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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국보1호, 흥인지문이 보물1호인 이유

입력 2020.05.22 15:01   수정 2020.05.2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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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인지문에서 바라본 서울 종로 전경. 일제강점기. 임진왜란 때 흥인지문으로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서울로 입성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보의 자취-39] 임진왜란 때 왜군을 이끌었던 가토 기요마사(1562~1611)는 숭례문을 통해 서울에 들어왔고 또 다른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1558~1600)는 흥인지문으로 진입했다.

조선총독부는 1933년 우리나라 국보(당시 명칭 보물)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목하에 일련번호를 부여하면서 공교롭게도 숭례문(당시 명칭 경성 남대문)을 보물 1호, 흥인지문(동대문)을 보물 2호로 각각 지정했다. 총독부는 조선 유물에 대해서는 보물 지위만 부여했다. 이 같은 조치를 두고 임란 당시 왜군의 한양 입성을 기념하기 위한 속셈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듯 현재 숭례문은 국보 제1호이고 흥인지문은 보물 제1호다.


흥인지문은 한 등급 아래인 보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숭례문이 과연 국보 제1호로서 적합하냐는 자격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더욱이 숭례문은 2008년 2월 방화로 불탄 뒤 2013년 5월 새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국보란 뭘까. 그 법적 기준은 모호한 편이다. 문화재보호법은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견지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보물은 건조물, 전적, 서적, 고문서, 회화, 조각, 공예품, 고고 자료, 무구(무기) 등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보물 중 중요한 것이 국보인 것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큰 것, 제작 연대가 오래되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것, 제작 의장이나 제작 기법이 우수해 그 유례가 적은 것, 형태·품질·용도가 현저히 특이한 것, 저명한 인물과 관련이 깊거나 그가 제작한 것 등을 제시하지만 역시 주관적이다. 국보는 국가 또는 개인이 신청하면 최종적으로 문화재위원회가 심의를 통해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종종 문화재위원의 전문성 부족으로 적격성 논란이 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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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대로를 건설하면서 숭례문은 놔둔 채 우회해 왼쪽으로 길을 냈다. 숭례문으로는 가토 기요마사 군대가 들어왔다.


조선총독부는 이를 기념해 숭례문을 보물 1호, 흥인지문을 보물 2호로 지정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가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군에 붙어 승자가 됐고 고니시는 도요토미가 편에 섰다가 처형됐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보는 국보 제1호 숭례문을 시작으로 2020년 2월 27일 지정된 국보 제331호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까지 총 331호가 있다. 같은 번호에 여러 건이 있어 수량으로는 345건이다. 제151-1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 제151-2호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제151-3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제151-4호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제151-5호 조선왕조실록 봉모당본, 제151-6호 조선왕조실록 낙질·산엽본이 그런 예다.


시대별로 보면 최근으로 올수록 숫자가 많아져 석기 1건, 청동기 4건, 삼한 1건, 삼국 11건, 고구려 2건, 백제 22건, 신라 25건, 통일신라 63건, 고려 97건, 조선 112건 등이다. 분야는 청자가 50건으로 가장 많고 불경 등 목판본 31건, 석탑 25건, 금동불 23건, 사찰 건축 16건, 석비 13건, 장신구 13건, 백자 12건, 불화 11건, 금관 8건, 승탑 8건, 석불 8건, 금속활자 8건, 선사 유물 7건, 마애불 7건, 청화백자 7건 등이다.

소장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59점으로 가장 많은 국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공립박물관 중 국립공주박물관 13점, 국립경주박물관 9점,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9점, 국립고궁박물관 3점, 국립대구박물관 3건, 국립부여박물관 3건, 한국학중앙연구원 2건, 부산시립박물관 2건, 경복궁 2건 등이다. 사립박물관은 삼성리움 36점, 간송미술관 12점, 호림박물관 8점이다.


사찰별로는 경주 불국사 7점, 영주 부석사 5점, 합천 해인사 3건, 구례 화엄사 3점, 순천 송광사 3점, 보은 법주사 3점, 구례 연곡사 3건 등이다.

국보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북한 소재 문화재를 제외하는 수준에서 목록이 한 차례 정비되고 1962년 제정·공포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그 숫자가 추가됐다. 하지만 숭례문으로 시작되는 번호 체계의 기본 틀은 일제강점기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1996년 이후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국보 1호 교체가 추진됐지만 문화재위원회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이어 최근에 와서도 화재 사건, 부실 복구 주장 등으로 숭례문이 국보 제1호로서 대표성을 상실했다며 국보 1호 해제 국민서명운동도 지속적으로 벌어진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과학적인 문자다. '국보 제25호' 석굴암도 전 세계 종교예술사에서 탁월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일각에서는 이들로 국보1호를 대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은 번호가 앞서면 더 중요한 문화재라는 인식을 한다. 따라서 문화재청은 국보 제1호 교체 대신 국보 번호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처럼 문화재에 번호를 매기고 있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중국은 '진귀 문물'과 '일반 문물'로만 분류하고 있고 일본도 각 유물에 행정상 분류 번호를 붙일 뿐 공식적으로는 번호를 쓰지 않는다.

국보 중에는 영구 결번된 것이 2건이나 된다. 1992년 한산도 앞바다에서 발굴된 '귀함별황자총통'은 거북선에서 사용된 대포로 추정돼 국보 제274호로 지정됐다. 1996년 위작으로 드러나 국보 지정이 해제됐다. 한 해군 대령이 가짜 총통을 한산도 앞바다에 빠뜨린 뒤 진짜를 발굴한 것처럼 꾸민 국보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기극으로 판명 났다. 거북선 총통을 국보로 지정하면서도 무기 전문가가 한 번도 이 유물을 조사하지 않은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국보 제278호였던 '이형 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은 2010년 보물로 강등됐다. 1993년 조선 태종 때 발급한 공신녹권으로는 첫 발견이라서 국보가 됐다. 그런데 2006년 4월 '마천목 좌명공식녹권'이 보물 제1469호에 지정된다. 이형 원종공신녹권은 1411년, 마천목 좌명공신녹권은 1401년 발급됐다.


이형의 원종공신녹권은 또한 공신대우에 불과해 결국 보물로 격하된 것이다.

국보 제168호 백자 동화매국문병도 1974년 국보로 지정됐지만 도자기가 만들어진 시기와 장소가 15세기 조선이 아닌 14세기 중국으로 확인돼 해제가 진행되고 있다. 국외 문화재라도 우리나라 문화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국보로 지정할 수 있지만 이 작품 출토지와 유래가 우리나라와 연관성이 불분명하다. 도난당한 국보도 있다. 국보 제235호 안평대군 소원화개첩은 2001년 사라져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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