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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하서 김인후의 청렴결백한 절의 상징

입력 2020.05.22 17:08   수정 2020.05.2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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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 배향한 18현 중 호남출신
호남 주자학 흐름 계승·발전

인종 세자시절 교육 담당하다
즉위 8개월뒤 승하하자 은거

'소쇄원 48영' 등 한시 다수 남겨
종 향한 사무침 '통곡대' 눈길
◆ 유네스코 세계유산 서원기행 / ⑦ 필암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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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 김인후를 제향 중인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 힘없던 임금에의 애통함이 서원 곳곳에 서려 있다. [사진 제공 =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필암서원은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위치해 있다. 주 제향 인물은 호남지방 도학을 대표하는 하서 김인후(1510~1560)이며, 문묘에 배향된 18현 중 유일한 호남 출신 인물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김인후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는 문인들이 뜻을 모아 장성읍 기산리에 건립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김인후의 많은 제자들이 의병으로 참여했다 하여 1597년 왜군들에 의해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1624년 필암리 증산동에 옮겨 세웠다. 1662년 필암서원이라는 사액이 내려졌다. 그러나 증산리는 지형이 낮아 침수 우려가 있었으므로 1672년 지금 자리로 이건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라는 칭송을 받은 하서는 22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24세 때 퇴계 이황을 만나 교분을 맺었으며, 31세에는 문과에 합격하였다. 34세에 인종(1515~1545)이 세자이던 시절 시강원 설서로 교육을 담당하면서 그때 맺은 인연으로 인종과 하서는 서로를 아끼고 신뢰하며 난마같이 얽혀 있는 시대 상황을 어진 정치로 풀어가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36세 되던 해 인종이 즉위한 지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때 받은 슬픔과 충격으로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은거하며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김인후는 호남 지역 주자성리학의 흐름을 계승하고 크게 발전시킨 인물이다. 어린 시절 스승인 김안국에게 배운 '소학'을 매우 중요시하게 생각했는데, 이는 기묘사림의 특징적인 학문이다. 그는 도학을 존숭하고 성현의 법에 따라 백성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였다. 성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천명도(天命圖)' 등을 저술하고 서경덕, 기대승 등과 교류하며 토론을 벌였다. 도학 사상을 심오하게 탐구하여 태극음양론, 사단칠정론, 인심도심설에 대해 밝혔는데 그의 성리학 이론은 유학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1600여 수에 달하는 한시를 비롯하여 산문 작품들을 무수히 많이 남겼다. 담양 소쇄원 등 그 일대 정자에서 문인들과 깊이 교류했으며 '소쇄원 48영' 같은 작품은 오늘날 소쇄원 창건 당시 모습을 살피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필암서원은 평지에 세워져 있어 들어가는 입구가 훤히 트여 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송시열이 쓴 확연루라는 누문을 만나는데 이는 크고 넓은 무한한 영역이라는 뜻이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청절당이 입구 문루를 향하지 않고 산 아래 사당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북향을 하고 있어 동재·서재로 구성된 앞마당이 뒤로 배치된 것이다. 강당 이름은 청절당으로 송준길의 글씨이고 청렴결백한 절개를 지킨 하서의 깨끗한 성품을 뜻한다. 동재 진덕재는 군자가 덕을 기르고, 서재 숭의재는 의를 높인다는 것이다. 바로 안으로는 마음을 기르고 밖으로는 실천을 한다는 김인후의 절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숭의재 옆에 청절당과 마주보고 있는 건물이 경장각(敬藏閣)이다.


왕과 조상의 유물을 공경하여 소장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인종이 세자 시절 김인후에게 그려준 어제묵죽도(御製墨竹圖)와 목판을 소장하고 있다. 묵죽도는 바위 사이로 솟아난 대나무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그림이다. 인종에 대한 김인후의 절의를 높게 평가한 정조가 경장각이라고 쓴 어필 편액을 하사한 것이다.

경장각 뒤에는 우동사라는 사당이 있다. 하서 김인후를 주 제향으로 동쪽에는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양자징이 종향되어 있는데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의 아들이다. 김인후의 신도비를 쓴 송시열은 "하늘이 우리나라를 도와(天佑俄東) 도학과 절의와 문장을 두루 갖춘 하서 김 선생을 태어나게 하고 태산북두와 같은 백세의 스승"이라고 칭송하였다.

하서는 여러 핍박 가운데 짧은 일생을 마친 인종에 대한 한 맺힌 절규로 기일 때마다 부근 난산에 올라 통곡을 하였다는 통곡대가 있다.


그가 지은 인종에 대한 사모곡인 '유소사(有所思)' 시를 읽으면 어느 부부의 인연도 이렇게 절절하지 못한 마음의 감동이 인다.

힘없던 임금을 위해 평생을 그리움과 애통함으로 지낸 그의 절의는 시대를 넘어 맑은 산소 같은 힘으로 다가온다.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영산대 석좌교수·전 이화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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