교IPIALL)에서는 무엇을 배웠나요?

커리큘럼은 5년 과정입니다. 기본적으로 기술학교이기 때문에 저같은 대학 졸업자도 입학할 수 있지만 미성년자들도 입학이 가능합니다. 음악물리학, 역사 등 인문의 기본이 되는 공부를 하는 한편 1학년 때는 조각, 디자인칼 사용법 등을 배우고 2학년 때는 헤드 손잡이 부분 제작법을, 3학년 때는 본격적인 악기 제작 수업에 들어갑니다. 저는 3학년으로 편입해서 비교적 짧은 커리큘럼을 끝내고 졸업했지만, 생각해 보니 1학년부터 출발, 서서히 숙성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조금의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번 콩쿠르에서 여섯째 언니가 활 제작 부분 4위에 입상했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맞아요. 저희가 일곱 자매랍니다. 첫째 언니는 패션 디자이너, 둘째 언니는 헤어 메이크업, 셋째 언니는 비올라 전공자예요. 언니가 저를 피아노에서 바이올린으로 옮겨오도록 해 주셨고, 제작자를 목표로 하도록 응원해 준 분도 셋째 언니예요. 넷째 언니는 유아교육, 다섯째는 산업 디자인, 그리고 이번에 활 부문에서 입선한 여섯째 언니는 결혼해서 살다, 조카들 서너 살 때 ‘현악기 공부하고 싶다’며 온 가족이 크레모나로 이주해서 공부하며 살고 있답니다. 이번 모스크바 대회에서 저랑 같이 수상해서 집안이 떠들썩하답니다, 호호호.

졸업하고 바로 취직이 되었나요?

마지막 실기가 끝난 뒤에 알렉산드로 볼띠니 담임 선생님이 오셨더라고요. 너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 묻길래, 당연히 ‘공방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지요. 그런데 대뜸 자기 공방에서 일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이런 행운이! 그리곤 바로 공방으로 출근했는데, 공방은 학교와 또 다른 신세계였습니다. 악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 새로운 기술이 거기 다 있더라고요. 돈들여 다녀도 아깝지 않을 시간들이었는데, 일한 만큼 돈도 챙겨주시니 그런 고마움이 또 어디 있을까요? 제가 만든 악기가 팔리면 목돈이 생기기도 했고요. 알렉산드로 볼띠니는 제가 2003년 입학했을 때 만나 2006년 졸업 후 2012년까지 함께 했으니 9년의 사제 인연이 있었고 그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늘 고마운 마음이예요.

바이올린 제작 공부에는 졸업이라는 말이 없겠어요.

맞아요. 학교에서 배운 게 전부인줄 알았는데, 공방에 가니 또 다른 세상이 열리고, 공방을 나와 거리로 나가보면 또 다시 새로운 세상이 절 보고 웃고 있습니다. 요즘 현악기 명인으로 불리는 ‘루카 프리몬(Luca Primon)’ 선생님께 사사 중인데, 그 분의 다큐멘터리(http://vimeo.com/m/76041443)를 보시면 바이올린의 세계가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현악기 제작자가 되려면 숲을 알아야 하고 나무의 물성을 알아야 하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섭렵해야 합니다. 심지어 악기를 사용할 연주자의 성품과 특징도 이해해야 해요. 그런 공부가 커리큘럼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지금도, 앞으로도 공부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꿈은…물어보나 마나겠죠?

“하하하, 지금은 제 이름의 공방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잘 하면 내년 1~2월에 문을 열 것 같아요. 그리고 크레모나 콩쿠르에 도전하고 싶어요. 그래서 멕시코, 독일, 러시아, 그리고 현악기의 본향인 이탈리아에서 수상해 실력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수상보다 더 바라는 것도 있어요. 그것은 연주자와 저와의 음악적 소통입니다. 악기는 만들어 파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제 악기를 사간 사람이 그 악기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함께 이야기 하고 좋은 정보를 나누는 것도 중요해요. 악기 수리를 한다는 것은 고장난 악기를 고치는 개념도 있지만, 좀 더 좋은 소리를 위한 조정 작업의 개념도 큽니다. 제작자와 연주가가 함께 완성시켜가는 바이올린이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크레모나

바이올린을 한번도 만져보지 못한 사람도 ‘스트라디바리우스’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7~18세기)가 만든 현악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아마티’(16~18세기), ‘과르네리’(17~18세기)와 더불어 세계 올드 바이올린 제작 3대 명장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이들 가문들은 이탈리아 국적이라는 점 외에도 모두 ‘크레모나’ 출신으로 그 지역의 현악기 제작 명장의 자손으로 태어나 대대손손 명장의 반열에 오르고 평생 악기를 만들며 살다 세상을 떴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도시는 역시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이다. 바이올린 3대 명문이 이곳에서 활동했고 그곳에 그들과 제자들의 공방이 들어서면서 크레모나는 자연스럽게 현악기 제작의 메카가 된다.

[인터뷰어 이영근 사진 이영근, 홍성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454호 (14.11.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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