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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런지의 '레전설'… 너바나를 뛰어넘은 푸 파이터스(下)

입력 2020.08.01 15:01   수정 2020.08.0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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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 파이터스 /사진=wikimedia [스쿨오브락-158] 지난번 글에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의 결성 배경과 태동까지 전한 바 있다. (지난기사 바로가기)이후 그들의 전성기에 대해서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푸 파이터스라는 밴드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미확인 비행물체'를 뜻하는 용어다. 당시 그들은 이를 푸 파이터(Foo Fighter)라 불렀다.

너바나의 조연에서 푸 파이터스의 주연으로 옷을 갈아입은 데이브 그롤은 연착륙에 성공했다. 사실 결성 초기 푸 파이터스의 운명을 갈라놓을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고 판단한다. 너바나의 베이시스트였던 크리스 노보셀릭(Krist Novoselic)이 푸 파이터스 결성 초기 밴드에 합류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들은 푸 파이터스가 너바나의 재림이 될 것 같다는 우려로 노보셀릭과 그롤은 '각자의 길을 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는데, 돌이켜보면 이것이 '신의 한 수' 였다. 그들이 커트 코베인을 제외한 너바나의 나머지 두 명의 멤버가 뭉쳐 다시 밴드를 시작하는 모양새였다면 아마도 밴드 활동 내내 그들은 너바나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영리하게 '전략적 갈라서기'의 선택을 했고 이 때문에 푸 파이터스는 그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너바나의 색깔을 상당 부분 지운 채 활동을 하고 있다.

모두가 다 안다. 그롤이 너바나에서 드럼을 쳤다는 것을.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는다. 왜 너바나에서 드럼을 치던 그롤이 여기서 기타와 보컬을 잡고 있느냐고.

또 아무도 의심을 제기하지 않는다. 밴드의 리더로서 그롤이 가지고 있는 작곡 능력과 리더십 같은 것들 말이다. 왜냐면 이미 검증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롤이 너바나의 후광을 등에 업고 활동하려는 의도가 아니란 걸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물론 너바나의 영향력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롤이 무명에서 푸 파이터스를 만들었을 상황과, 코베인의 죽음 뒤에 실의에서 벗어나 푸 파이터스를 결성해 활동하는 것은 스토리 측면에서 전혀 다른 얘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금 기타'를 들고 밴드를 창업했다고 할까).

너바나가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짧은 활동 기간 눈부신 상업적 성공을 이룬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마이클 잭슨을 차트 밑으로 끌어내리고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록의 역사, 더 나아가 글로벌 대중음악 역사에 아로새겨질 '빅 이벤트'로 평가된다.

하지만 너바나의 활동기간은 극도로 제한됐고 따라서 그들이 내놓은 앨범도 많지 않다. 하지만 푸 파이터스는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는 현역 밴드고 그래서 그들이 이룬 상업적 성공은 어떤 측면에서는 너바나를 뛰어넘는다 볼 수도 있다.(단기 임팩트로는 단연 너바나다. 너바나를 뛰어넘는 단기 임팩트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다.


생소한 음악을 들고 메인스트림 차트에서 슈퍼스타를 꺾고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적 기준으로 받은 트로피와 상업적 성공 등을 따지면 푸 파이터스가 이룬 업적은 너바나의 그것을 넘어선 것이라 평가해도 코베인이 그리 섭섭해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앨범으로 보자면 'There Is Nothing Left to Lose', 'One by One', 'Echoes, Silence, Patience & Grace'가 그래미 "최고의 록 음반" 타이틀을 따냈다. 2012년 그래미는 그들의 'Wasting Light'앨범에 무려 5개나 상을 몰아줬다. 이 앨범은 차고에서 아날로그 장비로 녹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디지털로 달려가는 시대에서 굳이 아날로그로 제작해 '이질감'을 유도할 정도로 그들은 음악적 여유가 있는 밴드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종종 한국을 찾는 '친한 밴드'로도 유명하다. 2015년 첫 내한공연에 나선 그들은 그롤이 다리 부상을 당해 다리에 깁스를 하고 의자에 앉아 공연을 펼치는 에너지를 선보였다.


2017년 또 한국을 찾은 그들은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리브 포에버 롱(LIVE FOREVER LONG)' 공연을 통해 시종일관 무대를 뛰어다니는 열정적인 무대매너를 선보였다.(이 공연은 오아시스의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도 함께 참여했다) 그롤은 "여러분들이 최고인 것을 안다. 앞으로 열번은 더 오고 싶다"는 립서비스를 날리며 광란의 무대를 연출했다.

그들의 대표곡으로는 'Best of you', 'Learn to Fly', 'Everlong', 'The Pretender'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1990년대 그런지 열풍을 기억하는 30대, 40대 팬들 입장에서는 푸 파이터스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몇 안되는 '터널'이자 '다리'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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